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게 겁 없이 덤비는 사람만 있을 뿐. 나도 그랬다.
"주량 얼마나 돼?"
"너 술은 잘 마시냐?"
술자리에서 한 번 이상 꼭 들어본다. 왜 그렇게 남의 주량이 궁금한 걸까. 질풍노도의 10대 시절에는 주먹과 힘으로 서열을 나눴다면, 혈기왕성하고 젊음이 최대 무기인 20대 초반에 힘겨루기는 주량 대결이다. 가끔 사회로 나가 직장인 생활을 하다 보면, 유치하게 술싸움으로 도발을 걸어오는 빌런들이 하나둘 있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면, 맘껏 우월감을 즐기며 상대방을 내리깔아보는 눈빛을 보낸다. 그걸 바라보는 내 입장에선 '꼴X'이었다.
주변에서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저는 술을 잘 못 먹습니다", "알코올 쓰레깁니다" 등으로 받아치며 대결 신청을 단칼에 거절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현재 주량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소주 기준으로 하면, 최대 1병? 이것도 컨디션이 최상일 때 기준인데, 최근에 그 컨디션을 유지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적당히 분위기 맞추는 식으로 찔끔찔끔 마시는 정도랄까.
내력으로 알코올 성분이 몸에 닿는 순간, 시뻘건 열꽃이 온몸에 만개한다. 누군가 말하길 이는 간이 알코올을 제대로 분해하지 못해서라고 했다. 이 신체변화를 무기 삼아 술을 권하며 질척이는 빌런들을 물리치는데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어필하고 있었는데, 이전 직장 편집장 선배는 "너 술 잘 마신다며"라고 잘못된 정보를 다른 선·후배들에게 소문내고 다녔다. 덕분에 원치 않게 '술상무'로 불리기도 했다. 다행히 실제로 술상무 역할은 한 적 없이 목숨을 연명하고 있다.
지금은 어떻게든 약한 모습을 보이며 술 앞에서 최대한 몸을 사리는 중이나, 한때 호기롭게 센 척하면서 나름대로 '술부심'을 부렸던 시절도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2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법적으로 성인이 됐던 해 1월. 입학까지 두 달을 앞두고 수시 1, 2차 합격한 같은 과 동기들과 신촌 한 닭갈비 집에서 정모를 하게 됐다. 입학 전 싸이월드 미니홈피, 혹은 클럽으로 미리 만나 소통하며 '사이버 절친'이 되어가던 중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만남이 이뤄진 것. 서로를 향한 반가움과 호기심은 좋은 분위기를 형성했고, 이는 2차 술자리로 이어졌다. 2차는 학교 정문 상가에 위치한 버블 키스로 이동했다.
이날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동기들과 마셨던 술이 내 인생 첫 술이었다. 어른들(특히 부모님)에게 첫 술을 배우라 했거늘, 이를 듣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술을 탐구해갔다. 처음 맛본 과일소주는 입 속을 달콤하게 적셨고, 맥주가 전하는 탄산감은 탄산음료의 청량감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시원함이었다. 매우 쓸 것만 같았던 소주는 이날따라 목 넘김이 좋아 홀짝홀짝 들어갔다. 돌이켜보면, 이날 음주하기 최고의 컨디션을 자랑했던 것 같다. 좋았던 기분이 더 좋아지자 '이렇게 술 마시면 취하나보다'라고 홀로 생각했다. 맞은편과 옆 테이블에는 페이스를 조절하지 못해 낙오하는 전우들이 발생했다. 일부는 귀소본능으로 직접 두 발로 집까지 돌아가기 힘든 수준으로 꽐라가 된 동기들도 있었다. 이들을 부축해 택시 태워 보내거나 신촌역까지 데려다줬다. 그러다 보니 술도 금방 깼다.
이 경험으로 인해 나는 제법 주량이 되는 사람으로 착각하게 됐다. 그걸 믿고 이후 선배들과의 술자리, 술지옥이 펼쳐지는 오리엔테이션에서도 버텼다. 당시 내 한계치는 소주 2병 정도 수준이었고, 독박을 쓰지 않으려고 술자리 게임에서 진심을 다해 이기는 등 폭탄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또 즐거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성격 탓에 오랜 시간 함께 하기도 했다. 취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아서인지 "쟤는 술 잘 마시는 것 같다"는 평까지 듣게 됐다. 나 또한 정말 그런 줄 알았다. 그 사건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대학교 1학년 중간고사를 맞이하기 직전 평일 어느 날, 인근 여대와 4대 4 미팅이 있던 날이었다. 마지막 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친구 손에 이끌려 버블키스에 입성했다. 다들 에너지가 넘치는 스무살이었기에 통성명을 술 게임으로 시작했다. 이 친구들은 하루 종일 게임 연습만 하다가 왔는지, 빈틈이 보이질 않는다. 철의 백4였다. 아주리 군단 수비를 여기서 만날 줄이야. 게다가 숙취제 없이 텅 빈 속으로 전쟁에 뛰어들었다. 인중여포도 방천화극과 적토마 없이 전쟁터에서 무용지물이듯, 나 또한 무방비로 덤볐다가 금세 낙오했다. 역류의 시그널을 느낀 나는 화장실로 뛰어가 그날 아침과 점심에 먹었던 메뉴들을 두 눈으로 재확인했다. 심하게 게워낸 뒤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미팅에 나온 여학생들의 외모, 성격, 취향, 연락처가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 집에 갈게"라고 도중에 일어나고 싶었으나 상황은 그러질 못했다. 영혼이 나간 빈껍데기처럼 그날 오랜 시간 강제로 붙들려 있었다. 교만함과 자만함의 결과물이었다.
비슷한 경험이 같은 해 한 번 더 있었다. 가을 주말이었던 것 같다. 과내 축구동아리에서 열심히 한 게임 뛰고 서로 수고했다며 근처 감자탕집에서 반주했다. 이 자리는 사실 대작하는 게 아니었다. 재량껏 각자 알아서 마시면 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페이스가 좀 빨랐달까. "짠!" 외치며 소주 한 잔 홀짝 마시고 감자탕 고기 한 점에 얼큰한 국물 한 입, 다시 "짠!"…. 이 회전율이 너무나 빨랐다. 중간에 이야기도 나눴는데, 하나도 기억나질 않았다.
단시간에 얼굴은 폭발하기 직전 화산으로 변모했다. 양 옆에서 누군가가 머리를 짓누르는 것 같은 두통이 동반됐다. 선배와 동기들에게 약한 모습 보이지 않겠다는 몹쓸 승부욕이 발동된 것. 이미 한계치를 넘어섰는데도 온 힘을 다해 집중하는 등 정신력으로 2시간 버텼다. 겨우겨우 자취방에 돌아온 뒤, 변기를 붙잡으며 10분간 화장실과 속을 털어놓는 대화를 나눴다. 힘겹게 몸을 겨눈 뒤 침대에 그대로 뻗어버렸다.
호되게 당한 뒤로는 술을 절대 가벼이 보질 않는다. 술과의 거리두기를 시작했던 것도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혼술도 잘하지 않는다. 해봐야 정말 친한 사람들과 가볍게 마시는 정도. 이런 날은 지이인짜 가끔 있을 뿐이다. 어떤 이들은 "술이 웬수야"라며 알코올이 문제라고 탓을 하곤 한다. 이는 비겁한 변명이다. 이 세상에 나쁘고 원수 같은 술은 없다. 겁 없이 술에게 덤비다가 봉변을 당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