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녀가 절절히 외친 'NO예물 NO예단' 조약이 한순간에 깨진 이유
이 이야기는 사실 글을 쓰기 전, 오랫동안 쓸까말까 고민이 많았다. 나의 반쪽 J가 보고 있고, 두 사람의 이야기 이외 양가 이야기까지 나오기에 자칫 불편해지지 않을까 끊임없이 걱정했기 때문이다. 내용을 감출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연재가 솔직하지 않다고 판단했기에 용기 내어 적어본다.
2016년 늦여름, 혹은 초가을. 두 단어를 혼용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점.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절친 W가 결혼 소식을 전했다. 당시 주변에 결혼을 한 친구들이 드물었고 학창 시절 한 페이지를 함께 하며 동고동락했던 친구였기에 결혼 소식을 들은 나는 축하하는 감정과 동시에 어딘가 모르게 낯선 기분이 들었다.
W는 청첩장을 주겠다며 동네 어느 양꼬치 집에서 저녁 약속을 잡았다. 양꼬치와 꿔바로우, 그리고 칭따오로 저녁을 먹던 중 W는 결혼 상대인 반려자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신의 결혼 준비과정을 털어놨다. 그러던 중 그는 한숨을 쉬며 한 마디 했다.
결혼을 준비하다 보면 예비 신랑, 신부가 아닌 다른 사람들 때문에 머리 아픈 일이 많더라. 특히 예물, 예단이 그래. 너도 결혼 준비해 보면 알 거다.
그때 당시 결혼 준비과정을 영상물이나 남의 경험담을 주워 들었던 나는 어떤 뜻이 어렴풋이 느꼈다. 대한민국에서 결혼 제도는 사랑하는 남녀의 의사보다도 양가의 의견 합치 혹은 갈등에 엄청나게 좌우됐던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W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결혼 준비과정이 쉽지 않구나"라고 공감하면서 술잔을 기울였다. 시간이 흘러 직접 당사자가 되어보니 그제야 W의 뼈 있는 한 마디를 100% 체감할 수 있었다.
웨딩플래너와의 계약을 마친 뒤, 나와 J는 먼저 결혼했던 커플들의 준비과정을 기록해 둔 블로그나 웨딩 카페 등을 서칭 하면서 다음에 해야 할 리스트들을 틈틈이 체크했다. 그러던 중 예물, 예단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앞서 결혼했던 친구들은 예물, 예단을 생략했다고 이야기했던 게 생각났고, 상당수의 커플들이 'NO예물, NO예단'이 트렌드라고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두 사람이 직접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준비하는 간소한 결혼식이기에 우리 또한 예물과 예단을 생략하는 것으로 의견을 맞췄다.
그래도 이 결혼의 관련자 양가 부모님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파악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예물, 예단에 대해 슬쩍 운을 띄워봤다. 결혼 당사자들(=나와 J)과는 생각이 달랐다. 당연히 예물, 예단은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어머니는 10여 년 전 사촌 형이 결혼할 당시 한복값으로 받은 금액을 돌려줘야 한다면서 친가, 외가 식구들에게도 한복을 해줘야 하지 않냐고 이야기했다. 친가+외가 친척인 많은 우리집 가족 정보에 아버님, 어머님은 큰 부담을 느끼셨다.
예물 이야기가 나오자 양가 모두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어머니는 며느리가 될 J에게 명품 브랜드를 하나 해주고 싶다면서 브랜드를 물어보셨고, 어머님은 나한테 고가 브랜드 시계를 해주고 싶다고 계속 말하셨다. 생각지도 않은 예물 규모에 나와 J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저희는 필요 없어요.
나와 J는 예물, 예단을 받지 않고 결혼하려는 의지가 강력했으나, 전통대로 진행시키려는 양가 부모님들의 의지 또한 만만치 않았다. 예물, 예단 문제 건으로 결혼 준비에 큰 암초를 만나게 됐다. 드라마에서 볼 법한 상황이 우리에게도 벌어지는구나.
하지만 우리의 결혼식이고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배수진을 치는 마음으로 양가 부모님 지원받지 않고 우리의 돈으로 결혼 준비하려고 한다, 요즘 결혼식 추세가 예물 예단 없이 한다, 화려하기보다는 간소화해서 결혼식을 올리려고 한다, 저희는 개입을 원치 않는다 등 최초 세운 계획을 끝까지 고수하며 양가 부모님들과 격돌했다.
그 결과 예물 예단 없는 것이 간소하게 하는 것으로 구두합의를 보며 가까스로 'NO예물, NO예단' 조약을 체결했다. 어려운 관문 극~복!
한 달 뒤 어느 주말 오후.
우리 가족에게 초대받은 J는 이날 함께 점심 식사를 한 뒤 인근 카페에서 티 타임을 가졌다. 그러던 중, 어머니는 J와 단둘이 이야기할 게 있다면서 자리를 잠깐 비켜달라고 이야기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부모님과 동생이 떠난 뒤, J와 단 둘이 남았다.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나한테 봉투 하나를 보여줬다. 봉투에는 엄청난 액수가 적혀있는 수표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첫 며느리 J에게 명품 핸드백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취향을 잘 몰라서 수표를 주면서 구입하는 데 써라고 한 것. 두 사람의 의사를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행동한 것이다. 베풀고 싶은 마음은 알겠으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큰 액수에 나와 J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어머니의 거액 수표를 전달한 사실을 우리 두 사람의 비밀로만 간직할 수도 없었다. 결국 J의 부모님도 알게 됐고, 당연히 난리가 났다. 없던 일로 정리했던 예물, 예단 이야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 정말!
J의 부모님은 이렇게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면서 놋으로 구성된 반상기, 침구류(=이불), 그리고 현물까지 예단 세트를 FM으로 준비하셨다. 우리 부모님은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수표는 J를 향한 선의다, 라고 연거푸 예단을 사양하셨으나, J의 부모님 입장에선 예물을 받고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않은가. 결국 J는 우리집을 방문해 보자기에 정성스레 싼 예단 세트를 전달했다.
이 글을 읽는 일부 이들은 결과적으로 양가가 예물, 예단 서로 잘 전달한 해피엔딩이 아니냐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와 J의 결혼 플랜은 '양가 부모님에게 의존하지 않고 오직 두 사람의 힘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간소하게 준비하려는 계획'이었다. 결혼식 세리머니보다 이후의 삶에 더 투자하려는 큰 그림도 있었다.
이를 누누이 강조했음에도 나의 어머니는 결혼 당사자들의 의지를 무시한 채 'NO예물, NO예단' 조약을 깨트렸다. 엄청난 빌런이 우리의 빅픽처에 시원하게 찬물을 끼얹었고, 조약 결렬이 불러온 불편함은 꽤 오랫동안 지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