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플래너에게 상담받으러 갔는데, 우리가 웨딩플랜 다 세운 썰
※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을 옮겨 쓴 글이므로 읽고 난 뒤 절대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좋은 플래너, 좋은 업체도 있습니다.
나와 J는 봄기운이 만개하는 2023년 4월에 결혼하는 것으로 의견조율을 마쳤고, 양가 부모님에게도 알렸다. 이제 결혼하기까지 D-Day 카운트는 대략 반년 조금 넘게 남았다. 1년 동안 결혼 준비를 하는 요새 트렌드보단 조금 빠듯해 보이지만, 우리는 파워 J 커플이라 빨리빨리 결정 내리면 문제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먼저 결혼식장과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를 어떤 스타일로 할 지 찾아봤다. 결혼은 신부의 취향과 스타일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디테일한 J가 몇날 며칠 서칭해 자신의 마음에 드는 후보군들을 추렸고, 나는 J가 보여주는 식장, 스드메들을 보고 피드백을 남기며 하나씩 하나씩 소거해 나갔다. 파워 J 둘이 만나니 계획 세우는 건 어렵지 않지.
그러면서 우리보다 먼저 결혼한 지인, 직장동료 등이 추천해 준 웨딩플래너 업체들을 한 데 모아 3곳으로 추렸다. 직접 발품 팔아서 하나부터 열까지 뛰는 것도 좋지만, 둘 다 묶여있는 직장러이기 때문에 대리인격으로 찾아주고 어드바이스를 주는 웨딩플래너를 두는 게 여러모로 편하다고 판단했다.
첫 번째로 군 동기 L에 추천받은 웨딩플래너 A 실장에게 연락했다. L에 따르면, 자신이 결혼준비할 때 하나부터 열까지 열과 성을 다해 서포트해준 덕분에 결혼식을 잘 마칠 수 있었고 이후 다른 지인에게 추천까지 해줬다고 이야기해서 신뢰감이 높아졌다. 막상 연락했더니 A 실장은 답변이 조금 늦은 편이었다. '우리 말고도 다른 커플들 결혼 준비도 해야 하니까 바쁘겠지'라고 혼자 생각하며 이해하려고 했다. 그런데 결혼 상담비를 별도로 내야 한다고 하더라.
에에? 아직 계약하지도 않았는데, 상담비를 따로 받는다고? 이후 다른 업체를 만나 상담받았을 때에는 상담비를 따로 요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A 실장이 언급한 상담비 부분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고, 이 점 때문에 더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우리보다 먼저 결혼 준비하고 있는 J의 직장동료 H가 도움받고 있는 웨딩플래너 업체 B였다. 업체 홈페이지에서 상담 신청을 남겼더니, 다음 날 바로 웨딩플래너 ㄱ실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도 매우 열정적으로 임하는 게 카톡창에서도 느껴졌다. 원하는 콘셉트를 간략하게 전달해 토요일 오전으로 상담을 잡았는데, ㄱ실장이 상담일 3일 전 허리디스크로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는 비보를 접했다. 그는 죄송하다며 화상으로 상담해 드리겠다고 열의를 불태웠지만, 그건 곤란할 것 같다며 정중히 고사하고 우리 연령대와 비슷한 웨딩 플래너로 교체 요청을 했다.
이와 함께 세 번째 웨딩플래너도 접촉했다. '결혼 선배' 베프 K가 결혼 준비하면서 알아봤다는 C 사이트에 견적 문의 남겼다가 연락 온 웨딩플래너 ㄴ매니저. 이 분도 ㄱ실장 못지않게 적극적이었다. 심지어 예비신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서 J에게도 따로 연락하기까지 했다. 어쩌다 ㄴ매니저와도 오프라인 상담 약속을 잡았고, B업체와 같은 날에 해결하려고 토요일 오후로 정했다.
약속의 토요일, 강남구에 위치한 웨딩플래너 업체 B.
나와 J는 결연한(?) 의지로 웨딩플래너 상담을 받으러 입장했다. 다소 이른 주말 오전임에도 결혼을 앞두고 웨딩플래너를 만나 상담 중인 예비부부들이 눈에 띄었다. 뉴스에선 결혼하는 커플 수가 매해 낮아지는 추세라고 보도했는데, 여길 와보니 그 말이 팩트인지 의심스러웠다.
허리디스크로 입원 중인 ㄱ실장 대신 ㅁ부장이 우리의 상담을 맡았다. 우리의 결혼식 날짜를 물으면서 원하는 장소를 물었다. 한강 이남 쪽을 원하며 하객은 200명 내외로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더니, 그는 "6개월 전이라 원하는 가격대와 날짜 모두 맞추기 힘들지만 그래도 찾아봤다"라며 괜찮은 식장 후보군들을 촤르륵 띄웠다.
하지만 ㅁ부장의 추천은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분명히 J는 성당처럼 경건한 느낌을 원했는데, ㅁ부장의 추천리스트 10여 곳 중에서 겨우 1,2곳 정도? ㅁ부장이 두어 군데 더 추천했으나, 날짜가 없을 것 같다면서 말끝을 흐렸다. 물론 거기도 우리 마음에 썩 들진 않았다. 여기서 ㅁ부장을 향한 신뢰도가 하락했다.
식장을 찾지 못한 채 스드메로 넘어갔다. 사실 방문하기 전에 우리 둘은 '여기서 스튜디오 촬영을 해야겠다'라고 콕 집은 스튜디오가 있었다. 그래서 J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ㄷ스튜디오 하고 싶어요"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ㅁ부장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른 스튜디오는 어떠냐고 두어 곳 앨범을 내밀며 추천했다. ㅁ부장님, 그건 의미 없는 짓이에요. 저희는 여기 오기 전에 스튜디오 10여 곳을 보고 그중에서 3곳 정해서 온 상태라고요. ㄷ스튜디오 이외 예비로 정해둔 스튜디오 두 곳에서 촬영한 앨범도 살펴봤는데, ㄷ스튜디오만큼은 아니었다. 굽히지 않은 우리의 의견대로 ㄷ스튜디오에서 웨딩 촬영하기로 미리 예약을 걸어뒀다.
드레스는 웨딩업체에 오기 전 2,30여 개 업체를 미리 봐두고 그중 J가 원하는 취향으로 하나둘 소거해 3곳을 후보군으로 찜해뒀다. 이를 본 ㅁ부장은 스타일이 조금 겹치고 한 업체는 가격대가 엄청 나간다면서 여긴 어떠냐며 업체 두어 곳을 추천했다. 우리는 꺾이지 않는 마음속에 저장해 둔 업체로 밀어붙였고 ㅁ부장은 한 발 물러서면서 드레스 투어 예약을 하되, 중간에 바꿀 수 있다고 알려줬다.
다음은 메이크업. 스튜디오, 드레스처럼 메이크업 업체도 '메이크업듀스 101'을 자체적으로 거쳐 최종 발탁된 업체 두 세 곳을 정했다고 ㅁ부장에게 이야기했다. 이를 본 ㅁ부장이 업체별 특징을 추가 설명해 줬고, 자연스럽고 깨끗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메이크업 업체 ㄹ로 정했다.
상담이 끝날 무렵, 민감한 계약금 이야기가 나왔다. 스드메 계약이 총 000만 원이고 오늘 오후까지 선급금 20%를 지급하고, 결혼 3달 전 중도금으로 60%, 그리고 1달 전에 잔금 20%를 내면 된다고. 오후에 ㄴ매니저와 상담이 잡혀있으니 이 사람을 만난 뒤에 결정해야겠다 싶어 "J와 이야기 나눈 뒤에 연락드리겠다"라고 남기고 B업체를 빠져나왔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다 정했고, ㅁ부장은 그저 거들기만 했다. 상담받는 내내 크게 도움받은 건 없는 느낌인데 계약금 액수는 왜 저렇게 많이 받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또 먼저 카톡으로 상담했던 ㄱ실장에게 알려줬던 내용이 전혀 전달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인수인계도 안하는 것일까? 웨딩플래너를 고용하는 게 맞는 것인지 점심을 먹는 내내 생각했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은 뒤, 강남구에 위치한 결혼 준비 C사이트 사무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B업체에 비하면 사무실 규모는 작았지만, 이곳에도 결혼 준비를 위해 방문한 예비부부들이 가득 찼다. 예비부부들이 항시적으로 찾는다는 사이트 답게 많은 이들이 찾아서 상담받고 있었다. ㄴ매니저는 다른 커플을 상담을 막 끝마치고 우리 커플에게 왔다. ㄴ매니저는 내년 연말에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면서 우리와 같은 예비부부라고 이야기를 꺼내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공감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B업체에서 상담받을 때처럼 우리 커플이 원하는 식장, 스드메 등을 이야기했는데 어딘가 조금씩 버벅거리고 잘 모르는 뉘앙스를 풍겼기 때문이다. 열심히 검색해서 찾아주기는 하는데, 우리 커플의 의견에 대해 이렇다 어떻다 의견을 주지도 않고 버거워보이면 이를 조율해서 타협점을 찾아가는 등 능력이 부족했다. AI처럼 검색해서 보여주기만 하는 ㄴ매니저의 모습에 믿고 맡겨도 괜찮은 걸까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ㄴ매니저가 도움이 됐던 부분도 있었다. 우리 커플이 원하는 성당처럼 경건한 분위기를 띠고 가격대가 좋은 강남에 위치한 예식장을 찾아냈다. 심지어 우리가 결혼하려고 정한 날짜가 딱 비어있었다. ㅁ부장이 못한 걸 ㄴ매니저가 해냈다.
그러던 중 ㄴ매니저의 한 마디가 나와 J에게 결정타로 날아왔다.
저희는 비동행 웨딩 업체입니다.
생전 처음 듣는 단어에 두 사람은 당황했고, 우리의 표정을 지켜본 ㄴ매니저는 비동행과 동행의 차이점을 설명해 줬다. 동행은 기존 웨딩플래너들처럼 예약뿐만 아니라 결혼하는 커플들의 일정 전체를 따라다니는 것을 말하고, 비동행은 스케줄 예약만 가능하고 현장을 따라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비동행 웨딩플래너가 가격이 훨씬 더 저렴하단다.
천천히 생각해 보고 결정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ㄴ매니저와의 상담을 마쳤다. 비동행이 비용 면에서 절감하는 측면은 있지만, 직접 발품 팔아서 알아보고 예약하면 되지 굳이 웨딩플래너를 만나 상담할 필요가 있을까. 애초에 웨딩 플래너를 만나는 이유가 바쁜 직장러 커플이 결혼준비를 하면서 놓치는 부분이 없게끔 도움받기 위해서인데?
다른 업체도 알아볼까 생각했지만, J는 일단 B업체 ㅁ부장과 계약하자고 의견을 냈다. B업체가 아무래도 웨딩업체 중에선 네임드고, 부장 직함 답게 대응하는 스타일이나 자연스러운 느낌이 훨씬 더 믿음직스러웠다는 것이 근거였다. 나 또한 동의했다. 계약하겠다고 연락한 뒤, 곧바로 선급금을 계좌이체했다.
이때까지는 몰랐다. ㅁ부장과의 계약이 우리의 믿음,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