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8일~21일 기록 재구성
남아메리카 최강 팀을 가리는 대륙컵, 코파 아메리카. 지난해 개최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1년 연기해 6월부터 열렸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콜롬비아가 개최국 박탈되고, 아르헨티나 홀로 개최할 능력이 부족해 브라질에서 진행했다.
결승전은 남미의 최강 라이벌, 브라질 대 아르헨티나가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에서 맞붙었다. 축구에 미쳐 사는 두 나라가 붙었으니, 온전하게 끝날 리는 만무할 터. 게다가 각국을 대표하는 세계 최강 스타 플레이어 네이마르(브라질)와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가 선봉에 섰는데, 말 다했지.
5년 전 남미여행을 할 때도 코파아메리카가 열렸다. 덕분에 두 사람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했다. 세계 최정점에 섰음에도 리오넬 메시가 아르헨티나에 한 번도 트로피에 가져다주지 못해서였는지, 일부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메시는 바르셀로나 유스라서 스페인 사람"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당시 아르헨티나가 준우승에 그쳤고, 메시를 비난함과 동시에 디에고 마라도나가 더 낫다고 떠들었다. 물론 메시를 무한한 존경을 표하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다행히 이번 코파아메리카에서 아르헨티나가 우승했고, 메시는 만 34세에 첫 국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이번엔 준우승하긴 했으나 브라질에서 네이마르는 거의 종교처럼 떠받드는 인물이다. 숱한 레전드들이 셀레상(선택받은 사람들, 브라질 국가대표팀 애칭)을 거쳐가며 영광을 누렸으나, 셀레상은 네이마르의 존재 여부에 크게 좌우되고 있다. 2016년 8월 중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도 네이마르 이름 하나에 브라질 사람들은 아드레날린을 맘껏 뿜어냈다.
2016년 8월 18일 목요일 오후, 리우데자네이루 상공. 약간 흐리긴 했으나, 비가 쏟아질 것 같진 않았다. 하늘을 날고 있는 이곳은 6주 남미 여행의 종착지이자 동시에 올림픽 축제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리우데자네이루, 남미 여행을 와야겠다고 결심을 내렸던 결정적 계기가 된 곳이었다. 4년 전, 런던 올림픽 당시 축구 결승전을 현장서 구경하지 못했던 설움을 이번에야말로 풀겠노라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그래서 남미로 출발하기 3주 전, 결승전 피켓팅도 수월하게 끝냈다. 그 티켓을 이제야 쓸 때가 된 것이다.
리우데자네이루 갈레앙 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특이한 광경이 나를 맞이했다. 공항 치안을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맡고 있었다. 군인들이 공항에 나타난 이유는 이랬다. 수년 전부터 브라질 상황은 악화되고 있었다. 경제는 계속 지하 수심을 뚫고 떨어질 만큼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고, 지우마 호셰프 대통령은 탄핵 소추돼 국가 원수 자리가 공석이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 달째 봉급을 받지 못한 리우 경찰, 소방관들이 참다못해 올림픽 한 달 앞두고 파업 선언을 했다. 그래서 군인들이 전격 투입됐다고 오가다 만난 여행객들에게 듣고 뉴스로도 봤는데, 두 눈으로 목도할 줄이야.
축제와 파업을 동시에 경험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공항은 한산하고 고요했다. 입국 게이트로 나오자, 호객 행위하는 택시운전사들과 마주쳤다. 어쭙잖은 일본어, 중국어로 다가오는 이들을 제치고 공항 건물 밖으로 곧장 직진했다. 공항 앞엔 여행객들을 하이에나처럼 노리고 있는 매서운 눈들이 많았다. 그중 호리호리한 체형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저 사람 차를 타야겠다.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얼굴을 한 이 남자 이름은 가브리엘. 능숙한 영어 솜씨를 뽐내며 내가 묵을 호스텔까지 리우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다 올림픽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가브리엘: 혹시 올림픽 경기도 관람해?
나: 어, 축구 볼 예정이야.
가브리엘: 남자? 여자?
당시 브라질은 남녀 모두 축구 종목에 출전했는데, 대표팀 슈퍼스타들의 네임밸류가 상당했다. 남자는 새로운 축구황제 네이마르, 여자는 '스커트 입은 펠레' 마르타가 있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남녀 동반 금메달에 사활을 걸었다. 아쉽게도 여자대표팀은 스웨덴에게 승부차기 접전 끝에 4강서 탈락해 3, 4위전을 치러야 했다. 남자 대표팀은 결승서 독일과 만난다. 가브리엘이 어느 경기인지 묻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나: 남자 경기 보러 왔어. 남미 여행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축구 때문이야.
가브리엘: 너 훌륭한데? 결승전 어떨 것 같애?
나: 네이마르가 있으니까, 이기지 않을까? 난 브라질에 걸겠어.
브라질 우승을 기원해주자, 가브리엘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호스텔에 도착했다. 2박 3일간 묵을 호스텔은 센트로와 라파지구 경계에 위치했다. 허름한 내부와 침대를 갖추고 있으나, 함께 투숙하는 사람들은 매력이 흘러넘쳤다. 신기하게도 투숙객들 국적이 거의 겹치지 않고 각양각색이었다.
건물 2, 3층을 차지하는 호스텔에는 2인이 최대 정원인 조그마한 야외 발코니가 있었다. 발코니 너머에는 야외 테이블 여러 대 갖춘 술집이 자리했고, 브라질 사람들이 기분 좋게 한 잔 하고 있었다. 단점이라면, 그들이 떠드는 소리와 연주하는 악기 소리가 해 뜰 때까지 쩌렁쩌렁하게 울렸고, 방음이 전혀 안된다는 것. 이것이 노는 걸 좋아하는 "아퀴 브라지우(여긴 브라질이야)" 스타일이구나.
다음날 아침, 호스텔 앞. 흰색 민소매 티를 입은 멀끔한 청년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호스텔 입구를 열고 나온 나는 그 청년과 인사했다. 전날 남미여행 단톡방을 통해 우연히 연결이 닿은 관이었다. 그는 에콰도르서 해외 봉사활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기 전 남미대륙을 여행하고 있던 방랑객이었다. 그는 예의바르면서도 붙임성 좋고 싹싹했다.
두 남자의 목적지는 '빵산'으로 불리는 팡지아수카르 산, 그리고 산 꼭대기에서 리우데자네이루를 수호하는 코르코바도(=구세주 그리스도상)이었다. 올림픽 기간이어서인지, 센트로 지구 광장과 지하철 일대에 자원봉사자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그들 덕분에 올림픽 기간 전용 지하철 티켓 구하는 것도 순식간에 해결했다.
팡지아수카르 산으로 가려면 플라멩구, 보타포구 지구를 지나가야만 했다. 센트로와는 다르게 조용한 분위기였다. 파란 하늘 위로는 뜨거운 태양이 럭셔리한 건물들을 집중 조명하며 빛내고 있었다. 나중에 현지에 거주하는 교민 분께 듣기론 이 지역들과 코파카바나, 이파네마 지구에 고급스러운 빌딩들이 많은데 부유층들이 모여 살기 때문이라고.
목적지에 다다르자, 팡지아수카르 산에 한 번 올라가겠다고 몰려든 관광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과연 명소는 명소네. 멀리서 봐도, 가까이서 봐도 이름 유래대로 정말 빵을 바다 위에 세로로 세워놓은 듯한 모양이었다. 팡지아수카르는 생김새가 특이해서 유명하지, 막상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면 특별한 느낌은 없다. 1층 구간에는 브라질 플립플랍 유명 브랜드 하바이아나스 상점이 "어서오세요"라고 관광객들을 맞이할 뿐.
대신 팡지아수카르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장관이었다. 이날 날씨가 좋아서 팡지아수카르 옆에 붙어있는 레드 해변과 리우의 자랑 코파카바나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나와 관은 넋 놓고 일대 경치에 빠졌다. 왜 리우데자네이루를 나폴리, 시드니와 더불어 세계 3대 미항이라고 꼽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알겠다.
팡지아수카르 근처 작은 브런치 식당에서 가볍게 끼니를 때우고 코르코바도로 향했다. 코르코바도로 올라가는 밴에 탑승하기 전, 헤알이 떨어져 환전이 필요했다. 하지만 시내 한복판에서 달러를 헤알로 바꿔줄 환전소는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았다. 발을 동동 굴리던 찰나, 브라질 남성 한 명이 어려움에 처한 외국인을 구원해 친절히 환전소 위치까지 데려다줬다. 리우가 예전부터 무법지대라 모르는 사람들 조심하라는 여행후기가 많았는데, 나에게만은 예외였다. 이틀 내내 선한 브라질리언만 만났다. 갓 블레스 유, 신이 당신들과 함께 하길.
분명 같은 날이었는데, 팡지아수카르와 다른 하늘이었다. 코르코바도 매표소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했고, 앞뒤론 하얀 안개가 자욱했다. 여기는 리우가 아니었던가. 다행히 예수상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어딜 가도 핫플레이스에는 사람이 넘치는데, 예수상도 마찬가지였다. 예수상처럼 양팔을 벌려 십자가 포즈로 투샷을 찍고 싶었으나, 같은 생각으로 사진 찍으려는 사람만 예수상 근처에 족히 백 명 이상 몰려든 상태였다. 이를 보고 욕심을 내려놨더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날씨는 맑았으나, 흰 구름 대열이 빌런으로 등장해 코르코바도에서 내려다본 리우 전경을 제대로 찍지 못했다. 눈으로는 아름다운 리우의 모습을 포착하나, 셔터 누르는 속도는 시신경이 뉴런들을 거쳐 뇌로 전달되는 시간을 절대 따라가지 못했다. 터치만 조금 더 빨랐더라면...
아쉬움은 코르코바도 정상에 두고 내려왔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관과 나는 저녁거리를 고민하고 있었고, 이과수 호스텔서 만났던 림 누나가 리우에 있다는 게 문득 생각났다. 같이 불러서 셋이서 코파카바나 해변으로 향했다. 대낮에 해수욕을 못한 것을 이렇게라도 풀어보려고 했다. 코파카바나 해변은 바다를 낀 남부 유럽 도시들처럼 잘 정돈된 해변로와 야자수, 그리고 고운 모래, 잔잔한 파도, 도로 건너편엔 근사한 호텔들로 이뤄졌다. 한국으로 치자면 부산 해운대, 광안리와도 비슷한 풍경이었다. 해변 근처 야외 바에서 간단하게 맥주와 안주로 저녁을 대신했고, 술과 함께 각자 살아온 이야기들을 소소하게 풀었다.
무리하지 않고 약간 기분 좋게 취한 상태에서 일어났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에 가까웠다. 그러나 리우의 밤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카리오카 역에서 호스텔까지 도보로 걸어오는 길은 그야말로 페스티벌 그 자체. 분명 차도인데 사람들이 점령했다. 차량들은 도무지 진입할 엄두를 못 냈다. 잘못했다간 1시간 동안 갇혀 지낼 각오를 할 만큼, 사람들이 차도를 가득 메웠다. 모든 술집들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술집마다 술과 담배 그리고 코카인이 뒤섞인 냄새로 가득 찼다. 술을 진탕 마셨는지 인사불성이 돼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방황하는 사람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아퀴 브라지우. 이태원, 홍대는 여기서 명함도 못 내민다. 이 인파들 덕분에 새벽 3시까지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설쳤다. 독한 사람들, 잠 좀 잡시다.
8월 20일, 올림픽 남자 축구 결승전 보러 가는 날. 2년 전 브라질 월드컵 4강전 이후 2년 만에 결승서 재회한 브라질 대 독일이라서 잔뜩 기대했다. 조식용 토스트가 무슨 맛인지도 까먹을 정도로 설렜다. 이날 리우를 떠나는 관과 달리, 림 누나는 운 좋게 남미여행 단톡방을 통해 축구 결승전 티켓 3등석을 단체로 구입한 사람들과 같이 보게 됐다. 그래서 오늘 하루 일정은 림 누나와 같이 움직이게 됐다.
킥오프 하는 5시 반 전까지는 프리워킹투어로 리우데자네이루를 가볍게 구경했다. 유서 깊은 카페테레아 콜롬보와 아기자기한 리우의 옛 건물들, 그리고 원색 컬러로 화려함을 뽐내는 셀레론의 계단을 봤다. 셀레론의 계단 맞은편 식당에서 브라질 전통음식으로 점심을 채웠다. 셀레론 계단에서 센트로 지하철 역까지 뚜벅뚜벅 천천히 걸으며 시간을 때웠다. 그랬더니 시간은 오후 2시 반.
이쯤이면 됐다 싶어 결승전 장소인 마라카낭 스타디움 행 지하철에 올라탔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은 예상했겠지만, 지하철 안에는 브라질을 응원하러 마라카낭으로 향하는 브라질 현지 팬들과 올림픽 보러 온 관광객들이 대부분. 사전 공지한 것도 아닌데, 모두 카나리아색 물결을 이뤘다. 축구는 못 참는 나라다웠다.
마라카낭 스타디움까지는 무사히 도착했는데,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올림픽 경기 규정상 셀카봉이나 스틱 등을 내부 반입이 안된다는 것. 브라질 대 독일 경기를 다양하게 담으려고 고프로 삼단 접이봉까지 챙겼는데, 이 삼단 접이봉을 버리게 생겼다. 6만 원 넘는 가격이라 쿨하게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경기장 일대를 계속 돌면서 잠시 맡길 보관함 등을 찾아봤으나, 그런 건 없었다. 헛수고한 셈이었다.
이런 규정 알았다면, 삼단 접이 스틱 들고 오지 않았지... 마음의 눈물을 흐리며 쓰레기통으로 떠나보냈다. 다음번에는 좋은 주인 만나라, 미안하다.
이스타지우 두 마라카낭, 브라질 축구의 성지. 그러나 브라질에겐 비극의 역사라 서려있다. 1950년 월드컵 결승전서 브라질은 우루과이에 역전패당하면서 우승을 내줬다. 이 때문에 '마라카낭의 비극'이라는 슬픈 전설을 가지고 있다. 또 2년 전 월드컵서 독일에게 7대 1로 대패해 흑역사 '미네이랑의 비극'을 하나 더 적립한 상태였다. 4년 전 런던에서 축구 은메달에 그쳤던 브라질 입장에선 네이마르를 2회 연속 올림픽에 소환해 금메달 정조준한 만큼,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만 했다.
다행히 네이마르의 오른발이 마라카낭을 구원했다. 승부차기까지 갔던 결승전은 네이마르의, 네이마르에 의한, 네이마르를 위한 경기였다. 마라카낭서 지켜본 네이마르의 퍼포먼스는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직관하던 나를 충격에 빠뜨렸던 호나우두와 용호상박이었다. 준우승에 머문 독일의 분전도 인상적이었으나, 네이마르의 아우라를 넘지 못했다.
네이마르만큼 나를 사로잡은 건 7만 8천여 석을 노란색으로 만든 브라질 사람들의 열정 넘치는 응원이었다. 이들의 응원은 매우 심플했다. 목소리와 박수, 발구르기만 사용했다. 오로지 사람이 내는 소리임에도 7만 8천 명이 힘을 합치니 어마무시한 소리를 내며 실시간 메아리처럼 마라카낭에 울려 퍼졌다. 독일 대표팀 선수 입장이었다면, 기를 완전 꺾어놓는 위용이었다. 2016 유로에서 전 세계인들을 사로잡았던 아이슬란드 팬들의 응원도 여기에 못 비볐다.
동양인을 발견한 브라질 사람들은 저마다 "누구 응원하러 왔어?"라고 말을 걸어왔다. 그때마다 "브라지우!"라고 답했고, 브라질 사람들은 '자식, 뭘 좀 아네'라고 자랑스럽다는 듯 웃어 보였다. 이날 나는 처음 보는 브라질리언들과 어깨동무부터 파도타기, 네이마르 프리킥 골에 함께 얼싸안고 기뻐했다.
해피엔딩은 광란의 밤으로 이어졌다. 리우데자네이루 전체는 축구 금메달 획득에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마라카낭에서 직관한 사람들, 술집에서 TV 모니터로 함께 지켜본 사람들, 집에서 가족과 시청한 사람들, 가릴 거 없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 사람들, 집에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럴 만도 한 게 브라질은 월드컵 최다 우승국임에도 단 한 번도 축구로 금메달을 목에 걸어본 적이 없었다. 제대로 벼르고 나왔던 런던 올림픽 때도 결승전에서 멕시코에게 무너졌고, 당시 네이마르의 눈물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게다가 2년 전에 자국서 열린 월드컵에서 치욕스러운 패배로 4강에서 탈락한 것도 모자라, 3·4위전에서도 최악의 경기력을 펼쳤다. 이는 브라질 사람들을 분노케 했고, 브라질 전역은 폭동 지옥이 열렸다. 축구 외적으로 국가 상태가 매우 힘든 상황에 놓여 있었기에 브라질인들에게 한줄기 희망이 필요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네이마르가 끊어버렸다. 그는 오래 묵은 나쁜 징크스를 박살 냈고, 이를 지켜본 브라질 사람들은 기쁨의 눈물을 쏟아냈다. 이 환희는 시간이 지나면 차분하게 가라앉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리우 곳곳에선 수천 명 인파가 우승을 축하하는 즉흥 카니발을 벌였다. 사람들이 차도를 점령했으니 차량들은 제시간에 돌아가는 걸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운전자들은 짜증내기는커녕 함께 즐거워했다. 호스텔 앞 사거리에 사람들 속에 갇힌 한 버스를 발견했다. 버스 기사와 승객들 모두 덩실덩실 춤을 췄고, 차체도 기쁨의 바운스를 보였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하지 못했던 설움도 맘껏 풀었다.
우승의 샴페인에 흠뻑 취한 리우의 일요일은 비가 내렸다. 여기에 올림픽 폐막식과 마라카낭 일대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가 맞물렸고, 이를 군인들이 통제하면서 도로는 혼잡했다. 다행히 뉴욕행 비행기를 놓치진 않았다. 5년이 지난 지금도, 리우에서 느꼈던 열광의 도가니는 아직도 몸이 기억하는지 이 맘 때만 되면 닭살이 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