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동화 공모전 <인어공주>
한때 나는 드라마틱한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 믿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마녀에게 목소리를 내놓는다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같이 죽기로 마음먹거나,
그것도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만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함께 도망치거나.
그런 일들이 내게도 일어나길 바랐고, 급기야 그런 사랑이 아니면 다 가짜라고 치부해 버렸다.
그래서 멋대로 네가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오만함을 부리기도 했고 상대에게 생긴 내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를 따져보느라 내 감정을 제대로 느낄 여유 조차 없었다.
그런데 인어공주는 달랐다.
그냥 왕자가 보고 싶어서 아침저녁마다 왕자를 보러 헤엄쳐 갔고, 왕자와 함께 하기 위해 무시무시한 마녀를 찾아가고, 왕자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인어공주는 생각하기 전에 그저 행동했다.
이 감정이 사랑인지 그냥 좋아하는 호감 정도 인지 따지려 하지 않았다. 그냥 그 사람이 좋을 뿐 그게 다였다.
어째서 나는 그렇게 무모하지 못했을까? 어째서 나는 자꾸 내 앞에 놓인 사랑을 저울과 자를 가져다 대며 따지고 있었을까? 왜 내게는 그런 눈먼 사랑이 오지 않는 걸까?
자신 주변의 아무것도 개의치 않고 그저 한 사람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인어공주의 열정이 부럽고 그런 인어공주의 진짜 사랑이 부럽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이 내게 말했다.
"세상엔 진짜 사랑, 가짜 사랑은 없어. 그냥 사랑이 있을 뿐이지."
고개를 들자, 눈앞에 있는 풀들이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흔들렸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작은 자갈도 풀들과 같은 방향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려는 듯,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내 귀에도 바람은 속삭였다.
사랑이란 이런 것일까,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흔들리는 풀잎으로 바람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과 행동으로 우리는 사랑의 존재를 확인한다. 어릴 적 남몰래 마음속으로 그 아이와의 연애를 상상하던 마음도, 용기 내 고백한다는 것이 자꾸 빙빙 돌려 말하며 짜증만 부리던 마음도,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술로 밤새우고 편지를 끌어안고 잠들던 마음도 모두 사랑이었다. 그 모든 사랑에 가짜는 없었다. 바람이 크게 불든 작게 불든 바람이듯, 사랑도 크던 작던 사랑이다. 꼭 죽음을 무릅써야지만 진정한 사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내 마음이 진심이었으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인 것이다.
혹시 당신이 만약 동화나 드라마처럼 로맨틱하고 극적인 사랑에 눈이 멀어 지금 곁에 있는 사랑을 홀대하고 있다면, 조용히 어느 한 여름밤 산책에서 내 팔을 간지럽히던 작고 가녀린 바람을 떠올려 보길 바란다. 그리고 언제나 당신 곁에서 불고 있는 작은 사랑에 마음도 전해 볼 수 있길.
크고 거친 바람보다 은은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그런 사랑이 때로는 더 힘이 되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