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나 Jul 26. 2015

제희의 첫 출근

"기분이 어때? 떨려? 잘할 수 있지?" 민우는 제희보다 더 긴장한 듯 상기된 목소리로 쉬지 않고 물었다.

바쁜 출근시간 지하철에 올라탄 제희는 심호흡을 했다.

아무리 괜찮은 척 하려해도 두근거리는 심장과 떨리는 손은 어찌할 수 없었다. 가만히 있으려고 안간힘을 쓸수록 온 몸에 힘이 들어가서 어깨와 뒷목이 뻐근했다.


‘괜찮아, 잘 할 수 있을 거야!’


긴장을 풀기 위해 제희는 오늘 회사에 가면 하게 될 첫 인사를 연습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신입사원 신제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렇게만 하면 될까? 인사를 연습하면 할수록 다리가 더 후들거리는 것만 같았다.


어느새 도착한 홍대 입구역. 문자로 안내 받은 회사로 더듬더듬 찾아갔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제희의 남자친구 민우였다.


“어디야? 도착했어?”

“응. 지금 회사 앞이야.”

“기분이 어때? 떨려? 내가 다 떨린다. 잘할 수 있지?”

민우는 제희보다 더 긴장한 듯 상기된 목소리로 쉬지 않고 물었다. 평소 호들갑을 떨지 않는 성격이라 민우의 이런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민우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어져서 제희는 오히려 태연하게 아무렇지 않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 민우의 응원 전화를 끊고 제희는 회사로 걸음을 옮겼다.      


‘똑똑’

제희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회사 안에 들어왔는데 제희를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컴퓨터를 바라보며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님 자고 있거나.

당황한 제희는 가까운 사람에게 다가가서 오늘부터 일하기로 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알렸다. 그 사람은 제희를 위에서 아래로 훓어 보더니, 저 쪽으로 가보라고 했다.


제희는 그렇게 그 사람이 가리킨 곳으로 갔다. 제희가 다시 용기를 내서 “저기.. 오늘부터 일하기로 한 사람인데요..”라고 말했다. 제희가 말을 건낸 수척해 보이는 남자는 제희를 한 동안 빤히 쳐다보더니 생각났다는 듯이 ‘아!’라는 탄식과 함께 제희를 팀원들에게 소개해주었다.   


제희가 활짝 웃으며 연습했던 본인 소개를 하려고 하자, 팀장이라는 그 남자는 대뜸 제희에게 "노트북은 들고 왔어요?”라고 물었다. 제희는 당황하며 “아니요. 그런 말씀이 없으셔서..”라고 말하자, 팀장은 "그랬나? 그럼 내일 부터는 본인 컴퓨터 들고 오면 되요. 오늘은 저기 컴퓨터 쓰면 되고.” 라고 짧게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컴퓨터 앞에 앉자, 제희는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왔다. 이런 게 사회생활인가 싶기도 하고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어둡고 무섭기만 했다. 서러움에 멍하니 앉아 있던 제희의 어깨를 누군가가 톡톡 두드렸다. 뒤를 돌아보니 예쁘게 생긴 어떤 여자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리키며 “회의 시간이에요.”하고 싱긋 웃어보였다. 제희는 헐레벌떡 일어나서 고맙다고 고개 인사를 한 뒤, 그 여자의 뒤를 따라갔다.


회의는 좀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뿐이었다. 팀장은 침을 튀기며 비상상황이라고 강조했고, 어서 빨리 아이템을 찾지 않으면 당장 방송을 내보낼 수 없다고 오늘 안에 무조건 아이템을 찾아내라고 했다. 그렇게 팀장의 연설로 시작한 회의는 수없이 쏟아진 팀장의 침들로 끝이 났고 사람들은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제희도 배정 받은 컴퓨터 자리로 돌아가서 팀장이 지시한 지난 방송 보기, 아이템 찾기를 시작했다. 하루 종일 앉아서 방송을 보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스토리전개였다. 일반인으로 이루어진 출연진들은 너무 어색했고 인위적이었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제희는 방송을 보는 내내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런 프로그램을 앞으로 계속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제희가 보기엔 곧 망할 것 같았다. 이런 프로를 도대체 누가 본단 말인가. 프로그램을 이해할 수도 없는데 어디서 아이템을 찾는단 말인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점심시간에 아까 싱긋이 웃어보였던 여자에게 다가가 아이템을 어떻게 찾는 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냉정하게도 ‘그냥 컴퓨터를 쳐다보고 찾으면 된다’였다.


그래.. 그러니까 컴퓨터를 보고 뭘 찾으라는 것이냐고.     


아침 회의 때 팀장이 말한 저녁 회의 시간 8시가 다가오자 제희는 점점 초조해졌다. 제희는 되는 데로 급하게 뒤적이던 기사들을 프린트해서 아침 회의 때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팀장은 제희가 프린트한 아이템들을 보더니, 이런 건 안 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아직 신입이라 모를 수 있다며 위로 아닌 격려를 내뱉으며 내일은 더 좋은 아이템을 내 놓으라고 말하고 회의를 끝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제희는 어둑해진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가 참 길게 느껴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껏 멋을 낸 젊은이들이 홍대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제희는 잠시 거리에 주저앉았다.      


내일도 여기를 와야 해.      


그렇게 하고 싶다고 믿었던 꿈이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전화를 받고 먼저 이 길을 선택해 가고 있는 선배 언니에게 전화해, 이것저것 물어보며 들뜬 마음으로 잠들었던 지난 며칠이 떠올랐다.      

집에 도착해 잠자리에 누워서도 계속 울리는 민우의 전화벨 소리도 무시하고 제희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 뿐이었다.      


'내일도, 내일 모레도 계속 오늘처럼 고통이겠구나.'      


그렇게 제희는 내일 해가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계속 흘렀고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그리고 제희는 회사에 가지 않았다. 이렇게 고통스러울 바엔 그냥 가지 말자. 내가 좋아서 급여 따윈 바라지 않고 시작한 일인데, 그 일이 고통스럽다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제희는 자신을 위해서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회사에 출근하지 않겠다고 통보한지 10분도 안돼서 후회했다.      


조금만 더 버텨볼 걸 그랬나.     


하지만 비겁하게도 제희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잘한 선택이라고. 그 회사는 비전이 없다고. 그 프로그램은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고, 조만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제희는 그렇게 자신을 타이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너가 무슨 작가니, 책도 안 읽으면서, 글도 못쓰면서, 작가는 아무나 되는 줄 아니?’라고 잔소리 하는 엄마에게 꿋꿋하게 그래도 하고 싶다고 떼쓰지 못 할 테니까.


그런 것도 못 버티고 겨우 하루 만에 그만둬 놓고, 무슨 꿈을 운운하냐고 비난 받는 게 무서워서.      


그렇게 제희는 계속 잘한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