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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Jul 30. 2021

8. 파리에서 가져온 나쁜 기억들

2012년 8월 8일~11일 기록 재구성

프랑스 파리에 환상과 로망을 가진 여행객들이 많다. 전 세계에 아름다운 도시로 소문났고, 각종 미디어물에서 낭만과 고혹미를 풍기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인 파리'만 봐도 파리를 여행하고픈 욕망을 샘솟게 만든다. 그만큼 파리를 열망하고 좋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판타지가 너무 컸는지, 막상 파리에 두 발을 밟고 나서 기대했던 수준에 못 미쳐 실망하거나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다. 일본에서는 이를 '파리 신드롬'이라는 질환으로 명명하고 있다. 다행히 파리로 떠나기 전에 프랑스의 단점들도 접했었고, 나보다 먼저 유럽을 다녀온 희진의 여행담을 들으며 양면성을 간접적으로 듣긴 했다.


분명 파리는 매력적인 도시들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진 못하겠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파리에서 얻었던 나쁜 기억들을 함께 가져왔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파리에서 찍은 사진들을 찾아보면, 그 나쁜 기억들도 자연스레 떠오르니 말이다.




2012년 8월 8일 오전, 프랑스 파리 샤를 드 골 국제공항. 새벽에 스페인 마드리드 바르하스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저가항공기가 약 3시간 만에 파리 활주로에 착륙했다. 기류로 인해 기체가 심하게 흔들린 탓에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해 아직 비몽사몽 상태였다. 민박집이 위치한 10구역으로 가려면 파리 시내로 진입하는 고속교외철도(RER) 티켓을 끊어야 했다.


그러나 RER 티켓 발권기 앞에서 한참을 우두커니 섰다. 분명 영어 버전으로 눌렀는데, 10구역까지 가려면 뭘 눌러야 할지 전혀 몰라서였다. 공항 직원으로 보이는 유니폼을 입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는 차갑게 무시하고 지나갔다. 살짝 서운한 감정이 올라왔으나 '그 사람이 바빴겠지'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옆에서 발권기를 이용하는 여행객이 하는 걸 어깨너머 따라하면서 티켓 뽑기에 성공.


샤를 드골 RER 역은 고요했다. 평일 오전이라서 그런지 파리 시내로 향하는 탑승객도 적었다. 비행기에서 못다 한 잠을 청하려던 중, 파리 북부 역에서 정차했다. 문이 열리는 순간, 불쾌한 냄새가 순식간에 열차에 들어와 후각을 테러했다. 중학생 시절 쓰레기처리장에서 봉사활동 했을 때 맡았던 퀴퀴하고 수십 년 동안 천천히 썩어가는 각종 쓰레기에 찌린내가 더해진 냄새를 파리에서 다시 맡을 줄이야. 한편으론 이해할 수 없었다. 오랜 세월 축적된 듯한 악취가 지하철 전방위로 퍼졌는데, 불편함을 온몸으로 표시하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파리 사람들은 이 불쾌함에 익숙해졌는지 미동이 없었다. 충격이었다.



공항서 출발한 지 약 1시간 걸쳐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이날 파리 하늘은 쾌청했다. 한여름이긴 하나, 한국처럼 푹푹 찌는 더위도 아니어서 바깥에 돌아다니기에 적당했다. 한 시간도 낭비하기 싫어서 숙소 밖으로 나섰다. 파리 지하철 노선도 한 장 들고 에투알 개선문과 가까운 클레버 역을 첫 행선지로 잡았다. 아직 파격적인 환영인사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혹여나 북부역에서 진동했던 악취를 다시 마주할까 봐 살짝 걱정했으나, 다행히 개선문까지 가는 길엔 등장하지 않았다.


샤를 드 골 광장에 우뚝 솟은 에투알 개선문은 웅장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고, 개선문 주변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인도 밖에는 자동차들이 개선문을 로터리 삼아 뱅글뱅글 돌다가 자신들이 가야 할 열두 갈래 길 중 하나를 골라 유유히 빠져나갔다. 차들을 따라 개선문 정면으로 뻗어있는 샹젤리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역시 핫플레이스답게, 샹젤리제 거리엔 인파가 가득했다. 이들을 맞이하는 각종 스토어들도 대로를 중심으로 양 옆에 빼곡하게 자리 잡았다.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덧 주변 배경은 상가 골목을 지나 공원과 신고전주의풍 건물들로 바뀌었다. 좌측에는 엘리제 궁이 멀리서 보였고, 전방에는 콩코르드 광장이 반기고 있었다. 콩코르드 광장 뒤에는 뛸르히 정원이 있었다. 정원 한쪽에 위치한 놀이기구들은 정원을 찾아온 방문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정원을 가로지른 뒤에는 루브르 박물관이 등장했다. 박물관 앞에는 금속유리로 만든 피라미드가 세워져 있었고, 박물관에 입장하려고 사람들이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줄 길이를 보아하니 입장 기다리다 탈진으로 먼저 쓰러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루브르 박물관 외관만 몇 번 셔터 누르고 센 강 방면 샛길로 빠져나왔다.


센 강변을 따라 걸으며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을 떠올렸다. 사랑에 모든 걸 던졌던 미셸(쥘리에트 비노슈)과 알렉스(드니 라방), 그들이 열렬히 사랑을 나눴던 퐁네프 다리, 영화 속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를 뮤직비디오로 만들었던 10cm의 '스토커'를 끊임없이 돌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낭만적인 센 강과 퐁네프 다리는 없었다. 내 눈에 보인 센 강변에는 여름용 피서 세트들이 설치되어있고, 퐁네프 다리는 생각보다 소박했다. 영화와 똑같을 것이라 잔뜩 기대한 건 아닌데, 김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목적 없이 뚜벅뚜벅 걷다 노트르담 성당 앞까지 다다랐다. 초저녁 시간대 때문인지, 외부인 방문시간이 지났다며 성당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더 이상 갈 곳도 없었다, 유턴해야지. 왔던 길을 되돌아오던 중 루브르 박물관에 다시 지나갔다. 아, 론리플래닛이 여기에 고급 레스토랑이 있다고 알려줬었지! 그동안 유럽 여행하면서 아끼고 아꼈던 돈을 풀 때가 됐다. 그 돈을 모아 루브르 옆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중년의 훈남 지배인이 미소 지으며 반갑게 맞이했다. 이에 간단하게 "봉주르"로 화답했다. 그가 안내한 자리는 입구에서 가까운 야외 테라스인데 꽤 좋은 뷰를 갖췄다. 전방에 피라미드와 루브르 건물이 방해물 없이 생생하게 들어왔다. 일단 분위기는 합격. 플렉스를 해보겠다고 푸아그라와 필레 미뇽을 주문했다. 양은 적은 편이나, 맛은 있었다. 과연 론리플래닛 추천 픽이구나.


필레 미뇽을 음미하던 중, 젊은 종업원 한 명이 다가왔다. 그는 나의 빈 잔을 발견했는지 "스파클링 워터 한 잔 드리겠다"고 권했고, 나는 받아들였다. 훈훈한 분위기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영수증을 받으면서 훈훈함은 깨졌다. 스파클링 워터 가격이 포함된 것이었다. 그것은 호의가 아닌 또 다른 주문이었고, 나는 이를 호의로 받아들인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더니 아무것도 모른 채 눈 뜨고 코 베인 꼴이다. 7유로가 분위기를 다 망쳤다. 씁쓸한 뒷맛을 안고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파리 북부역으로 향했다. 하루 당일치기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다녀오기 위해서였다. 2주간 파리에서 다른 도시들을 당일치기 식으로 왕복한 희진이의 여행담을 벤치마킹해 암스테르담 일정을 세운 것. 북부역 행 지하철에 올라타면서 어제 악취가 선사했던 끔찍한 경험이 생각났다. 설마 또 퀴퀴한 냄새를 풍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부터 앞섰는데, 하루 사이에 환경미화원들이 다녀갔는지 썩은 내는 사라졌다. 암스테르담에서 돌아온 뒤에도 악취는 자취를 감췄다. 이렇게 트라우마는 슬슬 사라졌다.


암스테르담에 다녀온 사이, 조용했던 숙소는 아침과 달리 왁자지껄했다. 자리를 비운 사이 혼자 쓰던 숙소에 뉴페이스가 여러 명 온 것이다. 이들은 소소하게 부엌에서 술파티를 벌이고 있었고, 때마침 내가 기가 막힌 타이밍에 복귀했다. 자연스레 술판에 낄 수 있었다.


나보다 서너 살 많은 A는 금속공예 전공으로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활동했다가 자기 브랜드 론칭을 준비하고 있다. 창업 전 유럽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B는 바르셀로나 숙소에서 하룻밤 같은 방을 쓴 적 있는 사이였다. 파리에서 재회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얼굴을 보자마자 서로 놀라워했다. 그리고 C는 방학을 맞이해 유럽여행 중인 대학생이었다. 저마다 다녀온 여행지에 대한 필터링 없는 후기를 공유했다. 이와 함께 여행지에서 구매한 술을 하나씩 개봉하며 나눴다. 전날보단 제법 괜찮은 둘째 날이었다.



파리 3일차. 오전 첫 일정은 오르세 미술관 투어였다. 오르세는 국제학생증만 발급하면 입장료 할인이 가능하다는 정보를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입수했다. 국내서 국제학생증을 미리 발급받은 이유도 이 오르세 미술관 때문이었다.


개장하자마자 들어가 5시간 동안 오르세 미술관 구석구석 구경하면서 신고전주의 및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을 실컷 구경했다. 클로드 모네, 귀스타브 쿠르베, 장 프랑수아 밀레, 에두아르 마네,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등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 단골손님들의 작품들이 이곳에 다 모여있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미술 공부 좀 더 열심히 할 걸. 재미난 건, 널리 알려진 명작 근처에는 사람들이 저마다 오래오래 담아두려고 혼을 실은 셀카 혹은 사진 찍기가 한창이었다.


오르세 한 바퀴 돌았더니 벌써 점심시간이 왔다. 아니, 점심시간이 된 지 한참 됐다. 여기서 느긋하게 센강 맞은편에 있는 뛸르히와 루브르 경치 보며 한 끼 식사할 시간이 없었다. 이날이 파리 체류 기간 중 가장 바빴으니까. 다음 목적지인 퐁피두 센터로 곧장 넘어갔다. 퐁피두 가는 길에 배낭여행객의 절친 맥도날드에서 가볍게 햄버거 하나를 섭취했다. 돈을 아끼고 싶을 때, 돈 없을 때는 맥도날드가 최고지!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이 슬럼가를 밀어버린 자리에 새롭게 새운 퐁피두센터 건물은 멀리서부터 독특한 외관을 자랑하며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냈다. 영국 건축가 그룹 아키그램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은 철제 구조물들은 자꾸만 보게끔 만드는 농약 같은 매력을 지녔다. 루브르, 오르세와 함께 파리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명소이긴 하나, 당시 현대미술에는 거의 일자무식 수준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이것이 예술이구나" 하며 1층부터 옥상까지 샅샅이 구경했다.


강행군을 했던 탓인지, 점심때 먹은 치킨버거 영향인지 졸음이 몰려왔다. 퐁피두센터에 마련된 작은 벤치에 털썩 앉자마자 꾸벅꾸벅 졸았다. 다행히 어떤 이들의 터치를 받지 않고 짧게나마 편히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기지개를 켤 겸, 테라스로 나왔다. 멀리서도 또렷하게 보이는 에펠탑을 포함한 파리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맑은 덕분인지, 퐁피두 센터 뷰에 큰 만족감을 느꼈다.



자, 오르세, 퐁피두 찍고 다음 방문할 곳은 파리의 또 다른 랜드마크 몽마르트르 언덕. 지하철을 타고 바흐베-로쉐슈아 역에서 하차했다. 하차하자마자 매표소에서 지하철 티켓 10장을 구매했다. 파리 지하철이 환승 혹은 원데이 티켓 등 제도가 없었고, 오직 지하철 1회용 티켓으로 지나가야 했다. 20장 사뒀는데 금방 동이 난 것이다. 티켓 값이 싼 것도 아닌데, 교통비에 피눈물 흘린다.


몽마르트르 언덕의 명성 때문인지 역 밖으로 나오자마자 인파에 휘말렸다. 이들에 섞인 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 몽마르트르까지 이동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적당히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언덕에 앉거나 드러눕는 등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나도 햇빛 맞으며 비타민D 충전하려는 심산으로 푸른 잔디에 누웠다.


이 평화는 오래 못 가서 와장창 깨졌다. 언덕 꼭대기 사크레쾨르 대성당 쪽에서부터 아프리카계 이민자 수십 명이 '킹덤' 생사역 떼들처럼 뛰어내려왔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뒤돌아보지 않고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전력 질주했다. 약 10m 뒤에는 경찰 두 명이 이들을 쫓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 관리하지 못한 몸이 인증하듯, 경사를 내려오는 데에도 가파른 숨을 내쉬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경찰 콤비는 파키스탄계 한 명을 체포했다. 체포한 이유를 잘 모르겠으나, 아마 불법체류이거나 혹은 행운의 팔찌 등 관광객들 상대로 불법판매 및 사기로 적발된 것으로 보인다. 진귀한 광경을 1열에서 봤다.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질쯤에 자리에서 털고 일어났다. 곧장 숙소로 복귀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대망의 하이라이트 에펠탑 야경을 봐야 하기 때문! 숙소엔 전날보다 더 많은 투숙객들이 들어온 상태였다. 다들 런던올림픽 한일전을 보려고 부엌에서 만반의 세팅을 하고 있었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눴고, 그들은 나의 저녁 일정을 물었다. 에펠탑 야경을 보러 간다고 말했더니, 반드시 사과 와인을 챙겨가라고 추천했다.


이들의 조언을 받들어 숙소 바로 맞은편 슈퍼마켓에 들어갔다. 와인 진열대를 보고 있는데, 온통 프랑스어로 적혀 있어 어떤 게 사과 와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도움을 요청했는데, 아무도 한국인에게 손길을 내주지 않고 무시했다. 심지어 구글 번역기를 동원해 "사과 와인이 어떤 건가요"라고 물었으나, 끝내 무시했다. 동양인이라서 얕보며 무시한 듯한 기분이 들어 대단히 불쾌했다. 화가 난 나머지 아무 와인이나 집어 들고 가게 문을 쾅 닫고 나갔다. 같은 프랑스 땅에 사는 니스 사람들은 되려 이방인을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안간힘을 썼다. 파리에 없는 정까지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그래도 목적은 달성해야 하니까 에펠탑으로 고고. 여행 도중 만났던 한 사람이 "파리는 현란한 에펠탑 야경만 봐도 충분히 방문한 가치가 있다"고 목소리 높였던 적이 있다. 실체를 직접 마주하니 그 사람이 맞는 말을 했다고 깨달았다. A자형의 거대한 철골구조에 형형색색 조명이 더해지는 순간, 이는 또 하나의 예술이었다. 이때 슈퍼에서 산 와인을 오픈해 천천히 음미하면서 멀찍이 에펠탑 야경을 구경했다. 에펠탑 출발 전 당했던 모욕에 대한 분노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조그만 금빛 에펠탑 열쇠고리를 패키지로 파는 길거리 상인을 만났다. 그는 개당 2유로를 불렀다. 내가 호구일 줄 아느냐, 내가 동대문에서도 깎는 데 도가 튼 사람이야. 물러서지 않는 기세를 보여주며 2개에 1유로로 흥정에 성공하며 기념품 선물용으로 20개 구입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처럼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 숙소로 돌아왔다. 파리에서 마지막 밤은 전날 술 전우들과 보냈다.


8월 11일, 파리를 떠나는 날. 어젯밤 흥청망청 마셨음에도 일찍 눈을 떴다. 영국으로 넘어간다는 설렘이 앞서서였다. 다행히 기차는 11시 13분 출발이라 유로스타가 출발하는 북부 역까지 충분히 갈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해 10시에 체크아웃하고 숙소를 나왔다.


10시 30분에 파리 북부 역 도착.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잠깐 커피 한 잔 할까도 생각했으나, 어마어마한 대기줄을 보고 커피를 포기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뭔가 이상했다. 기차 탈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대기줄은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11시, 유로스타 승무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11시 13분행 기차 타야 할 승객들을 찾았다. 승무원을 앞세워 대기줄을 건너뛰고 하이패스했다. 내가 앞질러 가는데도 긴 대기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다. 어라, 뭔가 이상한데. 이 사람들 뭐지?


유로스타는 비행기처럼 출입국심사를 해야 했다. 나처럼 승무원 긴급 찬스로 하이패스한 여행객들이 심사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탑승까지 남은 시간 7분, 심장이 쫄깃했다. 3분 남겨두고 내 차례가 왔다. 심사받는 도중 11시 13분 런던행 유로스타가 출발해버렸다. 헐, 기차를 놓친 것이다. 손목시계를 보고 충격받은 나를 보던 심사원은 괜찮다는 식으로 위로했다. 그가 위로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심사대를 통과하자, 유로스타 여직원이 초록색 스티커를 붙여주며 다음 기차에 탑승하면 된다고 알려줬다. 한시름 놓았다.


무사히 유로스타를 탔으나, 줄곧 그 기다란 줄을 선 사람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여행을 다녀온 지 한참 지난 지금도 왜 그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미리 예매한 사람들을 막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들 때문에 파리에서 얻었던 나쁜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한국까지 가져왔다. 그 결과, 누군가가 파리 여행담을 풀어놓으면 나는 상대 논객을 꺾으려는 기세로 덤벼들며 파리의 악몽을 설파하는 안티가 됐다.  


솔직히 말하면, 파리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뜨리고 싶다. 그래서 리마인드 여행을 계획하기도 했으나, 재방문할 기회가 오지 않았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다시 여행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나쁜 기억을 지워버릴 날은, 언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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