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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Nov 21. 2021

연상호 유니버스의 최종병기

드라마 '지옥' 후기

그동안 연상호가 만든 작품들 속 사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은 긍정으로 가득 찬 판타지가 아닌,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지옥에 가까운 지독하고 고된 현실이라는 점이다. 이는 '사이비', '돼지의 왕' 등 애니메이션부터 최근작 '반도', '방법: 재차의'까지 줄곧 묻어 나왔다. 이 연상호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하나둘 차곡차곡 쌓여 집대성한 것이 바로 넷플릭스 '지옥'이겠다.


'지옥'은 예고편에서 미리 공개된 정체불명의 '사자(使)'들이 갑자기 등장하면서 한순간에 혼란에 빠지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 어마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사자들 때문에 얼핏 장르물처럼 보이나, '지옥'은 초현실주의 드라마다. 불가해한 현상을 마주할 때 인간과 사회가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서다.


원인 모를 현상이 계속 발생하자, 내면 속에 고요하게 있던 불안함이 바깥으로 뚫고 나와 사람들을 끊임없이 뒤흔들어 놓는다. 이는 곧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옥에 필적한 공포로 몰아넣는다. 어느 누구도 이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기에 공포심은 점점 더 깊어만 간다.


이러한 가운데 사자들의 등장이 '신의 고지(告知)'를 받아 '시연(試演)'한다고 주장하는 새진리회 의장 정진수(유아인)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그의 몇 마디 말처럼 맞아떨어지니 세상 판도는 단번에 기울어졌고, 그를 신봉하고 추종하기 시작한다. 불안한 상황 속에서 정진수가 던지는 해석과 '정의'라는 달콤하고 그럴싸한 단어에 다들 혹해버린다.


이는 '곡성', '다우트' 등 인간의 의심을 자극했던 작품들이 대중에게 던졌던 메시지들과 같은 결을 띠고 있는 것. 이를 '사자'라는 초자연주의 크리처를 등장시켜 눈길을 끌고, 새진리회, 화살촉, 경찰•변호사, 피고지자 등 다양한 집단의 시선과 상황을 담아내 더욱 풍성해졌다.



'지옥'이 시종일관 암울하고 사이다가 거의 없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흘러가긴 하나, 그렇다고 끝까지 비극으로 일관하는 건 아니다. 연상호 감독이 비록 염세적이고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세상을 조명하긴 하나, 일말의 희망은 남겨둔다. 그 희망이 밝고 긍정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믿음을 말하는 건 아니다. 그것이 있기에, 이 고단함을 버틸 수 있다고.


지독하게 무서운 현실을 그리는 연상호 감독이 만든 무대를 유아인이 호기롭게 포문을 열었고, 김현주가 드라마 전반의 서사 연결을 담당하며 무게감을 지켰고, 박정민이 쐐기를 박는다. 여기에 미친 존재감을 뿜어내는 김도윤이나 전•후반부에 나눠 활약했던 양익준, 김신록, 이레, 원진아, 류경수 등도 각자 맡은 역할을 소화해냈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스쿼드다.


'지옥'에 등장했던 배우들 한 명 한 명 칭찬받아야 마땅할 활약상인데, 그중 최고 소름 끼친 건 유아인이다. 그가 아닌 '다른 배우가 정진수를 했다면?'을 상상할 수조차 없는 독보적인 아우라와 카리스마, 장악력을 발휘하며 '지옥'을 보는 이들을 집어삼킨다.


'지옥'을 정주행 하면서 하나 더 느낀 건, 넷플릭스라는 거대 OTT가 아니었다면 만나기 힘들었을 수위와 어두움이라는 것. '지옥'이 넷플릭스를 만난 건 정말 신의 한 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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