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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Oct 21. 2023

"이게 영화다!" 거장의 뜨거운 외침

영화 '플라워 킬링 문' 리뷰

나이로는 여든 살이 넘었지만, 영화를 향한 열정과 스토리텔링은 어떤 젊은이보다도 뜨겁다.  할리우드 대표 거장으로 손꼽히는 마틴 스코세이지는 이번 신작 '플라워 킬링 문'에서도 자신이 들려주고자 했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들려준다.


데이비드 그랜 작가가 2017년에 내놓은 동명 논픽션을 영화로 만든 '플라워 킬링 문'은 1920년대 미국 오클라호마 주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아메리카 원주민 살해사건을 담아내고 있다. 무려 206분이라는 장대한 러닝타임을 자랑하고 있어 시리즈로 제작할 법도 한데, '진지한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자신의 굳은 신념을 관철시켜 OTT 플랫폼인 애플TV+와 동시에 극장 개봉을 밀어붙였다.


아메리카 원주민인 오세이지족은 강제 이주한 땅에서 석유가 터지고 난 뒤 막대한 오일머니를 벌게 된다. 이들의 재산을 노리는 백인 집단들이 충분한 시간을 들여가며 원주민들을 하나 둘 제거한다. 이야기의 구성 방식이 탐욕-범죄-권력-전락으로 구성돼 스코세이지의 시그니처인 갱스터 영화와 비슷해 보인다. 전작인 '아이리시 맨'처럼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정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스코세이지의 작품들을 오랫동안 봐왔던 관객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문법인 것 같지만, '플라워 킬링 문'에서만 볼 수 있는 특색도 엿볼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그러면서 화면 비율을 조정한 채 다양한 영상들을 교차시킨다. 특히 끝나기 10여 분 남겨둔 상황에서 마치 후대 사람들 앞에서 낭독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이 과정에서 마틴 스코세이지 본인이 직접 등판해 대사를 읊는데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구성 속에서 '플라워 킬링 문'은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와 비슷하게 미국 사회의 병폐와 패악을 지적한다. 한 세기 전 오일 머니를 둘러싸고 벌어진 오세이지족 살인 사건을 통해 미국 주류 사회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경유한 미국 역사의 추악함을 들춰낸다.


여기에 돈을 좇는 코요테처럼 페어팩스로 흘러들어온 주인공 어니스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통해 끝끝내 털어놓지 않는 진실을 몰아붙여서 실토하게 함으로써 비극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전한다. 이를 드라마가 아닌 한 편의 영화로 담아내 '시네마의 위대함'을 선사한 거장의 뚝심이 느껴진다.

  

이와 함께 살해 사건들의 악랄함을 상징하는 비유들도 등장한다. 한 예로 검은 기름에 찌들어있는 형상의 인간들이 나타나는 장면은 오일 머니를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라도 하는, 아무리 씻어도 지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죄와 죄책감을 가지고 역사에 기록될 인간들을 형상화한 듯 보인다.


또 '플라워 킬링 문'의 볼거리는 스코세이지 감독의 페르소나로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로버트 드니로가 처음으로 한 앵글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명배우로 잘 알려진 만큼 두 배우의 연기 퍼포먼스는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는 훌륭함을 자랑한다. 이어 브랜던 프레이저, 제시 플레먼스 등 조연들 또한 미친 존재감을 뽐낸다.


몰리를 연기한 릴리 글래드스톤이 '플라워 킬링 문'을 통해 관객들에게 제대로 눈도장받았다. 자신의 가문과 오세이지족이 맞닥뜨린 비극을 눈빛으로 전달한다. 스코세이지가 줌미팅으로 만난 뒤 바로 캐스팅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해당 글은 헤드라잇에서 발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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