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리뷰
애니메이션 거장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 10년 만의 컴백작, 제작기간만 7년, 신비주의 마케팅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개봉 당일까지 홍보 마케팅에 소극적이었고, 언론시사회도 건너뛴 이유를 직접 보고 나서 이해했다.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쿰쿰한 알맹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일본 언론인 요시노 겐자부로가 집필한 저서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고 영향을 받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반영해 집대성한 작품이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던 1930년대를 살았던 11살 소년 마키 마히토(산키토 소마)에게 자신을 투영했다.
화재로 엄마를 잃은 마히토는 아빠 마키 소이치(기무라 타쿠야)를 따라 엄마가 살았던 시골의 저택에 살게 됐다. 엄마를 향한 그리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마히토 주변에 왜가리(스다 마사키) 한 마리가 맴돌기 시작했고, 엄마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왜가리의 말에 마히토는 집 앞에 있는 오래된 탑 안으로 들어가 이세계(異世界)로 향하는 내용이다. 이세계로 이어주는 통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표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터널을 연상케 한다.
이세계로 들어서는 순간, 미야자키 하야오표 판타지들이 펼쳐진다. 불을 지배하는 소녀 히미(아이묭), 인간이 태어나기 전의 존재라는 와라와라, 이세계의 지배권을 노리는 잉꼬 대왕(쿠니무라 준), 그리고 이세계의 주인이 된 큰할아버지(히노 쇼헤이) 등을 만나는 여정과 함께 악의 없는 순수한 세상을 선사해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일본 영화음악의 거장 히사이시 조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하면서 마히토의 모험에 신비로움을 더한다.
그러면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분위기를 띠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통해 다양한 메시지도 심어놓았다. 현실에서의 인연이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불교적 메시지, 마히토와 큰할아버지와의 대화에선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책이 던지는 주제의식을 던진다. 영화 제목처럼 "어떻게 살 것이냐"라고 질문을 던지지만, 관객들에게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감독 스스로 "나는 이렇게 살았다"라고 보여준다.
하지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한국보다 먼저 개봉했던 일본 현지 반응처럼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 많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많을 뿐만 아니라, 은유적이고 현학적인 묘사들 또한 넘쳐난다. 그래서 보는 이들에게 난해한 아름다움으로 비치고, 영화를 한 번만 보고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지브리 스튜디오 특유의 따스한 인간미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특히 한국 관객들에게 쿰쿰하고 찝찝하게 다가오는 부분은 바로 2차 세계 대전이라는 배경을 다루는 방식이다. 전작인 '바람이 분다'처럼 전쟁이 벌어진 것에 대한 변명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던 중일전쟁을 배경 삼으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과욕이나 잘못된 판단에 대한 표현은 배제한 채 그 시대를 살아가는 선량한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담는다. 심지어 마키 소이치는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공장 대표로 재력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인다.
'바람이 분다'처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펠리컨 떼로 전쟁에 참여했던 제로센 전투기, 일본 제국, 거기에 동원된 일본인들을 지칭하고 있다. 펠리컨은 "빨리 죽여달라"며 자신들은 저주받은 바다를 벗어나지 못한 채 물고기가 없어 와라와라를 잡아먹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마히토가 죽은 펠리컨을 묻어주는 것으로 마무리했을 뿐, 전쟁에 대한 반성 혹은 반전주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이 봐왔던 것만 보여주며 마히토의 의지를 강조하는 발판으로 깔았다. 작품의 이러한 역사관은 아픈 상처를 지닌 한국에겐 암초일 수밖에.
게다가 이모에서 새엄마가 된 나츠코(기무라 요시노)의 신분 변화도 국내 정서로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는 후반부 아련한 감동을 선사하기 위한 복선 장치로 활용되긴 하지만, 혈연과 촌수에 민감한 한국 관객들이 쉽게 받아들이긴 어렵다.
물론 전쟁이나 부적절한 사실혼이 마히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진 어른들의 사정이며, 소외됐던 그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서사이긴 하다. 그렇다 해도 모든 이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난해함을 지니고 있고, 위에서 언급한 불편한 지점들 때문에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어렵다. 그렇다 보니 123분간 온전히 영화에 집중하지 못한다.
★★
해당 글은 헤드라잇에서 발행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