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듀스 101 개시! 최종 1위에 오를 주인공 반지는?
J와 연애하던 시절, 어느 날. 당시 J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 바람에 1주일간 강제로 랜선으로만 만나야만 했다. 카톡으로 물 흐르는 티키타카 대화를 하다가 반지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J는 오래전부터 눈여겨봤던 자신의 로망인 반지 디자인 2개가 있다고 맞춰보라며 급스무고개를 했다.
몇 시간 동안 피나는 검색 끝에 J가 원하는 반지 디자인과 브랜드를 찾았다. 하나는 불을 꺼놔도 반짝거릴 영롱한 다이아몬드로 유명한 브랜드, 다른 하나는 심플하면서 유니크한 디자인을 갖춘 브랜드였다. 둘 다 한국에선 좀처럼 접하기 힘든 업체였다. 덕분에 내가 J의 로망 반지를 기억하는 게 매우 쉬웠다.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본격 결혼 준비를 시작했던 2022년 가을.
웨딩플래너 업체와 계약을 맺은 후 ㅁ부장이 지금부터 결혼 D-Day까지 준비해야 할 리스트를 단톡방에 공유했다. 이와 함께 ㅁ부장픽 스드메 추가 후보군 및 예식장, 예물 리스트를 함께 공유했다.
ㅁ부장이 링크로 공유한 예물 리스트들을 쭉 살펴봤는데 자신들과 제휴 맺은 업체로만 구성해서 보낸 게 너무나 티가 났다. 영업하는 입장에선 당연하겠지만, 첫 만남에서 믿음직스럽지 않았던 모습을 봤던 게 남아서인지 객관적으로 믿어도 될까 의심스러웠다. "네, 한 번 볼게요"라고 살펴봤지만 눈길이 가는 게 하나도 없었다. ㅁ부장 추천픽은 죄다 올킬. 어쩔 수 없었어,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거든.
주변에 먼저 결혼한 기혼자들의 이야기나 웨딩 카페에 올라온 결혼 선배들의 후기들을 둘러봤다. 가성비로 종로 금은방에서 맞췄다는 이들, 조금 더 비용을 들여서 청담동 웨딩골목에서 맞춘 이들의 후기를 보며 어떻게 맞춰야 하나 생각이 깊어졌다.
J와 이야기 나눴던 반지 브랜드들이 떠올랐다. 100% 두 사람의 자력 내에서 준비하는 만큼, 가성비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지만 웨딩밴드는 평생 끼고 다니는 것이기에 이것만큼은 큰돈을 들여도 문제없다고 판단해 J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흔쾌히 응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찾기 힘든 J의 픽 브랜드 매장을 수소문했고, 주요 브랜드들이 몰려있는 강남 A 백화점에 입점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혼반지를 찾아 떠나는 반지원정대 본격 출정이오.
1주일 뒤, 강남 A 백화점.
최고의 반지를 찾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안고 입장했다.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 라인업을 자랑하고 있어 속으로는 두근두근 바운스 눈은 항시 동공확장이었지만, 촌스러운 티를 내기 싫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일단 여기에 어떤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는지 가볍게 건물 전체를 한 바퀴 돌며 눈으로 대강 확인했다. 우리 커플처럼 평생 착용할 결혼반지를 맞추러 온 커플들이나 자신의 플렉스를 한껏 과시하려고 쇼핑하러 온 사람들, 그냥 구경 온 사람들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러면서 여기서 돈 쓰려면 남다른 경제력이 되어야 하나 생각하면서 혼자만의 현타도 느꼈다. 야, 기죽지 마 기죽지 마. 너도 살 자격 있어!
탐색전을 마친 뒤, J의 워너비 브랜드부터 방문했다. 명품관 특징이 미리 예약하지 않고는 식당대기처럼 번호를 입력한 뒤 입장하라고 카톡 알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매장 앞에 휴대폰 번호를 입력했고, '10분 뒤 입장 가능'이라고 알람이 왔다. 가만히 서서 기다리기가 애매해서 브랜드가 있는 층을 천천히 돌았다.
그런데... 카톡에서 통보한 10분이 훌쩍 지나고 20분, 30분이 되어서도 입장하라는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건물 내부를 산책하면서도 틈틈이 매장을 살펴봤지만 매장에 상주하는 직원들 외에는 어떠한 손님도 다녀가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데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납득되지 않는 상황을 잠자코 기다릴 수 없었던 J는 참지 않고 해당 브랜드 매장으로 진격했다.
매장 입구를 지키는 직원에게 카톡 대기표를 보여주면서 "대기 시간 10분이라면서 왜 아직도 우리 차례가 오지 않냐"라고 따졌다. 그러더니 직원은 내 번호가 등록된 적이 없다고 답변해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그럼 우리가 30분 동안 뻘짓을 했다는 건가? J의 분노게이지는 점점 차올랐다.
J의 분노에 나도 동참했다. "그러면 등록되지 않는 카톡 대기표는 왜 받는 거냐"라고 이야기했고, 이를 지켜보던 또 다른 매장 직원은 "한 번 확인해 보겠다"라며 말한 뒤 내부에 있던 또 다른 직원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러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또 늘어났고, 우리의 인내심은 한계치에 도달했다. 그제야 직원이 한번 구경하셔도 된다고 말을 전했지만, 이미 기분은 상할 때로 상했고, 온갖 정나미는 다 떨어졌다. J가 원했던 디자인도 구경했지만, 인터넷으로 봤을 때보다 반지에 박힌 보석들이 필요 이상으로 눈부셔서 마이너스로 다가왔다. 사진과 실물의 디자인의 괴리감을 느낀 채 매장을 떠났다.
첫 매장 방문부터 대분노한 덕분에 두 사람은 오래 기다리게 만드는 매장은 가지 않는 것으로 정리했다. J의 워너비 디자인도 생각만큼 실물이 별로였던 것을 확인했으니, 지금부터 모든 브랜드를 자유롭게 구경하는 전국시대가 열렸다. A 백화점 하이 주얼리 코너에 입점된 매장 하나하나 방문할 때마다 각양각색 반지들을 너무 많이 구경했더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런 와중에 "생각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브랜드별로 명함 수거까지 했는데.. 이거 쉽지 않은 일이네.
전투적으로 매장 방문하고 반지 구경을 하는 동안 계속 걷고 섰더니 발이 아파왔다. 비상계단 쪽에 위치한 의자에 앉아 숨 고르기 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매장에 방문하려고 카톡으로 입장 등록했고, 기다렸다. 그러나 첫 번째 매장 방문 때처럼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는데 우리 입장 차례는 오지 않았다. 계속 '10분 뒤 입장 예정'이라는 문구만 나올 뿐. 그래서 매장직원에게 찾아가 "저희가 기다린 지 30분이 넘었는데 입장 못하는 것이냐?"라고 물었고 직원은 "기다리세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는 와중에 어떤 가족이 대기 없이 바로 입장하는 광경을 보며 차별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불쾌함을 느낀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다른 매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날 카톡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해 카톡 불통이 계속됐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대부분 매장은 이를 대비해 문자로 알려주겠다는 등 후속조치를 했던 것과 달리 우리를 계속 기다리게 만들었던 두 매장은 '기다려라', '잘 모르겠다'는 식으로 일관해 대단히 불쾌했다. 두 번 다시 저 브랜드에 방문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A 백화점을 한 바퀴 돌면서 수집한 브랜드 명함은 대략 20군데는 넘었다. 지금부터 반지듀스 101을 할 차례. 우리의 하나뿐인 웨딩밴드를 맞출 최적의 브랜드를 선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브랜드가 많다는 것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졌다는 장점이 되지만, 디테일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반지 디자인들이 '거기서 거기' 같은 느낌을 받게 돼 고르기 어렵다는 단점 또한 있다. 사실 주얼리 분야에 둔감한 내 입장에선 브랜드별 반지 디자인의 차이점, 특징 등을 쉽사리 분간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내가 봤던 반지가 이거였나?' 계속 헷갈렸다. 이와 달리 디자인의 디테일한 면까지 세세하게 기억하는 J는 덜 최애부터 하나씩 하나씩 소거했다.
그렇게 웨딩밴드 최종후보 브랜드가 2개로 압축됐다. 하나는 티파니 앤 코의 밀그레인, 다른 하나는 반클리프 아펠의 뉴욕. '대중픽'으로 손꼽히는 티파니 앤 코 밀그레인은 잔잔하게 수놓은 듯 하나하나 세팅된 밀그레인기법 디자인이 많은 이들의 사로잡아왔고, 우리의 시선까지 휘어잡았다. 게다가 로즈골드 색상이 더해지니 고급진 느낌을 안겨줬다.
반클리프 아펠 뉴욕은 밀그레인에 비하면 디자인은 더 심플한 은색이나 한가운데 작게 박힌 다이아몬드 하나에 포인트를 둔 것이 눈길을 끌었다. 또 반지를 꼈을 때 헐렁함이 없이 손가락에 딱 맞는 듯한 착용감이 좋았다. 다만 반클리프 아펠은 우리 두 사람의 사이즈 반지 재고가 거의 없어서 타이밍이 안 맞으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둘 다 디자인이 예쁘고 고유의 개성이 잘 드러나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투표를 붙이기도 했다. (투표는 반클리프 아펠 쪽이 앞서긴 했다만) 결국 다시 한번 실물을 비교해 보고 최종결정하기로 했다.
다음날 오후.
나와 J, 그리고 우리의 선택을 도와줄 J의 동생과 함께 셋이서 최종후보인 두 브랜드를 보러 강남 B 백화점으로 향했다. 밀그레인과 뉴욕, 그리고 2개 브랜드 웨딩밴드를 추가적으로 살펴봤다. 일일 지원군으로 등판한 J의 동생 덕에 선택이 훨씬 수월했다. 당사자 이외 제3자의 시각이 더해지니 브랜드별 장단점, 우리 커플에게 더 어울리는 디자인 등이 잘 보였다는 것.
그래서 반지듀스 101의 최종 1위의 주인공은.. 반클리프 아펠의 뉴욕링. 심플하면서도 특별해 보이는 디자인과 두 사람 손가락에 딱 맞는 착용감이 결정적이었다. 또 B 백화점에 우리 손가락에 딱 맞는 사이즈가 있었기에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날을 위해 모아둔 돈으로 주저 없이 결제했다. 매장 직원은 세척 등 작업이 필요하다며 수령하기까지 6주가량 걸린다고 알려줬고, 빨리 6주가 지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반클리프 아펠로 최종선택한 뒤, 부모님은 결혼반지로 무엇을 선택했는지 물어보셨다. 어느 브랜드라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우리끼리 상의해서 최종 결정했다고 돌려서 답했다. 이렇다 저렇다 참견하면서 자기 의견대로 좌지우지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이를 애초에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역시나 어머니는 나와 J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셀프 준비한 금가락지 한쌍이 있다며 선뜻 보여주셨다. 이런 예감은 틀리지 않더라. 알겠다면서 일단 받았고, 그 금가락지 한쌍은 지금까지 한 번도 착용하지 않고 안방 서랍에 고이 보관하고 있다.
6주 뒤, 단 하나뿐인 결혼반지가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기다려라, 마이 프레셔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두 사람은 B 백화점 내 매장으로 달려갔다. 금색 리본으로 포장된 흰색 미니박스 두 개가 등장했고, 박스를 열었을 때 짙은 민트색 케이스가 드러났다. 케이스를 열었더니 영롱한 반지 한 쌍이 반짝반짝 빛났다. 절대반지에 집착하던 골룸보다도 웨딩밴드에 눈을 떼지 못하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반지야, 나 지금 되게 신나.
한 손에 반지 꾸러미를 들고 가면서 우리는 한 가지를 다짐했다. 이 영롱한 반지가 세월의 흐름을 구석구석 새겼을 때, 깨끗하게 폴리싱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결혼기념일 혹은 각자 이름 이니셜을 새겨서 유니크한 웨딩밴드로 남기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