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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Sep 26. 2023

하던 걸 했더니 걸작이 나왔네

영화 '거미집' 리뷰

'좋은 작품', 이를 넘어 '걸작'을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창작자들이라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 때마다 끊임없이 고민하는 지점이다. 자신이 하던 걸 해야 할지, 아니면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움을 선보여야 할지 항상 내적갈등을 한다. 김지운 감독은 평소 하던 걸 하는 방향을 택했다. 그랬더니 걸작이 나왔다.


'인랑' 이후 5년 만에 장편 영화로 스크린에 컴백한 김지운 감독의 신작 '거미집'은 이미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열 감독(송강호)이 배우와 제작자의 성화 속에 검열의 눈을 피해 어떻게든 촬영을 밀어붙이며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영화 속 영화라는 흥미로운 소재에 1970년대 시대 배경과 다양한 인물들을 버무린 블랙 코미디다.


'거미집'은 극 속 작품 '거미집'과 이를 촬영하는 현장 두 갈래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욕망에 충실하다. 김열 감독과 제작사 후계자 미도(전여빈)는 걸작을 탄생시키겠다는 생각뿐인 반면, 제작사 대표 백 회장(장영남)은 문공부의 눈치 보느라 바쁘다.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바뀐 대본에 볼멘소리 하면서 적응하기 바쁜 와중에도 저마다 가진 욕심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서로 얽히고설키며 웃을 지점을 쉴 새 없이 만들어낸다. 막장에 가까운 영화 속 영화 내용은 물론, 거듭되는 난관에 대처하는 자세까지 웃음을 유발한다. 영화 속 영화와 촬영현장을 교차하는 동안 클리셰들을 색다른 느낌을 내는 데 활용한다. 김지운 감독 초창기 작품인 '조용한 가족', '반칙왕'에서 하던 걸 했더니 대표작들에 못지않은 블랙 코미디가 됐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 보면 어느 순간 섬뜩해진다. 어떤 목표를 이루겠다는 마음이 집착으로 바뀌고 그것이 광기로 변해가는 과정이 매우 리얼하기 때문. 광기와 집착이 영화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해하기에 김열 감독의 광기를 조롱할 수도 없다. 그렇게 꿈과 욕망, 사랑과 집착, 이성과 광기가 집약되어 완성된 영화 엔딩을 접하는 순간 '걸작을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하지만 매니악한 느낌도 있어서 관객들 사이에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구성이 잘 짜인 '거미집'의 또 다른 강점은 출연 배우들의 티키타카 앙상블이다. 그 중심엔 송강호가 가장 또렷하게 보였다. 강박과 편집증까지 보이는 김열 감독의 열등감, 욕망을 보여주며 영화의 중심을 이끈다. 오랜 시간 김지운 감독과 맞춰온 호흡이 이번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극 중 배우 이민자로 분한 임수정은 시선강탈하는 존재감은 아니지만, 극 중 베테랑 배우 다운 노련함과 강렬한 눈알 연기를 뽐내며 서스펜스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강호세 역의 오정세는 프리롤로 '거미집'을 휘젓는다. 또 장영남과 박정수는 단순 연기를 뛰어넘어 1970년대를 대변하는 인물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서로 개성을 지닌 전여빈과 정수정의 불꽃 튀는(?) 신경전이 놓쳐선 안 될 관전포인트 되겠다.


영화 속 영화와 현장을 자유로이 오가며 한 작품으로 두 가지 영화를 즐기는 '거미집'은 서사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보장한다. 주조연 배우뿐만 아니라 특별 출연하는 배우들까지 적재적소로 활용한다. 오래간만에 걸작으로 컴백한 김지운 감독에게 기대해도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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