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나 Jun 26. 2016

프롤로그.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야. 그러니, 괜찮아.

택시 아저씨에게 말했다.

“가까운 동사무소로 가주세요.”


아저씨는 잠시 멈칫하더니, 되물었다.

“어디 동사무소로 갈까요? 여기 가까운 동사무소가 3개나 되는데...”


나는 잠시 생각하다, 예전에 가 본 적이 있는 동사무소의 위치를 설명해 드렸다.

그러자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그리로 가드리겠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갑자기 내 눈치를 보다가 말을 시작하셨다.  

“요즘 동사무소가 참 많아, 저쪽에도 있고, 시장 건너편에도 있고, 아휴, 무슨 동사무소가 이리 많은지, 아가씨처럼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면 참 좋은데, 그냥 무턱대고 동사무소 가자고 하면 얼마나 난감한지. 참.”


나는 뜨끔했다. 처음부터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었어야 하는 거였나?


아저씨는 말이 없는 나를 백미러로 힐끔 바라보고는 다시 말을 이으셨다.

“사람들이 참 그래, 내가 택시 운전을 하고 있지만, 자기 동네는 자기가 더 잘 알 거 아니야, 그런데, 내가 모른다고 하면 나한테 버럭 화를 낸다니까! 예전에 처음 택시 시작할 때, 새벽에 어떤 젊은 놈이 탔는데, 그놈이 무슨 아파트로 가자더라고, 그래서 그리로 갔지, 그런데 이 놈이 술 취해서 자다가 도착했다고 깨우니, 일어나서는 여기가 아니라는 거야, 글쎄! 그래서 손님이 말한 곳이 여기가 맞다고 했더니, 아니 그 동네에 똑같은 이름의 아파트가 두 개였던 거지. 그래서 그럼 다시 그리로 가주겠다고 했지. 그랬더니, 글쎄 이놈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택시기사가 그런 것도 모르냐며 화를 내는 거야. 젊은 놈이 그러는데, 아휴, 눈물이 핑 돌더라고. 그래서 집에 가서 우리 아들한테 말했더니, 아들이 그만두라고 얼마나 성화였는데.”


나는 아저씨의 긴 말을 흘려듣던 중, 눈물이 핑 돌았다는 곳에서 멈췄다. 흰머리로 뒤덮인 아저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억울하고 분하지만, 속으로 눈물을 삼켰어야 했던 그 날 새벽, 아저씨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아저씨는 택시 운전을 한 지 8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그 날 일이 생생하다고 했다. 정년퇴직을 하고 계속 일을 해야 하는 형편에 택시 운전을 선택하고서 그래도 아직 할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돈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겪은 젊은 사람의 욕은 아저씨에게 꽤나 힘든 일이었나 보다.


아저씨의 말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 낯선 사람에게 잘 하지도 못하는 맞장구를 쳤다.

“어휴, 진짜 그 사람 나빴네! 왜 택시 아저씨한테 화풀이야!”


아저씨는 내가 맞장구치는 게 웃겼는지,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야. 그러니, 괜찮아. 이 일도 할 만해.”


나는 작게 “그렇죠. 뭐.”라고 말했다.


택시에서 내려 동사무소로 걸어가면서 나는 예전에 내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손님이 생각났다. 그때 나도 참 억울했는데, 눈물이 차오르는 걸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삼키며 손에 힘을 주고 화장실로 달려가 쏟아지는 눈물을 소리 없이 흘리고는 했었는데...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그 손님이 그리 밉지는 않지만, 한동안은 그런 손님을 또 만날까 두려워, 손님을 슬슬 피하고는 했었다.

택시 아저씨나 나나 손님을 대해야 하는 직업인 이상 억울하고 분한 일은 한 번씩은 겪는 일인 가보다.라는 생각에 닿을 때쯤 나는 더 억울해졌다.


아니, 왜 그런 일을 꼭 당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일 안 당할 수도 있는 거잖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욕먹고 이유가 어찌 되었든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 빌어야 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느끼는 굴욕감과 비참함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런 비참한 일을 이 직종을 선택했다면 당연히 당해야 하는 일로 치부하는 것도 싫었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내게 그런 일을 겪고 나서도 계속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가 뭐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 이다.


차오르는 눈물을 소리 없이 흘리던 그날 화장실에서, 나역시 내게 수도 없이 말했다. 도대체 이 일을 왜하냐고. 그냥 그만 둬 버리라고. 당장 이 곳을 떠나자고. 이런 모욕과 비참함을 견디며 일을 할 이유가 없다고. 그냥 그만둬버리면 그만이라고.


그렇게 마음먹고 돌아온 매장에는 동료직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한 명씩 내게 와서 괜찮냐고 물었고, 나보다 더 흥분해서는 그 손님을 욕했고, 농담을 던지며 나를 웃겨주었다. 누군가는 내게 나 때문에, 나이기 때문에 그 손님이 화를 낸 것이 아니라고, 그냥 그 사람은 화풀이할 누군가가 필요했고, 하필 그 자리에 내가 있었던 것뿐이라고. 그러니,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말했다.  


그런 동료직원들의 위로가 당장 사직서를 낼 거라고 다짐했던 내 마음을 잠시 멈추게 했고, 그렇게 사직서를 내일로, 모레로 미루다 보니,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내 상처는 조금씩 아물었다.


택시 아저씨가 마지막에 한 말처럼, 항상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고, 항상 나쁜 일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이 일도 할 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장단점이 있다. 앞서 내가 말한 것은 단점에 속하는 것이고, 이 업종의 장점도 많이 있다. 그래도 나는 이 직종의 단점이 많이, 자주 일어나지 않길 바라면서 글을 써 보려 한다.


나와 같은 직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저 같이 일하는 동료 언니와 수다 떠는 것처럼, 같은 직종이 아닌 사람이라면 그저 저 직종은 저렇구나 하는 정도의 마음으로 읽어주었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 제희의 첫 출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