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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Dec 16. 2023

프로여행러의 신혼여행 코스 짜는 법

여행사가 답답해서 제가 직접 짰습니다

J와 머리를 맞대고 결혼준비 계획서 초안을 함께 써내려 갔던 어느 주말. 각종 항목을 체크하며 러프하게 채워나갔고, 다음 항목 란에 도달하게 됐다.


신혼여행지는 어디로?

나는 오래전부터 만약에 결혼하게 된다면 가고 싶은 신혼여행지를 머릿속으로 종종 생각해 봤다. 내가 현재까지 다녀온 곳 리스트들을 찬찬히 되돌아봤다. 한 달 어학연수로 다녀왔던 캐나다부터 중국, 일본, 유럽 배낭여행으로 찍었던 8개국(터키, 체코,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남미 대륙 한 바퀴 돌면서 방문했던 나라들(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 미국, 태국, 홍콩, 라오스 등 총 20개 이상 국가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때 일찌감치 유튜브를 시작했더라면 곽빠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여행 유튜버가 됐을 텐데 쩝.


유튜브를 일찍 알았더라면 나도 여행 유튜버가 됐겠...


앞서 언급했던 국가들 중 하나를 선택할 경우, 재방문이 익숙할 것이고 2회 차로 가게 되면 리마인드 격으로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너무 잘 알아서 기억에 남는 신혼여행지가 될까라는 의문부호도 붙었다. 그래서 기존에 다녀온 곳이 아닌 새로운 장소를 물색했고, 수많은 미방문지 중에서 고르고 골라서 최종으로 선택했다. 멕시코 칸쿤. 사실 남미여행을 계획했을 당시, 길게 잡았을 경우 여기도 다녀와야겠다고 리스트에 넣었다가 제한사항이 생겨 아쉽게 다음으로 기약했던 곳이기도 했다. 휴양지라 부담 없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J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신혼여행지로 유럽을 가보고 싶다고 밝힌 것. 특히 프랑스를 콕 집어서 여긴 무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멕시코 vs 프랑스 대결구도가 되는 듯했지만, 이 승부는 손쉽게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다. 장거리 해외여행 경험이 풍부한 나와 달리 J는 거의 없었고, 한국에서 칸쿤까지 가려면 무조건 경유라 J가 힘들어할 수도 있겠다는 걸 깨달았다. 오케이, 당신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그래서 J가 가보고 싶다는 프랑스 내 지역들을 모아모아 동선을 짜려고 했으나, 생각만큼 녹록지 않았다. 렌트나 시골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구간도 있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도 있었다. 이러한 제한사항을 이야기하자, 결재권자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른 지역을 하나 제시했다.


나 스코틀랜드도 한 번 가보고 싶은데

오~ 스코틀랜드?! 솔깃한데?!


여기서 새롭게 등판한 뉴비 스코틀랜드, J는 드라마 '아웃랜더'를 보고 스코틀랜드를 가보고 싶다고 이유를 덧붙였다. 스코틀랜드 다섯 글자를 듣는 순간, 조금씩 흥분됐다. 영국(=잉글랜드)은 가본 적 있으나, 아직 방문한 적 없는 새 여행지 스코틀랜드에 내 발자국을 한 번 찍을 수 있겠다는 개척자 마인드가 튀어나왔던 모양이다. 스코틀랜드도 받아요.


다만, 걱정되는 게 있다면 스코틀랜드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가지 않는 여행지이다 보니 내가 직접 나서서 짜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샘솟았다. 이쯤이야 어렵지 않다만. 붙어있는 영국도 같이 묶어도 되겠다 싶어 신혼여행지는 이렇게 확정됐다.


이렇게 짜면 좋을 것 같은데?




프랑스와 스코틀랜드, 그리고 영국 루트를 짜기 전에 ㅁ부장이 이전에 우리한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신혼여행지 추천 여행사를 소개해준다고 했었는데, 웨딩플래너 픽이면 어떤 상품 제시하나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카톡으로 물어봤다.


나 : 플래너님, 저희가 신혼여행 준비차 예약하려고 하는데요. 혹시 추천할 만한 곳 있을까요?

ㅁ부장 : 안녕하세요 예비신랑님^^ 혹시 신혼여행지는 어디로 계획하시나요?

나 : 프랑스와 스코틀랜드, 그리고 영국이요!

ㅁ부장 : 스코틀랜드요?


스코틀랜드 다섯 글자에 잠시 당황한 ㅁ부장. 스코틀랜드가 뭘 그리 잘못한 건가, 반응이 영 찜찜하게 느껴졌다. 돌아온 그의 대답.


ㅁ부장 : 저희 쪽 여행사에선 스코틀랜드가 없을 것 같은데요 ^^;; 프랑스, 영국으로 가시는 건 어떨까요?


아니 왜 너님 마음대로 추천하세요??


아니요, 스코틀랜드 필수입니다. 웨딩플래너 계약 맺을 때부터 신뢰감을 떨어뜨려서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예상된 반응 그대로 보여줄 줄이야. 못 미덥지만, 그래도 내가 물어봤으니 일단 ㅁ부장픽 여행사 2곳 담당자에게 내 연락처를 넘겼다.


하루 뒤, A여행사가 카톡으로 연락 왔다. 신혼여행지로 어디로 가느냐는 질문에


프랑스 파리, 스코틀랜드, 영국 런던이요~!

A여행사 담당자 또한 스코틀랜드 장벽에 막혀버렸다. 자기네 여행사에선 스코틀랜드는 가지 않는다면서 파리, 런던으로 추천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이미 나는 "당신은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라고 탈락의 불구덩이로 보낸 상태이나, 혹시 내가 직접 코스를 짤 때 조금이나마 도움 될까 싶어 일단 받기로 했다. 당연히, 그 뒤로 연락하지 않았다.


또 하루가 지나고, B여행사가 컨택해 왔다.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답변으로 응수했더니 똑같은 반응이었다.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기대감을 가진 내 잘못이지. B여행사도 파리-런던 추천코스로 보내준다길래 받기만 하고 연락을 계속 취하지 않았다.


A, B여행사가 보낸 패키지 상품 내역도 찬찬히 살펴봤다. 참고할 만한 내용이 1도 없었다. 원치 않은 스냅사진 패키지까지 추가해 뒀고, 일정도 길어봐야 8일이 최대치였다. 그럼 그렇지, 조금이라도 기대한 내가 바보였지. 


역시 내가 직접 나서야겠다.




비행기 예매부터 시작했다. 나홀로 여행 10년 이상된 짬바를 십분 발휘해 한국에서 직항으로 운항하는 파리, 런던을 IN&OUT을 설정하며 다구간으로 검색했다. 신혼여행 기간이 2주 이상이라 생각만큼 선택 폭이 넓지 않았으나, 출발 6개월 전이면 국내 메이저 항공사도 가격이 싸게 나왔다. 장거리 비행 경험이 적은 J에게 잘 알려진 메이저 항공사가 아무래도 편할 것이라 판단했다. 망설이지 않고 바로 예매 클리어.


이어 파리-에든버러, 에든버러-런던 이동 편 구하기. 파리-에든버러는 가성비 좋은 저가항공사가 있어 손쉬웠고, 에든버러-런던은 비행기 혹은 기차가 있었다. 다만 비행기보단 기차가 런던 중심부로 접근하기 더 용이해서 기차로 예매 완료. 이쯤이야 뭐 오랜 해외여행 짬바면 거뜬하지. 


비행기 예매, 참 쉽쥬?


그다음은 매우매우매우 중요한 숙박시설. 잠자리, 물갈이가 전혀 없는 내 기준이 아닌 장거리 여행 초심자 J에게 최적의 플레이스로 찾아야만 했다. J가 내건 조건은 딱 하나.


베드버그가 나오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이를 참고해 파리와 스코틀랜드, 그리고 런던 호텔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직 출발하기 반년이나 남았는데, 5월에 호텔 예약하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대체 사람들은 언제 호텔 예약을 하는 것이길래 매진 혹은 마음에 들지 않는 방 1~2개 남는 수준일까. 5월의 유럽이 초성수기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니 왜 없어요??? 호텔 널리고 널렸는데 왜 없어요???


'될 놈은 뭘 해도 된다'라고 했던가. 그 매진이 이어지는 호텔 틈새로 괜찮은 곳을 찾아냈다. 파리는 튈르리 정원 바로 앞, 스코틀랜드(에든버러)는 기차역 근방, 런던은 타워브리지 근처로 잡아뒀다. 이어 가장 솔직하기로 소문난 한국어 후기들을 꼼꼼히 살펴본 결과, 베드버그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체크인 전날까지 무료 취소 가능한 것과 체크인 때 결제할 수 있는 것 모두 확인했다. 이렇게 안전장치를 확보하며, 여기로 예약 완료!


그리고.. 스코틀랜드 스카이섬 투어가 남았다. KBS 2TV '거기가 어딘데?' 등 국내방송에서도 몇 번 나오긴 했지만, 아직 한국에선 낯선 여행지. 그래서 말이 통하는 한국인 투어를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있다 하더라도 수요가 적으니 가격대는 훨씬 더 비쌌다.


어쩔 수 없이 현지 투어 업체를 서칭했다. 현지 업체는 국내 여행사들과는 좀 달랐다. 한국의 경우, 1년 뒤도 예약가능한 반면, 여기는 최대 3달 뒤까지만 예약 가능하다는 업체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미리 예약이 불가능한 업체들을 하나 둘 소거하다 보니 T 여행사가 내 눈에 확 들어왔다. 후기들도 보아하니, 충분히 괜찮은 투어사인 건 확인했고 가격도 나쁘진 않고. 뭘 망설이나, 여기로 픽!


이쯤 되면 프로여행러가 신혼여행 코스를 짜는 게 특별한 게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느낄 텐데, 반전은 하나 공개하겠다. 나의 여행 준비는 여기에서 끝났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면, 자고로 여행은 A부터 Z까지 계획대로 짜면 좋긴 하겠지만 현지 당일에 마주할 예외변수가 충분히 생기기 마련. 예외 변수에 의해 계획이 흐트러질 수도 있으니, 큰 틀만 짜고 현지 컨디션에 모든 걸 맡기기로 했다. 대신 여행 책자를 보면서 어디 갈지, 무얼 할 지만 천천히 살펴봤다. 큰 기대를 하셨다면 모두에게 미안합니다만, 사실 여행은 P처럼 하는게 정신건강에 좋다는 걸 다년간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신혼여행의 엔딩을 미리 말하자면, J와의 신혼여행 코스는 대성공이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다루기로 하겠다. 프로여행러의 신혼여행일기를!


 

다음 시리즈도 많관부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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