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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슈라 Feb 14. 2020

나에게 집

집에 대한 향수

눈을 감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조그만 마당엔 진돗개 한 마리, 할머니가 아끼는 크고 작은 나무들, 조용한 골목을 지나 육교 다리 밑을 지나면 나와 같은 조무래기들이 모여 모래놀이를 하는 놀이터가 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놀다가 하늘에 푸른빛이 돌 때면 다시 우당탕탕! 집으로 뛰어들어가면 어렴풋이 기억나는 우거짓국의 향.

할머니의 부름에 우다다 뛰어갔던 그때, 할아버지와 함께 한 우산을 쓰고 걸었던 그때, 아빠의 두툼한 손을 잡고 조심조심 걸었던 그때, 엄마옷에 코를 묻고, 엄마 냄새가 좋아- 했던 그때.


책가방을 메기 시작했을 땐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엄마, 아빠가 마음 가득 자랑스러워했던 우리 아파트 집.

할머니가 아끼는 나무들은 도자기 화분에 담겨 베란다를 가득 메웠고, 작은 방엔 나와 동생 각자의 책상, 의자, 책꽂이가 나란히 주어졌다. 동생과 나는 서로 내 책이네 네책이네, 기분 좋은 실랑이를 나누며 꽂았던 기억이 난다. 101동, 103동 지나면 자주 가는 마트가 있었고, 우리 동 바로 앞에 있던 놀이터에서는 줄넘기 연습을 하고 배드민턴을 치곤 했다. 놀이터를 둘러싼 향나무 향이 좋아 잎을 따다 경비아저씨의 꾸지람을 받기도 했었던, 가장 오래 살았던 우리 집.


그 후, 두 번의 이사를 거치고 몇 년을 훌쩍 뛰어넘어 다시 떠올려본다.


새벽을 코앞에 둔 어두운 겨울밤, 출근하는 엄마는 나와 동생이 깨지 않도록 살포시 문을 열고 가셨고, 잠든 척을 하며 눈을 더 질끈 감고서는 공부 열심히 해서 엄마 고생 덜어드려야지- 생각했던 그런 밤.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진 나의 집, 우리 가족의 집.



'서울 가서 살래-!' 

서툴기 짝이 없던 고작 스물몇 살의 나는 서울에서 내 방 한 켠을 마련했다. 베란다는커녕 책상, 침대 놓으면 꽉 차 버리는 작고 하얀 방. 제대로 하는 건지 뭔지 모를 일들을 잔뜩 하고 돌아오면 이 작은 방에 정 붙이고 맛있는 밥상을 차릴 여유도, 추억을 쌓을 여유도 없었다. 이 집은 내 집이 아니고, 그저 내가 잠시 머무는 '장소'일뿐이라는 생각을 늘 했던 것 같다. 집 주변 골목길을 돌아보는 것도 귀찮거니와 지하철역과 집 사이를 같은 길, 같은 걸음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온전한 내 마음을 편히 두고 다니지 못한 채, '우리 집'에 대한 기억은 짙어진다. 짙어진 기억은 차곡차곡 접어서, 내 마음속 비밀통로를 지나 보물상자에 담아둔다. 그리고 내 마음을 편히 살피고 싶을 때면 보물상자를 열어 기억을 펼쳐본다. 꼭꼭 숨겨두고는 마음이 지칠 때 드나들며 현실을 버티었다. 


엄마가 내 동생을 낳고 한창 육아에, 살림에 바빴을 그 나이가 된 나는 서울 강북 언덕길에 조그만 전셋집을 얻었고, 까만 콩 같은 강아지 한 마리와 덩치 큰 남자 한 명과 함께 살고 있다. 


창문 옆에 내가 좋아하는 나무를 들여놓고, 까만 콩과 함께 골목길 산책을 다니고, 옥상에 올라 밤하늘을 보기도 하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간다. 그러고 보니 내 마음속 집에 드나든 일이 많이 줄었다. 

시간이 주는 선물일까? 이제야 지금의 집에 발을 붙이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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