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마주 앉아 콧물을 훌쩍이며 먹는 빨강
냉전을 시작한 지 7일째. 첫 주말이었다.
자존심은 굽히기 싫었고 우리 둘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눈치 보는 우리 까만 콩이 안쓰럽기도 해서 어서 이 기나긴 냉전을 끝내고 싶었다. 연애 5년, 결혼 3년 차, 꽤 긴 시간 함께였는데도 불구하고 불쑥 찾아오는 이 차디찬 시간.
이 시간을 깨뜨리는 말 한마디 건네는 게 매번 어렵다. 이번엔 기간이 길어진 탓에 미안하다는 말도, 고생했다는 말도 꺼내기가 어색해져 버린 것이다. 주말에 남편은 일부러 약속을 잡아놨는지 아니면 사우나를 가서 이참에 오래 시간을 보내는 건지, 일부러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외출하고 없는 것이다. 그래도 주말 아침마다 늘 하는 까만 콩과 의 산책은 지키고 나간 걸 안다.
9시쯤 잠에서 깨어 눈만 껌뻑이고 있었는데 보니 거실에서 산책 갈까? 나갈까? 하며 부산을 떠는소리가 들렸다. 나도 같이 가! 평소 같았으면 같이 가자며 추리닝을 잠옷 위에 입고 함께 소란을 떨었을 텐데, 냉전 중이니 그럴 순 없다. 억지로 눈을 붙이고 최대한 늦게 일어나자는 심보로 다시 잠을 청한 결과, 일어나 보니 오랜만에 신나는 산책을 하고 왔는지 까만 콩만이 내 옆에 궁둥이를 붙이고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고요한 일요일의 낮.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 시간인데. 체한 듯 마음이 불편하다.
아침밥을 하며 은근슬쩍 말을 걸며 풀어볼 의향이 있었는데 그 시간을 송두리째 날렸다. 지난주 SNS에 올렸던 우리 셋의 단란한 산책 풍경이 무색할 만큼 오늘은 냉랭하다. 로봇청소기를 돌리고,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건조기에 돌리고, 화분도 옮겨본다.
어영부영 보낸 시간이 흐르고 오후 4시 반. 갑자기 한 것 없이 이렇게 시간을 보낸 것이 화가 난다. 오늘은 사이를 풀어서 마음 편한 주말을 보내고 싶었는데! 억울함이 온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떡볶이 생각으로 흘러들었다. 엽기적으로 매운 떡볶이가 생각나 배달앱을 둘러본다.
우리는 탄수화물에 강한데. 왠지 그도 떡볶이 땡기지 않을까? 딱 배고플 시간인데.
둘이서 마주 앉아 흐르는 콧물을 훌쩍이며 떡볶이를 먹고 나면 괜찮아질 것 같았다. 빨간 떡볶이 사진을 연달아 봤더니, 야채튀김을 시킬지 김말이를 시킬지 주먹밥은 시킬지 물어보고 싶다. 물어보는 카톡을 보냈는데 확인도 안 하고 답장이 안 오면 시키는 게 또 애매해져 버릴 텐데.
머릿속은 이제 떡볶이 주문으로 가득 차 버렸다.
그리고 떡볶이가 뒤덮어버린 나의 의식은, 어떠한 계산 없이 먼저 톡을 보냈다.
‘떡볶이 시켰는데 먹을래?’
무심코 던진 카톡 바로 위에는 ‘그래! 알았어-’부터 시작해 네가 그랬으니까 나는 이랬고 저랬으며, 그러니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하는, 원망이 뚝뚝 묻어나는 장문의 카톡이 버젓이 지키고 있었다. 무안하고 무안하지만, 지금은 떡볶이가 더 문제다. 저 조그만 1이 언제 사라질까 들락날락 몇 번을 했더니 ‘먼저 먹고 있어. 조금 늦어'라고 대답이 왔다.
함께하진 못하지만 그래, 용기 내 보낸 ‘떡볶이 카톡'이 반은 성공한 것 같다며 셀프 위로를 했다.
떡볶이는 도착했고, 나는 후후 불어대며 열심히 먹어본다.
이번 냉전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길어지겠군.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