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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 Jul 21. 2021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장미를 가지고 있다.

안데르센 동화 공모전 <눈의 여왕>

“오늘도 우리 집 갈 거지?”

학교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단짝 친구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응” 

나는 웃으며 답하고 서둘러 가방을 챙겼다. 그렇게 우리 둘은 나란히 교실 문을 나와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친구 집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져 우리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고, 각자 콘 아이스크림을 하나 씩 손에 들고 다시 걸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 옆에는 파도가 쉬지도 않고 방파제를 두드렸다가 물러 났다가를 반복했다. 초 저녁이었지만 아직 태양은 집에 갈 생각이 없었던 탓에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은 한 두 방울 씩 콘 과자를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이스크림을 신경 쓰며 제대로 걸을 수 없었던 우리는 조용히 바닷가 옆 공터에 세워진 작은 돌기둥에 띄엄띄엄 앉았다. 우리의 발길에 옆에 있던 비둘기들은 화들짝 놀라 푸드덕 소리를 내며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에 집중하느라 말이 없었지만, 시원한 파도 소리가 주변의 정적을 매웠다. 한 여름이었지만 바다가 불러오는 바람은 뜨겁지 않았다. 돌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질 줄 알면서도 바보같이 또 다가오고야 마는 파도를 바라보며 우리는 그냥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누군가 나에게 자신이 가장 순수했던 때가 언제냐 묻는다면 이 날이 떠오른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내 손에 놓인 아이스크림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 

내 쪽으로 왔다가 다시 멀어지는 파도를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바라볼 수 있었던 순간. 

서로 눈이 마주치면 말없이 그냥 웃을 수 있는 친구와 함께했던 시간.  


그때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아름다워서 만약 내가 숨이 멎기 직전 파노라마처럼 내 인생의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면, 나는 이 장면은 꼭 있을 것이리라, 생각했다. 


기억이란 참 놀랍다.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나는 그곳에 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나의 모든 감각이 함께 작동한다. 따뜻한 빛의 햇살, 살갗을 간지럽히던 바람, 귓가를 울리던 파도소리가 순식간에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하지만 기억이란 또 쉽게 사라지기도 해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그날의 아름다웠던 바다를 잊고 살아간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가슴에 거울 조각이 박힌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깊이 공감하기보다는 외면하는 편리함을 선택하고, 눈에 거울 조각이 박힌 것처럼 조금만 돌아보면 찾을 수 있는 행복보다 저 멀리에서 꿈쩍도 안 하는 행운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그러다 갑자기 울리는 친구의 전화에, 퇴근하는 길 올려다본 하늘빛에, 하릴없이 뒤적이던 핸드폰에서 발견한 익숙한 장소의 사진을 보는 순간 꽁꽁 얼어있던 감정들이 녹아서 나를 다시 예전의 그곳으로, 기분 좋은 바람이 불던 아름다운 그날의 바닷가로 데려다 놓곤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눈과 가슴에 박혀있던 거울 조각은 하얀 거품을 내는 파도와 함께 떠내려간다. 


겔다와 카이의 장미처럼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장미를 가지고 있다. 떠올리면 기분 좋은, 순식간에 나를 순수하고 해맑은 어린아이로 변신시키는 그런 마법의 장미를 저마다 가슴속에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장미를 꺼내어 추억할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그를 위해 여전히 나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줄 여유가 있다면, 그래도 살 만한 인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부디 당신 옆에도 그런 사람이 함께 있기를...

그리고 당신만의 장미를 자주 꺼내어 나눌 수 있는 여유가 함께 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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