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어색하지만 그래도 알만큼 아는 사이.
한동안 평화로웠던 우리 집에서 최근 이벤트가 하나 발생했다. 다행히 나쁜 소식은 아니다. 대신 이번 야이기의 주인공은 아쉽게도 내가 아니다.
한 번도 집 밖에서 홀로 독립해서 살아본 경험이 없었던 동생이 나이 서른 넘어서야 비로소 출가하게 됐다.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늦은 30대에 '나 혼자 산다'를 시작하게 된 것. 아, 여기서 약 2년 간 보냈던 군 복무 기간은 제외한다.
생각해보면, 동생은 그동안 독립해서 자취할 일이 없었다. 집에서 버스 타고 30분 거리에 있는 고등학교 3년 다닐 때에도 꾸준히 집에서 통학했다. 두 세 차례 환승해야 갈 수 있는 대학교 또한 힘든 내색을 하거나 불평불만하지 않고 졸업할 때까지 집에서 통학했다. 대학교 셔틀버스가 있다고 했으나, 그 버스를 타려면 멀리 나가야 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반해 겨우 한 학기만 왕복 3시간 통학하고 이 짓을 못해먹겠다며 집 밖으로 뛰쳐나간 나로선 대단하다는 말 밖엔.
그렇게 집을 사랑하고 뚝심 있게 집에서 다니는 걸 선호하던 동생에게서 심경변화가 일어났다. 그 원인은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 때문. 그가 7년간 다니고 있는 직장의 위치는 서울 여의도. 매일 오전 8시까지 출근 완료해야만 했다. 그래서 매번 오전 5시 반에 기상해 30분간 출근 준비를 하고 6시에 집을 나섰다. 그래야만 1시간 반 소요되는 회사에 도착할 수 있다. 이 시간에 일어나려고 동생은 항상 오후 11시가 되기 전에 잠들어야 하는 루틴을 만들었다.
8시 출근인 만큼, 근무시간을 8 to 5 혹은 8 to 6로 해줘야 함에도 동생네 회사는 잘 지키려고 하질 않는 모양이다. 회사서 30분을 야근하더라도 회사서 집까지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귀가하는 시간은 1시간 이상 늦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문제는 이 회사 녀석들이 동생에게 잦은 야근 미션을 부여했다는 것. 정시 퇴근해야 겨우 8시 전에 도착할까 말까인데, 야근 영향을 받아 계획한 취침시간 돼서야 오는 경우도 발생했다. 또 직장 동료가 퇴사하는 일도 발생해 퇴사자 일까지 떠맡게 됐다.
그렇게 동생은 통근하는 직장인 절반 이상이 겪는다는 출퇴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됐다. 통근 한 시간 소요되는 나는 감히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결국 참다 참다못해 독립하겠다고 선언했다. 부모님 또한 출퇴근으로 고생하는 동생의 심경을 이해한다며 쉽게 승낙하셨다.
그런데 동생이 '나 혼자 산다' 모드로 전환하기까진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첫 기회는 지난해 5월에 찾아왔다. 동묘역 부근에 청약으로 넣어둔 오피스텔서 연락이 왔다. 정확하게는 대학교 추가합격처럼 기회가 온 것. 그러나 이는 무산됐다. 동묘서 직장까지 출퇴근하는 코스가 편하지도 않고, 내부 구조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게 꾸준히 다방 어플로만 눈팅하다가 지난 5월부터 직접 두 발 벗고 나섰다. 그렇게 찾은 매물 중 하나가 등촌역 부근 원룸. 가격은 쌌고, 9호선 등촌역에서 5분 거리인 역세권. 싸다는 점에 반쯤 넘어갈 때쯤, 자취 경험 풍부한(?) 내가 한마디 던졌다.
좋은 매물인데 갑자기 집주인이 방을 빼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중개업자 말을 무조건 믿지 마라.
아니나 다를까, 싸게 봤다는 원룸 건물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 정확하게 어느 부분이 문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이유가 있다며 동생은 등촌동 원룸을 페더웨이 슛으로 휴지통에 던졌다.
그렇게 부동산 7계명을 앞세워 직장(여의도) 부근을 샅샅이 뒤졌다. 매주 금, 토요일은 혼자 살아야 방을 구하는 날이었다. 조금 괜찮다 싶으면 어머니를 대동해서 같이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다 여의도역에서 도보로 5분 내 위치한 오피스텔을 찾았다. 가격도, 방 내부 구조도, 인테리어도, 인접 시설도 모두 동생 기준에서 합격 버튼. 막상 집을 계약하자마자 일주일도 채 안돼 이사까지 하게 됐다.
동생 녀석이 집 구하는 과정을 보니, 새내기 여름방학 때 출가해 서른 너머 홈커밍하기 전까지 나는 나의 보금자리를 어떻게 구했었나 잠깐 생각해봤다. 확실히 동생처럼 오랜 시간 걸쳐서 살펴보진 않았다. 당시엔 그저 잠잘 수 있는 공간과 물과 전파가 막힘없다면 무조건 오케이였다. 그래서 반지하부터 나이스 뷰까지 다양하게 경험해봤던 것 같다.
여하튼, 동생은 계약서에 서명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집을 떠나게 됐다. 평일 어느 날 오전, 재택근무하느라 열심히 모니터에 집중하던 중 노크소리가 들렸다. 동생이 이제 자유를 찾아 떠난단다. 형제는 별말 없이 가볍게 주먹 인사를 나눴다. 주먹 인사 후 동생은 쿨하게 돌아서며 영등포로 떠났다.
밥을 먹다가 그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봤다. 어렸을 때는 두 살 터울인 동생과 참 '친밀'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베프처럼 잘 놀다가도 사소한 일 때문에 거친 몸의 대화를 하면서 관계를 형성했다. 몸의 대화는 다른 남자 형제들이 그렇듯, 게임 때문에 발생한다. 비디오 게임 혹은 PC 게임하는 걸 놓고 네가 더 많이 했네, 내가 더 많이 했네로 시간 몇 분 더 했다고 재고 따지다가 무력충돌로 이어지는 패턴이었달까.
그러다 언제부터였는지 형제간 티격태격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싸운 건 9년 전 여름 여행이었다. 사소한 다툼도 없이 지낸다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놀랍다고 반응한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사이가 돈독한 이들도 있지만, 실제 형제 자매 남매들 상당수가 성인이 돼서도 으르렁거리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다툼 없이 지금까지 비교적 관계를 잘 유지해온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형제애도 끈끈하진 않다. 내 방과 동생 방 사이 거리는 불과 3미터 남짓 되지 않음에도 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감과 벽들이 쌓여 있다. 그래서 서로가 어떤 상태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를 때도 많다. 모른 채 넘어갈 때도 있고. 필요한 정보는 알고 있되, 딱 적당한 수준의 관심과 친밀도다. 서운하게 한 적은 없으나, 그래도 좀 더 친하게 지낼걸 그랬나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떠난 뒤, 그가 오랜 세월 차지해 쓰던 방은 이제 아무도 없다는 듯 깜깜하다. 그 방의 문은 이제 닫혀 있다. 내가 홀로 독립생활할 때, 불 꺼진 내 방을 보며 동생은 무슨 생각했을까. 그게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