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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싱글녀의 솔직한 수다 4.

기가 세도 괜찮아!

by 신연재

내가 연애치가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런 것들은 차치하고라도

나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친 말들이 있다.

"너는 기가 세서 남자가 접근하는 게 쉽지 않을 거야."

"남자들은 똑똑한 여자 부담스러워 해."

난 내가 기가 세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고,

더구나 똑똑하다고 생각한 적은 더더욱 없었음에도 그런 말을 꽤 들어야 했다.

이유는 단 하나다.

내 의견을 잘 말했다는 거다.

그게 상대하기 피곤한 기센 여자의 조건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한심하게도 그런 말을 들으면서 스스로 그런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메시지에 의하면, 내가 누군가를 만나서 연애나 결혼을 하려면

이 센 기운을 죽이든가, 똑똑하지 않은 체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꽤 오랫동안 나는 하루라도 빨리 나한테 들러붙은 드센 기운을 털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만 없으면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내 드센 기운은 사라지지 않고 나이만 먹어가는데,

돌아보면 나보다 더 기 세고, 나보다 훨씬 똑똑한 여자들도 어디선가 남자를 만나 잘만 연애를 했고, 결혼도 척척 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 기센 여자 군에서 나만 또 밀렸다는 열패감과 함께 '내 기가 그들보다 더 센 건가?' 라는 어이없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행동한 적도 있다.

내 의견을 말하기보다 그냥 많이 웃어준다든지,

내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수동적으로 표현하면서 참한 여자 코스프레를 한 거다.

그렇게 만나는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었다.

애프터를 받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친절한 미소를 띠고 경청하면서 적당한 리액션을 해주었는데 한동안은 신나서 이야기를 하더니 어느 순간, 뜬금없이 나이를 물었다.

나는 동갑이라는 것을 알고 나갔는데 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저는 동갑으로 들었어요.”

그러자 그의 대답이 얼척이었다.

“혹시 한 살이라도 어리지 않나요?”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내 그가 “오빠”라는 호칭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뭐 그건 그럴 수 있다 쳐도, “오빠 오빠” 하면서 세상 모든 게 신기하고 재밌는 어린 아가씨를 원한다는 걸 이미 말과 표정으로 다 표현하는데,

‘이 시점에서 한 마디 해줄까’하다가 소개해 준 친구에게 또 기센 여자 드립을 들을 것 같아 참았다.

나이든 여자는 이미 할 거 다 해보고, 맛있는 거 먹을 거 다 먹어보고,

좋다는 데 다 가보고..

그래서 더 이상 신기하고 재밌는 게 없기 때문에

남자들이 맛집이나 여행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존경과 감탄의 리액션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재미없어서 어린 여자를 좋아한다나 어쩐다나.

돌아보면, 나도 어렸을 때 나이 많은 선배들의 경험과 지식에 감탄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남자들의 그 심정도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감동, 동감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장점도 있는데 말이지.

어느 순간, 연기를 하고 있는 내가 참 없어 보이더라.

그래서 걷어치웠다.

나답지 않은 모습으로 잘 보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내가 살아온 삶과 내 자신을 부정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친구들이 나보다 일찍 결혼해서 결혼생활을 통해 많은 것들을 겪고 성숙한 것처럼

나는 싱글의 시간을 통해 싱글이 아니었으면 절대 알지 못했을 일과 관계들을

잘 쌓아왔다.

특히 남녀관계에 있어서는 별별 일을 다 겪었다.

외로워서 발버둥치는 시간도 있었고,

소개팅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애프터 신청이 나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씁쓸히 돌아와서 혼자 맥주를 들이킨 밤이 몇 번이던가.

마음이 안 가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3번은 만나보라’는 강요에 떠밀려 만나보다가

역시 아니어서 ‘이럴 줄 알았어’라며 허탈해했던 적도 많았다.

혼자 헛물 켜고 쪽팔림에 이불킥한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때는 그런 시간들이 소모적으로만 느껴지고

어서 짝찾기의 종말이 오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한편으론 난 열심히 일했고, 모험을 즐겼으며, 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세상을 경험했다.

또 내가 가정주부로만 지내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일할 수 있었다.

싱글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차곡차곡 하고 있었던 거다.

그러면 된 거 아닐까.

이런 내 삶의 방향과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행복하지,

드세거나 너무 똑똑하고 지나치게 나이 많아서 부담스럽다는 사람에게

나를 떨이상품마냥 그렇게 넘기면 행복할 리가 만무하잖아.

나이와 상관없이 매력 있고,

결혼 성사 여부와 상관없이 타인과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그런 나를 알아봐주는 좋은 인연을 만나면 좋은 거고,

아니면...

지금까지처럼 그렇게 내 삶을 알차게 채우면 되는 거다.

싱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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