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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Aug 17. 2021

9. 가끔 니스의 여름이 그립다

2012년 7월 31일~8월 2일 기록 재구성

사계절 중에서 여름을 제일 좋아한다.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 옷을 많이 껴입는 걸 선호하지 않는 성향 때문에 한 두 겹 입고 다녀도 되는 여름이 편하다. 누군가는 덥고 땀 나서 싫어한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러한 점을 즐긴다.


여름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를 꼽자면,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기 좋은 시즌이기 때문. 계절별로 각자만의 매력은 있으나, 현실 여건이나 제도들은 대부분 여름에 긴 휴가를 쓰게끔 만든다. 그래서 '여름=여행 시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되돌아보면, 나의 해외여행 대부분은 여름이었다. 그래서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동안 다녀온 여행지들 하나하나 기억에 남지만, 여름만 되면 니스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가끔 떠오른다. 오래 머문 것도 아닌데, 니스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잔상들이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시절 니스의 사파이어 색 바다가 풍기는 은은한 내음도 머릿속 깊이 맴도는 기분이 든다.




2012년 7월 31일 정오에 가까운 시각, 이탈리아 벤티미글리아역. 기차의 브레이크에 꾸벅꾸벅 졸던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밀라노 중앙역에서 벤티미글리아행 오전 9시 10분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짐 싸고 나갈 채비를 했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니스로 가려면 벤티미글리아역에서 기차를 한 번 환승해야 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짐과 함께 하차한 뒤, 니스행 기차가 오길 기다렸다. 기차에서 편히 수면을 취한 사이 주변 배경은 현란한 밀라노 도심에서 푸른 지중해가 보이는 바다 뷰로 바뀌어 있었다. 지중해에서 불어온 소금기 먹은 바람은 내 얼굴을 살포시 감쌌다.


바닷바람을 느끼고 있던 중, 니스행 열차가 도착했다. 영국의 명물 중 하나인 2층 버스처럼 기차가 복층 구조로 되어있었고, 이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국에선 ITX가 2층 열차 차량을 운행하고 있긴 했으나, 아직 실물로 접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 복층 차량을 처음 본 것이다. 이곳이 출발지여서인지 객실은 텅텅 비었고, 남들에게 뺏길까 봐 얼른 2층에 자리 잡았다. 조금만 늦었다면 수많은 인파에 치여 서서 갈 뻔했다.


벤티미글리아에서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경을 넘어 프랑스에 진입했다. 그러나 지중해를 배경 삼은 비슷한 바닷가 풍경 때문인지 이탈리아인지 프랑스인지 열차 안에선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러다 모나코 몬테 카를로역에 잠시 정차했다. 휘황찬란한 역 외관이 없었다면, 모나코에 도착했는지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나코 구경은 5분간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끝났다.  

 


모나코에서 출발한 지 40분가량 지났을까, 목적지 니스 빌역에 도착했다. 역 출구에서 바라본 니스의 풍경과 도시 분위기를 약간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빈센트 반 고흐가 그려내는 오렌지색 느낌이었다. 따스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스며든 자연의 일부, 동시에 평화로운 기운을 한 몸에 받았기 때문이다. 첫인상이 제법 나쁘지 않았다.


2박 3일간 머물 집은 역에서 도보로 20분 이내 거리였다. 메인 도로인 쟝-메드쌍 가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었다. 호스트가 찾아오는 길을 사전에 잘 알려준 덕분에 숙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건물 앞에 도착해 5층 벨을 눌렀다. 숙소를 관리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열어줄 것이라는 호스트의 공지와 달리,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했다.


들어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프랑스 여성이 다가왔다.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들의 손을 잡고 등장한 그녀는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프랑스어라서 100% 이해할 순 없었으나, 적극적인 제스처나 표정을 유추했을 때 여기 서서 뭐하고 있냐고 물어보는 듯했다. 바디랭귀지로 5층을 눌렀는데 응답이 없다고 전하자, 그 여성은 자신 또한 이 건물에 거주하고 있어서 문을 열어주겠다고 나섰다. 니스 모자 덕분에 건물 안으로 입장.


옛날 건물이라서 그런지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오직 직사각 구조의 바람개비 형식 계단만 존재할 뿐. 꼭대기인 5층까지 뚜벅뚜벅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다. 나의 큰 사이즈 캐리어를 발견한 여성은 같이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그러기엔 그녀도 아들과 시장에서 사 온 식재료들로 양손이 바빠 보였다. 그래도 도와주겠다는 착한 마음이 고마웠다. 3층인 자기 집에 도착한 여성은 혹시 5층이 잠겨 있으면, 자기 집에서 잠시 쉬었다 가도 된다고 덧붙였다. 나는 미소와 함께 "아무도 없으면 그렇게 하겠다"고 화답했다. 메르시 보꾸, 마담.


5층에 도착했다.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호스트는 아무도 없을 걸 대비해 비상용 열쇠를 문 앞에 깔린 러그 아래에 숨겨놨다고 적어둔 게 기억났다. 열쇠 발견! 생각 이상으로 숙소는 넓었다. 방 3개에 바가 달린 부장, 욕조가 딸린 화장실 두 개, 엄청난 사이즈의 TV, 레트로 느낌 물씬 풍기는 LP 턴테이블까지. 여기 예약 해두길 잘했다. 짐을 풀고 찬찬히 숙소를 둘러보던 중, 관리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들어왔다. 아르바이트생은 나의 눈높이보다 조금 작은 한국인 여성이었다. 5층까지 걸어 올라오느라 가쁜 숨을 돌린 뒤, 그녀는 자신을 소개하며 필요하거나 불편한 점이 있으면 자신한테 말하면 된다고 알려줬다.


니스에 오기 위해 새벽부터 준비하면서 쌓인 피곤함을 기차에서 미쳐 떨쳐내지 못했다. 그래서 침대에 누워 잠깐 눈 좀 붙였다. 그 사이에 한 시간 훌쩍 지났다. 좀 더 잘까 생각도 했으나, 이때 아니면 언제 니스를 오겠냐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토리노에서 산 유벤투스 레플리카로 서둘러 갈이 입고 숙소 밖으로 나섰다.



해는 서쪽으로 차츰 이동하고 있어서 그런지, 처음 니스 땅을 밟을 때보단 열기가 덜했다. 지도 한 장만 믿고 이리저리 누비며 일부러 길을 헤맸다. 그러다 보니 메세나 광장을 넘어 니스 해변에 다다랐다. 리버티 블루색 바다와 그보다 옅은 푸른빛을 띠는 하늘, 그 사이를 삐죽 튀어나온 곶. 그 곶에는 초록색 수풀들과 다닥다닥 붙어있는 고전양식 건축물들이 자리 잡았다. 바다와 곶, 하늘을 뒷배경으로 쓰면서 전방에는 자갈과 모래가 균형적으로 이루어진 해변이 좌우로 길게 뻗어있었다. 전형적인 클리셰인데, 나는 이 여름 분위기가 좋았다.


잠시 신발과 양말을 벗고, 고운 모래 위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면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을 느꼈다. 우측으로는 서쪽으로 향하는 햇빛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완벽한 여름, 이것이 휴양이자 여유지. 덕분에 마음이 탁 트였다.


슬슬 배가 고파왔다. 저녁 시간이 다가왔다는 신호다. 오늘은 무언가 사 먹기보단 숙소에서 직접 요리하고 싶었다.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간단한 건 만들 줄 안다. 그래서 토마토 파스타를 저녁으로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숙소 근처 슈퍼마켓으로 들어갔다. 파스타 면과 토마토소스, 베이컨은 찾았는데, 같이 뿌려 먹을 파마산 치즈 가루가 보이지 않았다. 찾지 못하고 헤매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 슈퍼 주인 아주머니가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프랑스어를 못하는 외국인이 "파마산 치즈"를 연달아 외치는걸 재빨리 캐치해 친절하게 찾아줬다. 메르시 보꾸. 


파스타 재료를 품에 안은 채 숙소에 들어왔다. 그런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한쪽 방에서 짐을 푸는 소리가 들렸다. 여성 두 명이 문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서로를 향해 살짝 목례했다. 어색한 기운이 몰려오기 전 재빨리 자기소개를 했다. J와 K는 음대생으로 둘 다 첼로 전공이었다. 그래서였는지 캐리어보다 더 큰 사이즈의 첼로 케이스가 유독 눈에 띄었다. 이들은 몽펠리에에 계절학기 수업을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여름휴가를 만끽하려고 가까운 니스로 왔단다. 


마침 파스타 재료를 넉넉하게 사 와서 이들 몫까지 포함해 3인분 요리하는데 문제는 없었다. 말없이 파스타 면을 흡입하는 동안 적막함이 거실과 주방을 지배했다. 창밖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이를 보며 "밤바다 보러 갈래요?"라고 넌지시 던졌다. 그들이 거절하더라도 홀로 니스의 밤을 구경하러 나가려고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들도 딱히 할 게 없었는지 승낙했고, 저녁 산책 겸 숙소를 나섰다. 


해가 서쪽으로 가버려서인지 니스 전체를 감쌌던 더위는 사그라들었다. 지중해 멀리서부터 시원한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대낮에 해변을 찾았던 사람들 대부분은 종적을 감췄다. 나와 J, K처럼 밤바다를 구경하러 나온 소수의 인원만 해변에 나와 바닷바람을 쐬고 있었다. 건물들이 내는 각양각색 빛들과 해변가에 울려 퍼진 버스킹 음악들은 꽤나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장범준이 니스에 왔다면 여수가 아닌 '니스 밤바다'로 노래 제목을 지었을 것이다. 로맨스와 1도 상관없는 우리에겐 쓸모없는 배경일뿐. 밤바다를 실컷 감상한 뒤,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니스 앞바다에서 물놀이하기 위해 일찍 잠에 들었다. 



다음날, 어제에 이어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새파란 하늘이었다. 런던 올림픽 수영 중계를 보면서 간단하게 토스트로 아침을 때우고, 물놀이 복장으로 갈아입은 뒤 숙소로 나왔다. J와 K는 미쳐 수영복과 플립플랩 등을 챙겨 오지 못해 해변가 근처 자라 매장에 방문해 사기로 했다. 여름 바캉스 맞이 파격 세일 행사 기간 때문인지 자라 매장에 유독 많은 사람들이 쇼핑하러 몰렸다. 수영복 한 벌에 5유로, 플립플랩이 3유로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여기서 살걸.


세 명 다 완벽하게 준비를 마쳤으니, 해수욕하러 니스 해변으로 전진. 10시 반에 도착했는데도 해수욕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해변은 제법 붐볐다. 3인방은 발바닥에 무리가 덜 가는 모래 해변 쪽에서 짐을 풀고 물놀이를 했다. 우리가 노는 모습에 말을 걸고 싶었는지, 비슷한 나이 또래 외국인 두 명이 다가왔다. 슈어 와이 낫. 친화력이 뛰어난 K가 그들과 놀고 있을 때, 나는 지중해 태양으로 자연 태닝을 했다. 파라솔 밑에서 쉬고 있는 J에게 등 쪽에 태닝 오일을 발라달라고 부탁했다.  


태닝 오일 바르자마자 효과가 확실히 느껴졌다. 그동안 느꼈던 햇빛보단 더욱 강렬하고 뜨거웠다. 심지어 등이 따끔따끔 느껴질 정도였달까. 20분가량 햇빛을 쬔 후, 모래찜질을 했다. 이번에도 J의 도움을 받아 모래로 온 몸을 뒤덮었다. 천연 찜질방이 따로 없었다. 따뜻함을 넘은 뜨거운 기운에 몸이 불끈불끈 솟는 느낌이었다. 건강해진 기분이랄까. 태닝과 모래찜질이 끝나자마자 바다로 뛰어들었다. 태닝 전 발을 담갔을 때는 미지근했는데, 이렇게 시원할 수가! 물에 비친 구릿빛 몸에 매우 만족했다. 피트니스 대회 나갈 수준의 몸매는 아닌 게 조금 아쉽긴 했다만, 이 배경 이 분위기 이 느낌이 좋았다.


2시간가량 해수욕을 즐기고 숙소로 돌아와 목욕했다. 오랜 해수욕으로 인한 체력이 방전된 탓인지 매우 노곤했다. 졸음이 몰려온 탓에 점심용으로 준비했던 미트볼 파스타도 포기하고, 잠을 청했다. 나뿐만 아니라 J도 K도 모두 시에스타.


기절하듯 곯아떨어졌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오후 5시가 됐다. 거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르바이트생이 우리가 잘 머물고 있는지 잠깐 체크하러 온 모양이다. 방에서 문을 열고 나오면서 아르바이트생과 눈이 마주쳤고, 가볍게 인사했다. 이제야 늦은 점심을 먹기엔 벌써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다. 니스의 마지막 날인 만큼, 미트볼 파스타로 마무리하긴 싫었다. 저녁은 외식해야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외식하자는 제안에 J와 K도 쉽게 넘어왔다.


우리는 론리플래닛에서 추천한 니스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다행히 웨이팅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었고, 갓 스무 살을 넘긴 듯한 웨이터 한 명이 자리를 안내했다. 우리는 마르게리타 피자와 오일 파스타, 그리고 탄산음료를 주문했다. 프랑스어 능력자인 K는 웨이터의 서툰 발음을 듣더니, 어디 출신이냐고 물었다. 남성 웨이터는 이탈리아 사람이었고, 니스에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일한다고 해서 자기도 따라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웨이터와 대화를 이어가는 K의 친화력에 넋 놓고 구경했다. K 덕분에 식전 빵을 서비스로 더 받았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니스의 밤이 찾아왔다.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나온 3인조는 무언가에 홀린 듯 또 니스 해변으로 향했다. 모래판 한 곳에는 비치발리볼이 한창이었다. 2대 2 혹은 3대 3으로 짝지어 경기했다. 뛰어난 수준은 아니나, 네트를 오가는 배구공 하나에 웃음이 피어났다. 자갈밭에는 사람들이 밤바다 보려고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음주 감상이나 민폐 없이 각자 조용하게 지중해의 운치를 즐기고 있었다.


어젯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 니스 해변은 축제 분위기였다. 숙소와 해변을 오가면서 스쳐 지나갔던 걸개 및 포스터들에서 지금이 니스 축제 기간이라고 적힌 게 기억났다. 많은 사람들이 해변가로 운집해서인지 이들을 겨냥해 푼돈을 벌려는 버스킹 방랑객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한쪽에는 축제용 임시 스테이지가 설치되어 있었다. 무대 위에서 뮤지션들이 신나는 노래를 연주했고, 사람들은 리듬에 맞춰 격하게 몸을 흔들거나 핸드폰 카메라로 영상을 남기고 있었다.


니스의 유명 산책로 프롬나드 데 장글레에는 때마침 대형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갔다. 타이밍이 좋아서 우리는 행렬을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 그러면서 행렬을 뒤따라가면서 페스티벌의 일원으로 녹아들었다. 이것이 여름 축제로다. 퍼레이드가 끝나자 이번에는 메세나 광장에서 또 다른 볼거리가 등장했다. 프랑스 비보이, 비걸들이 자리를 잡고 현란한 브레이크 댄스를 선보였다. 그들의 개인기 하나하나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손뼉 쳤다. 이들의 앙코르 무대까지 보고 나니 시간은 자정을 향해가고 있었다. 숙소에 돌아온 뒤에도 축제의 여운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 여운을 마음 한편에 접어둘 시간이 왔다. 몇 시간 뒤면 나와 J, K는 각자 갈 길을 가야 했다. 


떠나는 날 아침, 내가 먼저 나와 아침을 다 먹을 때쯤 J와 K 또한 아침 식사하러 방에서 나왔다. 이제 좀 친해지는가 싶었더니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와서인지 약간 서먹했다. J와 K는 오전 10시에 파리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며 일찌감치 짐을 다 싼 상태였다.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고, 그들은 숙소를 떠났다. 이어 나도 장시간 기차를 타고 바르셀로나로 떠나는 긴 여정을 준비했다. 그리고 11시 55분 몽펠리에로 떠나는 기차를 타러 빌역으로 갔다.


니스는 나의 유럽 여행 중 유일하게 '휴양'과 '여유'를 만끽했던 지역이었다. 그때 눈과 귀, 코, 입, 온몸의 촉각으로 담았던 니스의 모든 것들이 뉴런에서 뉴런으로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그 향이 아직도 남아있는지, 여름만 되면 가끔 니스의 바다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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