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Hyun Feb 08. 2022

'얀센조'가 되면 좋을 줄 알았지

어쩌다 남들보다 한 번 덜 맞아도 괜찮은 백신보유자의 팬데믹 라이프

사진=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2020년 1월 20일, 민족 대명절인 설 연휴를 앞둔 어느 날. 동시에 초대받지 않은 '녀석'이 이 땅에 입국신고를 한 날. 근원지 주변에는 난리 났다곤 하는데, 피부로 와닿진 않았다. 그때는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고, 항생제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선 맥을 못 추리고 끝날 꺼라 쉽게 생각했다. 당시 나는 오래간만에 설 연휴에 당직근무가 없어서(정확하게는 마지막 날만 당직이라 같이 놀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설날에 뭐할까 놀 생각만 했다.


당직을 서던 1월 26일, 이 '녀석'이 점점 위용을 뽐내기 시작했다. 근원지와 그 근처, 해당 국가에 거주하던 한국 교민들이 일제히 귀국하느라 바빴고, 이는 곧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와 더불어 감염자 A 씨의 넓은 활동량에 한반도 전역은 한순간에 공포 분위기가 조성됐다.


불현듯 군 복무 시절 기억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때는 중동에서 건너온 메르스가 방한했고, 전염성과 치명률이 높다고 악명이 퍼졌다. 이로 인해 각 군부대에선 전역 예정자를 제외한 간부 및 병사들의 외출을 전면 통제했다. 그래도 그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잠잠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강했고, 생각대로 이뤄졌다. 이때도 메르스처럼 곧 지나가리라 여겼다.


사진=tvN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


그런데 이 녀석, 메르스 사태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삽시간에 전 세계로 뻗어나가더니 정복했다. 인간사에서 한 획을 그었던 역대 정복자들과 비교될 수 없는 수준으로 영향력을 자랑했고, 이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고통받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입춘이 지나 날이 풀리기는커녕 사회 분위기는 계속 빙하기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일터 환경이 바뀌었다. 드라마가 끝나면 종방연과 종방 인터뷰 일정이 시작되고 영화는 언론 시사회와 라운드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는데 모두 취소되거나 최소화. 난생처음 접하는 사태에 모두가 혼란에 빠져버렸다. 그러다 넷플릭스 '킹덤 2'가 화상 비대면 인터뷰로 물꼬를 텄고, 이를 기점으로 각종 취재 현장은 대부분 비대면(온라인)으로 대체했다. 오프라인 행사가 생기면, 마스크는 필수템이다.


하나둘 점점 비대면으로 바뀌면서 출근보다는 재택 하는 일이 잦아졌다. 출퇴근 러시아워에 몸을 던질 일이 없어 이전보다 시간이 여유로워진 반면, 업무 공간과 휴식 공간이 분리되지 못해 편히 쉴 수 없었다. 더군다나 집에서 일하는데 능률이 오르지 않는 스타일이다 보니 재택 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눈치 없는 코로나는 빨리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으니 나의 짜증만 늘어났다.


사진='올드보이'


그러다 코로나 덕에 '올드보이' 오대수(최민식)처럼 감금(?) 당한 적도 있다. 모임에 갔다가 하필이면 맞은편에 앉아있는 사람이 양성 판정을 받은 것이다. 나한테까지 전염되진 않아 한 고비는 넘겼다. 다만, 확진자와 밀접접촉했기 때문에 2주 간 방 안에서 갇혀 지내야만 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괜히 큰 죄를 지은 기분이 들었다.


오대수와는 달리 삼시세끼 군만두만 먹지 않았다. 자가격리 기간도 오대수의 감금 시간에 비하면 짧은 편. 허나, 집돌이보다 바깥돌이 성향이 훨씬 강한 사람에게 2주 방콕 생활은 꽤나 어려운 미션이었다. 침대와 책상 등 각종 가구들이 차지하고 남은 실평수 1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버티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더니, 못할 것 같은 방콕 생활에 금방 적응해서 하루하루 잘 보냈다. 격리되는 동안, 업무도 계속해야 해서 기분은 별로였다.


14일째 되는 토요일 낮 12시, 격리 해제 통보를 받았다. 드디어 출소다! 2주 만에 바깥으로 나가 공기를 들이켰다. 종종 환기한다고 창문 열어놓을 때도 접하긴 했으나, 차원이 달랐다. 매우 신선한 맛이었다. 공기에도 맛이 느껴진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도비가 오랜 세월을 견딘 후 자유의 몸이 됐을 때 기쁨의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도 이해가 됐다.


썰처럼 풀 수 있는 생생한 자가격리 에피소드를 하나 생기고 난 뒤, 백신이 국내에 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제 마스크 벗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인가! 무척 설렜다. 정책상 고령자부터 순차적으로 한창 접종하고 있을 무렵이던 초봄 어느 날, 남들보다 먼저 백신접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너의 이름은 얀센, 코드네임 Ad26.COV2.S. 임상 시험에서 백신 효과 66.9%를 기록했다며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로제네카에 비해 약하다고 이야기가 돌긴 했으나, 유일하게 임상 시험 대상군이 백신 공급이 취약한 아프리카, 남미 등이었고 변종이 넘쳐났던 시기에 시행했다는 걸 감안한다면 비슷비슷한 수준. 때마침 30대 이상 예비군 남성 우선 접종 가능하다고 알렸다. 또 2회 나눠 맞을 주사를 한 번으로 끝낼 수 있다니, 마다할 필요가 없지. 누구보다도 빠르게 클릭하여 신청했고, 접종 첫날 첫 타임 동네 병원으로 잡았다. 그렇게 접종일을 기다렸다.


사진='은혼'


2021년 6월 10일 오전 10시, 동네병원. 얀센과 만나는 날. 얀센 첫날이라서 그런지 비슷한 연령대 남자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들어가자마자 문진표를 작성했고, 간단하게 혈압 측정. 혈압은 117/64. 기다리다 내 이름이 호명됐고, 진료실로 입장했다. 접종 전 의사 선생님과 간단히 건강상태 묻는 면담일 뿐인데, 마치 큰 수술 앞둔 사람처럼 앉아서 이야기 나눴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부작용 사례들이 떠올랐으나, 티 내지 않고 차분하게 궁금한 거 다 물어봤다. 담당의사는 이틀간 운동하지 말고 금주하면서 몸을 안정시키라고 당부했다. 알겠다고 끄덕인 뒤, 진료실을 나왔다.


면담 후 주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치과에서 볼법한 의자에 착석해 왼쪽 소매를 한껏 걷어올렸다. "조금 따끔할 거에요"라는 간호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삿바늘이 살을 관통했다. 다른 접종주사들과는 확연히 다른 묵직하고 뻐근함이었다. 레터럴 레이즈를 여러 세트 한 뒤에 느껴지는 통증과 비슷하달까. 맞은 부위가 계속 저릿했다.  


접종한 뒤, 15분 동안 앉아있다가 가라고 알려줬다. 접종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육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큰 이상징후가 없어서 이만 집에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집에 돌아온 뒤에도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 왼쪽 팔이 평소보다 많이 무겁고 멍한 기분이 든다는 정도? 나는 괜찮은가 보다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특별한 증상이 없자, 나는 선택받은 자라고 안심하고 자유롭게 움직였다. 심지어 이날 당근마켓을 통한 중고거래까지 하는 여유도 보였다.  


방심은 금물이었다. 저녁 먹고 난 뒤부터 슬슬 열이 나고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몸이 무거워졌다. 그 분(면역 반응)이 오셨다. 더 심해지기 전에 알아서 조용히 침대로 향해 이부자리를 깐 뒤, 타이레놀을 한 알 복용하고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잠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떴다. 아니, 정확하게는 '눈이 강제로 떠졌다'라고 해야 맞는 표현일 것이다. 분명 6월 초여름인데 체감은 12월 한겨울이었다. 오한이 내 몸을 감싸며 괴롭혔다. 여름이 이렇게 추웠던가. 여름용 이불을 턱 아래까지 최대한 끌어당기고 이불로 몸을 꽁꽁 감쌌다. 시간은 오후 11시. 눈을 감은 지 겨우 2시간가량 흘렀다. 혼자 침대에서 고군분투하는데, 문틈으로 들어오는 거실 불빛과 TV를 보고 하하호호 웃는 가족의 웃음소리가 그날따라 싫었다. 억지로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잠에서 깼다. 오한님은 어디 가지 않고 그대로 계시면서 발열님을 불렀다. 으슬으슬 추운데 머리는 너무 뜨거웠다. 발열과 오한을 동시에 겪으니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예전에 감기몸살로 누웠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미칠 것 같았다. 새벽에 '나 괜찮은 걸까?', '이대로 죽는 거 아닐까?'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났다. 파고 3m를 뚫고 울릉도를 향할 때 상태를 넘어섰다. 신음소리조차 내질 못할 만큼의 고통이었다. 이를 이겨내는 방법은 하나, 자는 것. 온몸에 힘을 빼면서 잠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그렇게 수면, 아니 기절했다.


사진='드래곤볼 Z'


다음날 아침, 저승 갈 뻔했다가 이승으로 돌아왔다. 발열+오한과의 사투 끝에 극적으로 생존했다. 존버는 승리했다. 왼팔을 내주고 실리를 택한 피콜로가 되더라도 좋았다. 버텨냈다는 것에 기쁨의 팡파르를 울렸다. 주사 맞은 부위는 여전히 묵직함이 느껴졌으나, 통증은 훨씬 덜했다. 어느 누군가에게 크게 맞지 않는다면 큰 문제는 없었다. 100만 얀센조 대군에 합류했다. 이렇게 코로나 종식일만 오길 기다리면 된다.


...라고 생각했는데, 코로나 팬데믹은 생각 이상으로 장기전이 되어가고 있다. 백신을 맞았음에도 나를 포함한 전 세계 지구인들은 여전히 위드 코로나, 마스크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얀센의 효과가 떨어져 추가접종으로 모더나를 투여하면서 이 시대를 버텨나갔다.


이쯤되면 규제를 완화하려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이번에는 코로나의 변종 오미크론이 들이닥쳤다. 이 녀석은 부스터샷에도 개의치 않는 무시무시한 침투력을 자랑했다. 얀센조도, 부스터 모드 얀센조도 무력해질 수 있단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인가!


그렇게 코로나 팬데믹과의 불편한 동거는 벌써 2년을 꽉 채웠다. 모든 건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다곤 하는데, 팬데믹은 예외일까. 출구가 보일 기미가 없다. 얀센조로서의 삶은 언제 종료될까. 그 날이 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