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아니야. 나날이 상승하는 결혼 준비 비용이 널 기다려.
2022년, 여름과 가을의 경계선에 있던 어느 날.
여자친구 J에게 농담 반 진담 반 식으로 몇 달 동안 "결혼하자"라고 끈질기게 매달린 끝에 마침내 "OK" 승낙을 받았다. 장범준의 평생 연금 '벚꽃 엔딩' 가사에 등장하는 벚꽃이 만개하는 봄에 우연히 찾아온 연애 시그널로 맺어진 우리의 연애는 '라라랜드'처럼 사계절을 한 바퀴 돌고 난 뒤, 서로를 향한 마음이 깊어졌고 연애단계를 지나 결혼이라는 결론으로 도달하게 됐다. 내 인생에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이벤트를 나도 맞이하게 될 줄이야. 머릿속으로 가끔 떠올렸던 상상이 아닌 이제 현실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중간에 큰 위기도 찾아와서 갈라질 뻔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 나는 J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두 번 다시 J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필사적으로 매달려서 그녀의 마음을 붙잡았다. J는 나의 진심을 알아주고 내 손을 잡아줬다. 정말 고마웠다.
J와 결혼해야겠다고 처음 생각이 들었던 건 연애 초기에 보여줬던 J의 반응이었다. 당시 나는 다니던 회사로부터 부당한 대우에 참을 수 없다 판단하고 뒤돌아보지 않고 사직서를 던지고 나왔다. 그러면서 J에게도 이 사실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당장 만나자고 카톡을 보냈다. 퇴근 후 만난 그녀에게 내가 오늘부로 퇴사했다면서 퇴사를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나는 최악의 상황(이별)까지 고려했고, 그 상황이 오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이려고 마음먹었다. 나의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던 J는 "뭐 어때. 다른 곳에 취직하면 되지. 그때까지 내가 먹여 살릴게"라고 쿨하게 반응했다. 그때 대답에 대해 물었더니 J는 "너는 능력이 되니까 걱정 안 했다"고 설명했지만, 그 당시 나는 J의 한마디가 큰 힘이 됐고 '이 사람이라면 평생 함께 해도 되겠다'라는 결심으로 발전했다.
J는 항상 나를 배려해 주고 자기 자신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거나 보지 못했던 것들을 이야기해 주는 똑똑한 사람이다. 또 표현이 단순하고 직관적인 T형인 나와 정반대로 감성적이고 다양하게 표현할 줄 아는 F형의 소유자. 비슷한 점도 있지만 나와 정반대 성향도 많았다. 오히려 나는 그런 점이 좋았다.
그동안 '나 자신'을 최우선순위로 뒀던 나는 J를 만나면서 나보다 J를 내 삶의 최우선순위로 올려뒀고, 그녀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지닌 안 좋은 습관들도 바꿔나가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결혼하자는 당사자간 의사 일치가 이뤄진 후, 내 머릿속은 '인사이드 아웃' 조이가 재생한 행복의 멜로디로 가득 찼다. 본격 결혼 준비를 위해 나보다 먼저 결혼한 지인들에게 자문을 구하고자 연락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식장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식장을 검색하는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한 번 사용하는데 가격대가 기본 천만 원대라고? 이게 맞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대도 있지만, 최소 1년 뒤에 결혼한다면 그 가격에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심지어 내년 가을까지 예약이 꽉 찬 식장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뉴스에선 해마다 결혼하는 커플 수가 점점 줄어든다고 보도했는데, 팩트체크 제대로 한 게 맞나 의심스러웠다.
먼저 결혼한 지인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결혼업체 가격은 매해 오르더라. 코로나 팬데믹에 1도 타격 안 받는 몇 안 되는 분야야. 결혼하는 사람들이 매년 있으니 수요가 꾸준히 있고, 물가도 계속 오르잖아?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의 굳건한 결혼의지만 있으면 결혼할 수 있다는 건 비현실적인 소리다. 현실 결혼에서 의지 만큼 중요한 건 바로 돈, 돈, 돈이다. 매해 꺾이지 않는 기세로 터무니없이 높아지는 결혼 비용은 우리를 포함한 결혼을 준비하는 수많은 커플들의 의지를 꺾으려고 한다. 칼만 안 들었지, 돈으로 위협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상 때문에 예비부부들을 대상으로 한 서바이벌 예능까지 탄생한 게 아닐까?
본격적으로 입장하기 전, 지인들이 '결혼 후배'인 나에게 이런 저런 팁을 알려줬다. 그 중 한 명은 결혼 준비에 필요한 것들을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를 하나 추천해 주면서 여기 보고 견적을 미리 한 번 뽑아보라고 알려줬다. 우리보다 먼저 결혼 준비하고 있는 J의 회사 동료는 자신이 도움받고 있는 웨딩플래너 업체를 추천해 줬다.
자, 지금부터 빌런들에게 당하지 않기 위한 결혼 전쟁 시작합니다. 드루와 드루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