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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Oct 13. 2023

지옥이 던져 놓은 낚싯바늘, '희망'

영화 '화란' 리뷰

보는 내내 짜증과 분노가 치솟는다. 하지만 분위기 반전의 기미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영화 '화란'은 러닝타임 124분 내내 관객들의 목을 조르며 숨 막히게 만드는 우울감과 불행을 선사한다. 그래서인지 '화란'을 보고 나온 관객들의 평이 호불호가 갈리고, 충분히 이해가 된다.


'화란'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연규(홍사빈)가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송중기)을 만나 위태로운 세계에 함께 하게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지난 5월에 열린 제76회 칸 영화제에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돼 이목을 모은 바 있다.


영화 시작부터 갑갑하게 만든다. 연규는 학교폭력과 가정폭력에 시달려 왔고, 엄마 모경(박보경)과 함께 네덜란드 국적 취득을 유일한 탈출구이자 희망으로 생각하며 아슬아슬하게 버텨냈다. 연규는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는 와중에 세상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치건을 통해 성장하는 성장 스토리로 갈 줄 알았지만, 예상을 깨고 '잔혹사'로 이어진다. 삶이란 원래 괴롭고 아픈 고통 같은 곳이며 부모로 인해 선택당한 고향 명안시를 향해 입버릇처럼 말하는 'X 같은' 상황의 연속이다.


연규는 또 다른 탈출구라 생각했던 치건을 따라 범죄현장에 들어가게 됐고, 지옥 같은 자신의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기는커녕 무기력감만 느낀다. 자신이 나서서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해야 돼. 해야 되는 거야 이건"이라는 치건의 말대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만 있다. 보스 중범(김종수)의 낚싯줄에 귀가 걸려 조직에 발을 들인 치건처럼, 연규 또한 300만 원이라는 낚싯바늘에 낚여서 온 셈이다. 이 과정에서 '화란'은 등장인물들의 범죄행각을 전혀 미화하지 않고 이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비슷한 길을 걸어온 연규와 치건이지만 이들은 주변인물과 관계는 항상 어그러진다. 유사 부자관계를 맺은 것 같은 이들의 관계 또한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결국 타인은 타인일 뿐 서로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김창훈 감독의 정의인 듯하다. 여기에 연규와 치건은 소통을 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대처해 서로 간 오해를 마주한다.


그러면서 개선의 기미도 안 보인다. 연규가 한 줄기 희망으로 여겨왔던 네덜란드행은 결국 지옥이 던져 놓은 낚싯바늘이었을 뿐이고, 긍정적인 요소가 도통 보이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바꾸려고 했던 캐릭터들의 선의는 오랜 세월 대물림 됐던 폭력에 묻혀 폭력의 역사를 이어간다.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가 사거리에서 멈춰버린 연규의 목적 잃은 눈빛이 계속 잔상에 남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겹겹이 쌓아 올린 '화란'의 하드보일드 레이어에 배우들의 연기력이 더해져 관객들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노 개런티로 출연한 송중기는 그동안 작품에서 보여왔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눈빛을 띠며 담담하게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송중기와 더불어 '화란'에서 중심축을 맡고 있는 신예 홍사빈, 김형서(비비)의 존재감도 잊히지 않는다. 특히 둘 사이 묘한 호흡이 인상적이다.


칸 영화제에서 주목받을 만큼 예술성 있는 영화임에는 분명하나, 어둡고 축축한 연규의 삶을 불행 포르노처럼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앞서 언급했듯이 '화란'의 무거운 스토리와 소재는 상업영화와는 거리가 있어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또한 자극성의 수위도 굉장히 높아 마음이 편치 않을 수도 있다.


★★★☆



해당 글은 헤드라잇에 발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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