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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Nov 25. 2023

공고 : 다음 조건에 맞는 식장 찾습니다

예비부부의 조건을 100% 맞출 웨딩홀을 운명(?)처럼 만난 썰

결혼하자고 양 당사자간 의사를 확인한 뒤, 며칠 지난 어느 날.


J와 카톡으로 대화하다가 결혼식 장소를 어디로 선정할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두 사람 모두 호화롭게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 달랐다. 나는 지나치게 과소비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러프한 기준치를 가지고 있었고, J는 결혼식은 경건한 마음으로 하고 싶다면서 성당 결혼식을 하고 싶다며 자신의 워너비를 털어놨다.


때마침 내가 다녔던 대학교가 천주교였고, 교내 성당에서 동문들이 종종 결혼했던 광경을 목격했던 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특히 동문이면 성당 대여 및 계약 면에서 혜택이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기억났다. 내가 직접 확인한 건 아니고 대학 동기 혹은 선후배에게 건너 건너서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래서 찾아보게 된 교내 성당 결혼식 신청. 다행히 우리가 원하는 날짜가 비어있었고, 가격대도 나쁘지 않았다. 여기로 정했다! 라고 확정 짓고 싶었지만 뜻밖의 암초처럼 걸리는 문제점이 등장했다. 식을 올린 후, 하객들을 대접할 식사 장소가 문제였다. 성당부터 식사장소인 동문회관까지 동선이 제법 거리가 돼서 초행길인 이들이 자칫 헤맬 수도 있었다. 또 성당이 언덕에 있고, 차량 이동이 수월하지 않아서 이 또한 걸림돌이 됐다.


눈물을 머금고, 모교 성당 빠이 빠이 빠이 빠이야.


1순위가 물거품이 됐지만, 안타까워할 겨를이 없이 다음 장소를 물색했다. 결혼하는 커플 수는 매해 떨어진다는 통계가 무색할 정도로 식장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 수준으로 피켓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혼한 친구들이 식을 올렸던 식장들이 떠올라 가격대를 검색했다. 4년 전 결혼했던 군 동기 L이 결혼식 했던 여의도 A식장은 4년 간 물가 상승률이 반영돼 매우 뛰어오른 상태. 최근 참석했던 20년 지기 베프 K가 결혼식을 올렸던 수원 B식장도 생각났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계약했다는 그의 말이 떠올라 이곳을 제안했으나 J에게 단칼에 거절당했다. J의 친척들이 오기엔 수원의 접근성이 딱히 좋지도 않았다. 너무 내 생각만 했다. 여기도 탈락.


우리 커플이 원하는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2023년 4월(4월 중~말), 서울 한강 이남 일대(강남~송파 사이), 오후 2시대.
가성비 좋으면서 성당처럼 경건한 분위기


전문가가 아닌 두 사람의 서칭으로 최적의 식장을 찾는 데 한계가 있었다. 결국 전문가들이 모여있는 웨딩플래너 업체에 의뢰하기로 결정했다.


식장을 찾지 못한 예비부부를 도와주세요 전문가님




10월 어느 날 토요일 오전.


웨딩플래너 업체 ㄱ의 ㅁ부장에게 상담받았지만, 그는 우리가 내건 조건에 부합하는 예식장 후보군을 보여주지 못했다. 10여 곳 중 한 두 곳이 조건 일부와 비슷하긴 했지만, 우리의 미간은 계속 구겨진 상태. 몇 군데 더 보여주긴 했지만, 원하는 가격대 날짜 모두 맞추기 힘들 거라며 부정적인 말만 건넸다.


같은 날 오후 ㄷ 웨딩플래너 ㄴ매니저가 보여준 식장 리스트를 보면서 ㅁ부장의 서칭을 더욱 의심하게 됐다. 왜냐면 ㄴ매니저가 우리가 원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식장 C를 찾아낸 것이다. 강남 부근에 위치했고 때마침 4월 말 오후 2시대 타임이 비어있었다. 가격대도 부담 없고, 성당 같은 분위기의 홀도 구비되어 있었다.


찾았다, 우리의 결혼식장! 웬일이니!


이렇게 보면 ㄴ매니저와 계약했을 거라고 추측하지만, 우리의 선택은 ㅁ부장이었다. ㄴ매니저가 알려준 정보는 분명히 고마웠지만, ㄷ업체가 비동행업체고, ㅁ부장이 우리에게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선택지가 더 많았다.


또 식장은 웨딩플래너 통하지 않고 최종적으로 예비부부-식장이 계약하는 점도 있었다. ㄴ매니저에겐 미안하지만, 그가 전해준 소중한 정보를 가슴속에 품었다. 이 은혜를 잊지 않을게요. 결혼식 준비 잘하시고 행복하시길 빌어요!


웨딩플래너 계약을 마친 뒤, 우리는 C식장을 ㅁ부장에게 보여주며 "여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몇 군데 더 찾아주세요"라고 요청했다. 그랬더니 ㅁ부장이 비슷한 후보군으로 2군데 찾아줬다. 검색값을 더욱 디테일하게 알려줘야 하는구나. 먼저 강남에 위치한 D식장은 홀이 하나인 반면에 다른 예식이라 섞일 염려는 없었고, 강남의 E식장은 예비부부, 하객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네임드였다. 여기까지 받고 현장답사를 가보자.




10월 말 토요일 오전, 강남 C식장.


원하는 조건에 모두 부합하는 식장 방문을 앞두고 우리 커플은 너무나 설렜다. 여기서 결혼식을 올리면 어떨까 하는 상상으로 머릿속으로 가득 채운 채 식장 정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선수, 아니 예비부부 입장하실게요!


C식장은 3개 층으로 구성됐고 홀은 1, 2층마다 하나씩 있어서 겹칠 일도 없었다. 하객들을 대접할 부페 식당은 지하 1층에 있는데, 두 갈래로 분산되어 식사하게끔 되어 있었다.


1층 홀은 야외결혼식을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로 구성되어 있고 성당 의자처럼 일자로 연결되어 있었다. 버진 로드는 단상까지 살짝 걸어 내려가는 코스다. 어두우면 걸려 넘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여긴 패스하고 2층으로 올라가 봤다.


2층 홀은 말 그대로 미니 성당을 꾸며놓은 듯했고, 홀 전체 조명이 밝았다. 버진로드도 굴곡 없이 평평했다. 때마침 2층서 진행되는 식을 살짝 지켜봤는데, 신부대기실과 홀이 문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동선 또한 바로 직진이라서 J는 대만족. 여기에 탈의실도 2층에 위치하고 있어 2층이 베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찾았어, 바로 여기야!

놓치면 안된다고 계속 머릿속에서 외치고 있지만, 신중을 기했다. 현장답사를 갔는데 예상 이상으로 좋은 예식장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C식장 예약실장님도 머뭇거리는 태도를 단번에 눈치채고 "다른 데도 한 번 보시고 오세요. 불안하시면 예약금 10만 원만 걸어두셔도 돼요"라고 친절히 알려줬다. 베테랑의 짬바에 우리 커플은 불안감을 내려놓고, 예약금을 걸어뒀다.


점심을 먹고 D식장으로 이동했다. C식장과 다르게 여기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간다. 우리가 식장으로 들어가는 순간, 막 결혼식을 마친 커플이 예식 복장으로 문 밖으로 나갔다. 그러더니 에스컬레이터 쪽을 등지고 기념 투샷을 찍고 있는 것이었다. 하객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도 구경할 것 같은데, 조금 부담스러웠다.


D식장은 홀인 하나밖에 없지만, 그만큼 홀 하나에 열과 성을 다해 투자한 게 눈에 들어왔다. 생화로 꾸민 버진로드와 신랑신부에 집중하기 최적인 조명 구성. 신부대기실도 홀 못지않게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화려한 식장에 우리가 원하는 타임이 빈다고? 세상에나.



그런데 걸리는 건, 음식 구성과 동선. 미리 식장을 통해 예약한 도시락으로 하객들에게 대접해야만 했고, 정신없는 결혼식 당일을 고려했을 때 도착→대기실→식장→식당 동선이 복잡해 보였다. 이 지점에서 C식당이 나은 것 같아서 "상의 후 연락드릴게요"라고 말만 남기고 떠났다.


E식장은 앞서 두 식장과 달리 따로 현장답사 예약을 잡지 않았다. 인기 많은 곳이라 ㅁ부장이 예약 잡는 데 실패했단다. 슬쩍 보고 온 뒤에 현장답사 예약을 따로 잡아도 된다는 조언에 일단 방문.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 얼굴이 구겨졌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여러 층을 올라가야 했고, 식장 복도가 전반적으로 좁았다. 심지어 하객들이 몰릴 경우, 빠져나가다가 스트레스받을 것만 같았다. 여긴 아니다 싶어서 타고 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도로 내려갔다. 도망치자.


그래! 걸심했어!

결국 처음부터 선택한 C식장으로 최종결정했다. 조건에 완벽 부합하는 대상은 하나지, 둘이 동시에 나오지 않는 법이었다.


결혼식을 치르고 한참 지난 시간에도 C식장을 선택한 건 후회가 없었다. 다만, 결혼식 당일 결혼식장에서 발생했던 소소한 문제 몇몇이 나를 짜증 나게 만들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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