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물어보는 것만 알려주세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이어오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내가 계속 다짐하는 것이 있다.
좋은 엄마 되기? 화내지 않기? 소리 지르지 않기?
이런 것들은 매일 다짐은 해왔지만 매번 실패하기 때문에 다짐은 의미가 없다.
내가 유일하게 육아하는 나에게 계속 상기시키는 것은
"육아 꼰대 되지 않기"이다.
꼰대는 육아의 세계에도 존재할 수 있었다.
내 주변에 육아 후배가 생긴다면 절대로 나는 선배랍시고 꼰대가 되지 않길 다짐했다.
'나 때는 이런 것도 없었어. 요즘은 진짜 애 키우기 편하겠다.'
'아기가 진짜 너무 순하다. 이 정도면 열도 키우지. 우리 애는 진짜 말도 마 너무 힘들었어.'
'하나 가지고 뭐가 힘들어'
세상에 내 육아보다 쉬운 육아가 존재할까?
단지 누가 먼저 시작하냐의 문제다.
젊은 나이에 일찍 아이를 낳아 키울 수도 있고,
평균보다 더 나이가 들어서 아이를 낳아 키울 수도 있다.
먼저 경험해봤을 뿐이지 더 잘했다고 할 수 있을까?
나중에 경험했다고 더 못하고 있는 걸까?
우리 아이는 순한 편이라고 했다.
잠도 나름 규칙적으로 자는 편이고, 먹는 것도 잘 먹고. 잘 웃고.
그렇다고 돌보는 게 쉬웠을까?
엄마들이 유일하게 비빌 언덕인 친정엄마는 5년 전에 돌아가셨고.
산후조리원도 도우미 이모도 없는 호주에서 남편과 단둘이 아이를 낳고 키웠다.
출산 후 한 달 정도는 남편이 함께 해주었지만
남편이 다시 일을 하기 시작하고 나서는
나는 홀로 하루 일주일 내내 24시간 아이에게 붙어 있어야 했다.
집안일도 해야 하고 아이도 돌봐야 하고 아직 삐그덕 거리는 내 몸도 돌봐야 했다.
아이가 순하다고 환경도 순한 건 아니다.
임신, 출산 동시에 축하도 쏟아지지만
조언인지 잔소리인지 모호한 경계에 있는 그 무언가도 쏟아진다.
모 방송에서 조언과 잔소리의 차이에 대해 명쾌한 대답이 나왔던데.
잔소리는 은근히 기분 나쁜데요 조언은 더 기분 나빠요.
초등학생이 말한 현답이었다. 그냥 둘 다 안 하는 게 낫다고. 초등학생도 안다.
무언가를 먼저 해본 우리는 안 해본 사람들에게 자꾸 얘기라도 해주고 싶은 병에 걸린 걸까?
나는 생각했다.
내 주변에 임신과 출산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면
궁금해서 나에게 직접 물어오는 것들만 간단명료하게 성실히 대답해 주기로.
나는 그럴 때가 진심으로 고마웠고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말 궁금하고 필요한 걸 물어봤을 때 성심성의껏 딱, 그거에 대한 대답만 들었을 때.
그때 그 언니들이야 말로 나를 고통으로부터 구원해 준 진정한 구세주들 같았다.
(호주에서 의지가 되었던 언니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남의 말을 이토록 듣기 싫어하는 나는 다행히 세대를 잘 타고났다.
기술과 인터넷의 발달로 한 손으로 육아를 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 육아를 검색해 볼 수 있다.
특히 맘 카페라는 그곳은 묻는 말에만 친절하게 요점만 말해주는 천사 같은 선배맘들이 가득했다.
어찌나 다들 지혜롭게 육아들을 하시는지 거의 모든 시기에 맞춰 비슷한 변수와 사유들이 있었고 또 그에 따른 해결방안도 이미 댓글에 (심지어 여러 방 안이) 나와 있었다.
질문 하나 했다가 답변의 대가로 들어야만 하는 군더더기 잔소리나 강요 따위는 없는
깔끔 담백함 덕분에 커피 향 한줄기 없는 이 카페가 이렇게까지 발달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결국.
우리 엄마들은 병원에 가야만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의사를 만나서 확실한 얘기를 듣기 전에 주변에서 말하는 카더라는 일단 중립기어를 박았다.
함부로 액셀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했다.
공부라고 할 것도 없고 정확한 팩트 정도는 엄마로서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궁금하게 있으면 일단 소아과 전문의가 쓴 책들을 읽었다.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짬짬이 훑기라도 했다.
그중 몇 가지 건졌다면 어쨌든 정확한 지식 몇 개는 내 것이 된 거다.
그 지식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의 말을 걸러 듣는 귀가 생긴다.
그렇게 육아에 대해서 조금 알았구나 싶어 질 때쯤
주변에 육아 후배가 하나 둘 생겨났고 내가 알고 있는 이 지식들을 나누고 싶었다.
하나라도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조금이라도 편하게 육아를 했으면 하는 마음에,
내가 얻은 노하우와 지식들을 나눠보려고 하는 내 모습에 놀라고 말았다.
결국 그렇게 경계했던 오지랖 흙이 깔린 꼰대의 길로 들어서고야 만 것이다.
그리고 그 육아 꼰대들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 건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미 엄마"가 "이제 엄마"에게 느끼는 유대감과 동질감. 같은 전쟁에 던져진 전우애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 길을 돌아 나오기로 했다. 발에 붙은 오지랖 흙을 툭툭 털어냈다.
다시 나의 육아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코가 석잔데'
어느 분야든 정통성은 필요하다.
하지만 세대는 너무 빠르게 변하고 그 세대라 칭하는 간격마저도 너무 자잘하게 쪼개어지고 있는 이 세상에서, 똑같은 방식을 강요하는 건 어쩌면 위험하다.
이제 머리숱 많아지라고 배냇머리를 밀어주는 때는 지났다.
함몰유두가 걱정돼서 신생아 젖을 짜주는 위험천만한 행동도 해서는 안된다.
태열이 시뻘겋게 올라왔는데도 아이가 춥다고 꽁꽁 싸매는 것도.. 다 냉난방이 자유롭지 못했던 옛날이야기.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전적으로 자기의 주관을 가지고 키워야 한다.
그 주관에는 전문가의 의견이 바탕이 되어하는 게 마땅하다.
엄마 없이 아이를 키우는 나는,
여기저기 육아 선배들에게도 자문을 구했지만, 다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왜냐면 각자 아이를 키우는 환경도 다르고 무엇보다 아이의 성향과 체질이 다르고,
그리고 그 아이를 다루는 엄마들 마저도 성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엄마가 판단하고 정해야 하는 몫이다.
육아는 엄마와 아이, 둘의 합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다른 제3자가 끼어들어서 노선을 정해줄 문제는 아닌 거다.
간혹 이런 엄마의 방식을 존중하지 않고 자기가 했던 육아를 강요하게 한다면 진짜 꼰대가 되는 거다.
각자 엄마가 갖고 있는 육아 방식은 존중하며 궁금해하는 것들, 필요한 것들만 같이 공유한다면 우리는 분명 같은 전쟁에서 함께 승리할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