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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yun Feb 11. 2022

추리를 가려버린 아름다운 막장극

영화 '나일 강의 죽음' 리뷰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가 남긴 저서들은 그가 살았던 20세기 초반부터 현재까지 걸작으로 평가받을 만큼 뛰어났다. 그중 애거사 크리스티의 세계관을 대표하는 에르큘 포와로 시리즈는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자랑해 영화로 각색됐고, 영화 또한 호평을 받았다.


훌륭한 원작 소설과 영화판이 존재하는 와중에 케네스 브래너가 2017년 공개된 '오리엔트 특급 살인', 그리고 10일 개봉한 '나일 강의 죽음'을 연출 및 주연을 맡으며 다시 한번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극을 소환했다. 만만치 않은 비교대상이기에 "잘해도 본전"인 상황. 이미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관객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 터라 다음 편에서 어떤 그림을 보여줄지 반신반의했다.


1937년 이집트, 탐정 에르큘 포와로(케네스 브래너)는 행복한 신혼부부 사이먼(아미 해머)-리넷(갤 가돗)의 초대를 받아 나일 강의 초호화 여객선에 몸을 싣는다. 그러나 여객선에 승선한 하객들 대부분은 갓 결혼한 커플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행복감과 묘한 긴장감이 동시에 서리던 이곳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탑승객 전원이 용의자로 떠오른다. 포와로는 한 명 한 명을 심문하고 지켜보며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이번에도 케네스 브래너는 전편('오리엔트 특급 살인')에 이어 동명 원작 소설에 충실한 채 영상으로 담아내는데 집중했다. 클래식한 매력을 유지하면서 다인종 캐스팅 등 현대적 요소를 살짝 더했다. 그러나 케네스 브래너는 시대의 흐름까지 예상하지 못한 듯하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세계관을 리메이크하는 동안 이미 촘촘하고 디테일한 추리물이 쏟아졌고, 이로 인해 관객들의 취향과 기준치가 한껏 올라갔는데 말이다.



또 '나일 강의 죽음'은 가장 핵심인 추리 요소가 너무 클리셰처럼 풀어내면서, 사랑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에르큘 포와르가 1차 전쟁 참전 시절 사랑했던 여성 캐서린과의 이야기를 꺼낼 때부터 남녀 간 나누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초점에 맞춰질 것이라는 떡밥을 뿌렸다. 전개되면서 점점 막장극에서 볼법한 내용으로 변질된다. 무능력하면서 야망만 앞선 남자와 사랑하는 그를 위해 모든 걸 다하겠다는 여자, 여기에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저지르는 사건들까지. 그렇다 보니 두뇌를 활용해 추리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영화의 장점도 있다. 메가폰을 잡으면서 연기도 펼치는 케네스 브래너를 필두로 톰 베이트먼, 아네트 베닝, 갤 가돗, 아미 해머, 에마 매키, 레티티아 라이트 등 배우들의 연기력은 볼 맛이 난다. 또 1930년대 분위기를 살리고자 정교하게 구현해낸 아름다운 이집트 유적지와 나일 강, 초호화 여객선 세트 및 의상 등은 훌륭했다.

 

종합하자면, 가볍기 보기에 적당한 수준의 상업영화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몰라도 관람하는 데 큰 지장은 없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독특한 추리물이 쏟아지는 현 상황에서 '나일 강의 죽음'만의 차별성이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러닝타임 127분을 참으면서 감상하기엔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다. 뻔하디 뻔한 치정 멜로도 관객들을 붙잡기엔 너무 버거워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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