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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연재 Aug 22. 2016

40대 싱글녀의 솔직한 수다 5.

아무나와 결혼할 순 없다

40을 넘기면서부터는

계속 독신으로 혼자 살 수도 있을 것에 대한 가능성을 늘 열어둔다. 

그걸 원하지는 않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고, 

이렇게 사람을 만날 만한 가능성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럴 가능성을 염두에 두게 된다.

그러면서도 뉴스에서 독거노인이 죽은 다음에 며칠이나 방치된 다음에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겁이 난다. 

나도 그렇게 쓸쓸히 늙어가고 죽게 될까봐. 

그래서 급한 마음에 ‘아무나’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던 차에,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씨가 마른 노총각들을 털어서 소개해 주는 경우가 있다.

참 고마운 일이지만, 문제는 그들이 ‘진짜’ 아무나라는 점이다. 


작년쯤, 옛날 직장 동료가 소개팅을 주선했다.

성당에서 알게 된 분이라며 그의 연락처를 주었다.

그쪽에도 내 연락처를 주었고 곧 연락이 갈 거라고 했는데 3주가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알고 보니 그쪽 남자가 소개팅에 별 마음이 없는 상태였던 모양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소개팅에 물리기도 했고, 

자기보다 한 살 어린 내 나이가 너무 많다고 생각했단다.

어쨌든 중간에 주선을 한 분은 억지로 약속을 잡았고 어쨌든 자리에 나갔다. 

그 사람의 나이와 이름, 전화번호만 알고 나간 자리.

앞머리가 벗겨진 것쯤은 괜찮다. 머리 빠질 나이니까. 

직업은 자동차 영업사원. 이것도 뭐 괜찮다. 자기 일 잘 하면 됐지.

그럼에도 그가 ‘아무나’라고 느끼게 된 세 가지 이유.

첫째, 차에 타자 뽕짝을 쩌렁쩌렁하게 틀어놓는다.(개취는 존중하나 쉴새없이 쿵짝거리는 음악.. 나는 넘 힘들었다)

둘째, 몇번의 만남 끝에 거절의 의사를 밝히자 자기는 자존심이 생명이니 소개해 준 분께

종교 문제로 헤어졌다고 말해달라고 하더라. 

셋째, 여자의 학력과 직업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려는 속내가 뻔히 보였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이 가지 않는 ‘아무나’다.

게다가 약속을 잡기까지 그렇게 미적거리더니, 

첫만남 때 조금 꾸미고 나간 내가 나이보다 젊게 보였던지 전화로 약속을 정할 때와 태도가 완전히 바뀌는 게 눈에 띄게 보였다.

속으로 ‘넌 거울 안 보니?’ 싶을 만큼, 재수가 없었다. 

여자의 외모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남자, 진짜 별로다. 

그래도 몇 번은 만나보면서 장점을 찾아보겠다고 용을 쓴 내 노오력~ 

내가 생각해도 가상하다.


독거노인이 되는 건 싫지만,

이런 땐 아무나하곤 만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또’ 실감한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더 아무나’를 만나게 될까봐 한숨이 나온다. 

한편으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아무나’가 된 적이 분명 있었을 테지, 하는 생각과 더불어

앞으로 ‘아무나’가 되지 않으려면 

외모든 생각이든 취향이든 계속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위기감도 든다.

어쩐지 그런 게 피곤해져서

어서 이 꼬리표를 떼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줄이고 싶지만  

그래도 ‘아무나’에 날 던지기엔 난 매우 소중한 존재다.

그리고 내가 ‘아무나’로 평가한 그도 누군가에겐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게 인생의 묘미겠지.

그러므로 누군가에겐 아무나일 수 있지만, 나에게 '특별하고' 그에게 나도 '특별한'

그런 만남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 아직은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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