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Hyun Dec 09. 2023

숨 막히는 정상회담: 그 이름은 상견례

남북관계 못지않게 긴장감 쫀쫀했던 양가 회담

남녀 두 사람이 만나 부부가 되는 의식을 치르는 걸 우리는 결혼이라고 부른다. 요즘에야 결혼 당사자 두 명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지만, 조선시대로만 가더라도 남녀 두 사람보다도 부모와 집안이 좌지우지했다. 어떤 이들은 결혼식 당일이 되어서야 자신의 배우자 정체를 알게 된다고 하질 않나.


과거보단 많이 약화됐다곤 하나, 여전히 부모나 가족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상대방의 가족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나도 그랬고, J도 그랬다.


J의 부모님을 처음 뵀을 때를 떠올려보자면, 어색함이 가득했던 식사자리였다. 한식 정식코스가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만큼 긴장의 연속이었던 그때, J의 아버님이 어색함을 깨는 질문 한 마디를 던지셨다.


"자네 직업이 안정적인가?"
"지금이라도 전공 살려서 로스쿨 가게. 아니면 공무원 준비를 하던지"


돌리고 돌려서 돌아오는 반대의 스멜


공기업 부장 출신의 눈에는 연예부 기자라는 직업이 그리 '안정적인 직종'으로 보이지 않았고 나를 향해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이셨다. 예상했던 그림이긴 하지만, 뭔가 나 자신이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썩 좋진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내 자존심을 드러낼 때는 아니다. 이자리서 나라는 존재를 증명해야 했으니까.


첫 만남에서 경제적인 안정감 부족을 지적하셨던 J의 아버님의 한마디에 반박하기 위해 그동안 내 이름으로 모아둔 적금, 비상금 리스트를 싹 끌어모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2차 만남에서 보여드렸다. 이전과 반응이 달라지긴 했지만, 나의 재정 포트폴리오가 큰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나를 향해 굳건한 믿음을 보여줬던 J의 강력한 의지가 J의 부모님을 꺾은 게 매우 컸다. J야 고마워.


우리 부모님께 J를 소개할 때는 큰 장벽이나 걸림돌은 전혀 없었다. 첫 만남에서 J는 초면인 우리 부모님을 상대로 유창하게 대화를 주도해 나갔다. 여기에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었기에, 좋은 인상을 남기는 건 수월했다. 단번에 하이패스였다.


이렇게 양가 부모님을 만나 뵙고 얼굴도장을 찍고 있는 와중에 우리는 "결혼하자"고 의사 합치를 이뤘고, 이를 양쪽 집에 전달했다. 결혼 의사표시 다음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질문


상견례는 언제 할 예정인데?

드디어 올 것이 왔군. 상견례 질문.


이 순간부터 우리는 양가를 대변하는 외교실무자가 되어 양측 상관(=부모님)의 의사를 전달하고 조율을 시도하는 임무를 맡았다. 먼저 결혼한 이들의 후기들을 탐독해 본 결과, 결혼하기 3~6개월 전에 평균적으로 진행한다는 걸 확인했다. 내년 4월 마지막 주말로 본식 날짜를 확정 지었기에 가급적 올해 안에 해야 여유롭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양가에 원하는 날이 있는지 슬쩍 던져봤다. 역시 대답은 "내년이 되기 전에 했으면 좋겠다"는 추상적인 답변. 결국 우리가 알아서 눈치껏 정하면 되겠다 싶어서 11월에 가능한 주말 있는지 부모님들의 스케줄을 확인하며 가능한 날짜를 점차 좁혀갔다. 양가 부모님 모두 가능한 날짜가 도출됐으니 11월 셋째 주 주말.


그다음은 양가 합쳐 8명 모두 만족할 만한 상견례 장소를 찾는 것. 각각 수원-인천에서 출발하기에 중간지점이 필요했고 불필요하게 비싼 곳이 아니면서 분위기 괜찮은 리스트들이 필요했다. 


결혼 준비하면서 위기에 닥친 이들이 헤매지 않도록 언제나 안전바 역할을 하는 결혼 준비 카페의 찬스를 사용했다. 잠실 L타워 근방에 위치한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그곳에서 상견례한 부부들 리뷰들을 확인해 보니 "부담 없어서 추천한다"라고 평을 남겼다. 그래, 여기로 정했다!


좋았어, 당장 진행시켜!


날짜, 장소를 정했으니 50%는 완료. 넥스트 레벨부터 고민됐다. 상견례한 선배들의 이야기들을 찬찬히 살펴봤는데, 양가 부모님 및 기타 가족들에게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드리는 소정의 답례품을 돌린다는 것.


어찌 보면 어렵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 커플에겐 가장 신경 쓰였다. 무얼 드려야 양가 모두 만족감을 느끼고 우리가 준비하는 데 부담이 없을까. 결혼하는 부부들이 무난하게 마카롱 세트를 돌렸다는 후기들이 많아 마카롱이 어떠냐며 J에게 기안을 올렸다. 이왕이면 요새 스테디셀러처럼 찾는다는 S호텔 마카롱을 추천했다. 


마카롱을 듣고 J가 괜찮겠다고 반응했다. 하지만 최종 결재가 나지 않고 반려됐다. 가격에 비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이유다. 아쉽지만 마카롱은 여기까지만.


매의 눈을 장착하고 적합한 답례품을 찾으러 나왔다


적당한 답례품을 찾으러 백화점으로 나왔다. 우리는 식품관이 위치한 지하 1층을 주공략 했다. 부모님들이 간단하게 드실 수 있는 음식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지하 1층을 몇 바퀴를 돌며 이리저리 살핀 결과, 화과자로 최종결정했다. 어르신들이 먹기에 부담이 없고, 가격대도 괜찮았다. 또 고급 보자기로 포장이 가능한 게 우리가 선택하는 데 있어 또 다른 메리트가 됐다. 이쯤 하면, 다 준비된 것 같다.


상견례일이 하나씩 다가오던 중,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아흔이 넘으신 할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고, 이 여파로 인해 상견례일을 일주일 미루게 됐다. 다행히 예약해 둔 식당이 변경한 날짜에도 예약 가능하다고 해 한숨 돌렸다.



결전의 그날이 왔다!


11월 마지막주 일요일, 결전의 회담일 아니 상견례 당일.


겨울 초입에 다다라서인지 아침부터 차가운 공기가 가득 찼고, 새하얀 입김이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우리 가족은 약속된 시각보다 30분 일찍 도착했고, 미리 식당에 들어갈 수 없어서 근처 편의점에서 몸을 녹이며 J의 가족을 기다렸다.


10분 전, 우리 식구가 먼저 예약한 방에 입장했다. 혹시나 방을 못 찾을까 봐, 언제 도착하나 궁금했던 나는 우리 가족을 대표해 J네 가족을 마중 나갔다. 입구에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J네 가족이 도착했다. 재빨리 에스코트해서 예약한 룸으로 안내했다.


J의 가족이 걸어올 때 느꼈던 아우라는 이런 느낌이었달까


J네 가족이 룸의 문을 열고 입장하자, 부모님은 살짝 긴장하신듯한 표정을 지은 채 일어서서 반겼다. 서로 미소를 띠며 인사했으나, 초면이 선사하는 어색 어색 아우라를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말수는 줄어들고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동공은 쉴 새 없이 움직였고 물 마시는 목 넘김 소리만 또렷하게 들려왔다.


온몸을 짓누르는 묵직한 공기를 깨는 한 마디가 우리 집 측에서 튀어나왔다. 아버지가 스몰 토크를 던지면서 상견례 당일 아침부터 서울 전역에 내뿜었던 냉기 진화에 나섰다.


나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유창한 언변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한 예로 설연휴 온 친척들이 모여 새해인사를 할 적에 해마다 고리타분한 덕담을 던지는 다른 어른들과 달리, 매번 어디서 레퍼런스를 찾아오시는지 다양한 덕담으로 리스너들을 사로잡아왔다.


오랜 내공을 바탕으로 아버지가 상견례 회담에서 대화를 주도해 나갔다. 우리 가족 소개부터 양가 자녀 칭찬, 상대방의 답변을 이끌어내기까지 등 그야말로 청산유수였다. 베테랑의 리드를 지켜봄과 동시에 건너편도 교차해서 살폈다. J네 가족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쉽게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아버지의 분위기에 조금씩 무장해제가 된 듯 보였다. 다소 유해진 분위기에 J의 아버님과 말문을 여시면서 옅은 미소를 보이셨다. 이제 괜찮아진 걸까. 휴.


대화가 잘 이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상견례 회담 분위기는 "밥묵자~". 아직도 어색하고 긴장되는...   


초반 분위기는 괜찮았지만, 나와 J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오가는 대화 중 한 마디가 급랭 시킬 수도 있었고, 양가 식구들에게 대접하는 음식이 입맛에 잘 맞을 지도 걱정됐다. 이 식당이 상견례 장소로 많이 추천받았고 식사도 괜찮았다는 평이 있지만, 모두에게 괜찮은 지는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시선은 양가 부모님 쪽으로 고정됐다. 우리가 고른 픽이 마음에 드셨는지 궁금하면서도 조마조마 긴장감 가득. 특히 J의 어머님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J의 말에 따르면, 표정 변화나 말수는 적으시지만 입맛은 까다로우신 편. 이날도 특별한 말씀이 없으시고 표정변화도 없으셨기에 긴장됐다. 그래서 음식이 제대로 소화기관을 타고 내려가는지도 몰랐다. 


그러면서 맞은편에 앉아있는 J와 계속 아이컨택을 했다. 두 사람 모두 쫀쫀한 긴장감을 자랑하는 이 만남이 해피엔딩으로 끝났음 하는 바람으로 끊임없이 양가 가족을 살피기 바빴다. 식구들을 의식하면서 인위적인 미소를 유지한 채로 말이다.


한 시간 반 가까이 이어졌던 상견례 회담은 해피엔딩으로 종료, 한숨 돌렸다! 


숨 막혔던 한 시간 반의 끝은 해피엔딩이었다. 양가 아버님들의 중심으로 대화가 이어졌던 상견례 자리에서 특별히 문제 될 만한 일은 없었고 하하 호호하는 분위기로 성료했다. 우리가 답례품으로 준비했던 화과자 또한 반응이 좋았다. 다행이다. 휴.


상견례 후기들을 살펴보면, 크게 걱정할 일은 없다곤 하지만, 긴장의 끈은 놓을 수가 없었다. 등에서 땀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결혼식 당일까지 거쳐가야 하는 과정에서 큰 산을 하나 넘겼다. 그러나 나와 J를 기다리고 있는 산맥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끝까지 완주해 내야지.

이전 06화 "이러다가 다 죽어!" 혼수 때문에 응급실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