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연재 Apr 06. 2022

대박난 동네 약국, 단골만 아는 영업 비결

나이듦이 두려운 노인들에게 필요한 건, 아이를 대할 때의 그런 친절함

얼마 전, 훈훈한 이야기를 페북에서 봤다.

직장 동료 아이가 종종 라이브 방송을 켜서 퀴즈를 내는데 하루는 접속자가 없어서 실망한 나머지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아이가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용기를 내서 라방을 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은 직장 동료들은 아이가 라이브 방송을 예고한 시간에 맞춰 접속을 하기로 한다. 그 결과 처음에는 15명이 접속을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참여 숫자가 늘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어린 아이 한 명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서 라방에 참여하는 소소한 재미를 함께 나누는 사람들. 그 풍경이 너무 따뜻해서 미소가 저절로 나왔다.

80 넘은 엄마의 심심한 일상에 생긴 작은 사건
                     

엄마가 자주 가는 단골 약국이 있다. 우리가 다니는 병원 건물 지하 1층이 있는 약국인데 맞은편에는 다른 약국이 있다. 병원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으레 손님이 없는 쪽으로 가곤 했는데, 어느 날 그 약국에 사람이 없어서 들어가니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약국 이름도 새로웠다.


보통 약국에 가면 대충 약 복용 방법만 사무적으로 듣고 오곤 했다. 그런데 이 약사는 "갑상선이 안 좋으시군요?"라며, 그러면 피곤해서 잘 쉬어줘야 한다는 말과 약 복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과했으면 좀 불편했을 텐데 적당해서 좋았다.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되는 친절함이었다. 좋은 곳은 널리 퍼트려야 하는 법. 집에 가서 엄마에게 그 약국을 소개했다. 얼마 뒤, 또 약국에 갔더니 약사는 내 처방전을 확인하자마자 반가워했다.

"어, 신소영님이시구나. 어머님이 어제 다녀가셨어요. 따님분이 소개해서 왔다고 하시더라구요."


내향인인 나는 이럴 때 좀 어색하다. 그냥 "네" 하고 있으려니 명랑한 톤으로 "좋게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며 인사를 한다.


백신을 맞기 전날에도 약을 사러 갔다. 좀 무섭다고 하니, 증상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자신도 앓았다는 이야기를 살짝 해주었다. 괜찮을 거라면서 약 성분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는데 왠지 안심이 되었다.


여기저기 아픈 데도 많고 병원에 자주 다니시는 엄마는 당연히 그 약국의 단골이 되었다. 약국에 간 날에는 나에게 와서 약사와 나눈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한참 뒤에 약국에 가니 나를 잘 못 알아보던 약사는 서류를 보고 나서야 "아, OO님 따님이시구나" 하면서 반가워했다. 내가 소개했는데, 어느새 인지도 면에서 내가 엄마에게 밀린 셈이다.


나이가 들면 일상이 심심하다. 나만 해도 20,30대에는 집에 붙어 있는 날이 없었는데 40대부터는 약속이 점점 줄어들더니 50대 들어서자 심심함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사전에 심심함이라니' 하면서 생활의 변화에 놀라기도 하지만, 만나는 사람도 줄어들고, 갈 수 있는 곳도 줄어들다 보니 어쩌면 당연한 변화다.


나도 이러한데 80이 넘은 엄마는 얼마나 심심할까. 게다가 팬데믹 상황에 어디도 자유롭게 나가지도 못하고, 그나마 만나던 친구들도 못 만나고 있어 더 그럴 것이다.


그러다 만난 친절한 약사는 엄마의 지루한 일상에 반짝이는 재미를 주었다. 자신을 알아봐주고, 말을 건네주고, 약을 건네며 묻는 잠깐의 관심이 엄마에게는 기분 좋은 사건인 것이다.



노인들에게 친절한 세상을 바라며


점점 만날 사람도 사라지고, 말할 사람도, 말을 거는 사람도 줄어드는 엄마를 보면서, 또 작은 시간을 내서 친절하게 대하는 약사에게 감동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도 가끔씩 만나는 노인들에게 친절하게 된다.


예전에는 말 붙이면 용건만 딱 말하곤 했는데, 이제는 나도 맞장구까지 쳐주기도 하고, 길을 물어보면 가까운 거리일 경우 동행해 주기도 한다. 나이든 엄마의 무료함과 심심함을 알게 되면서, 또 나도 나이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변화다.


세상은 노인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약국 같은 곳 외에도 사회적으로 불친절한 대우를 받는다. 얼마 전 기사에서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에서 키오스크를 할 줄 모르는 노인들이 그냥 나간다는 내용을 봤다.


버튼 터치만으로 주문·결제가 가능하다는 키오스크의 장점도 있지만, 디지털기기 이용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은 화면 터치부터 난관이다. 50대인 나도 키오스크 앞에 서면 긴장이 되는데, 하물며 노인들은 얼마나 두려울까.


시대에 뒤처졌다는 의식, 그렇다고 시대를 부종하는 방어적 태도로 굳어질 수도 없는 의식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몸의 만성적 아픔과 견주어도 될 지경이다. 시간의 흐름은 늙어가는 사람에게 불친절해진다. - <늙어감에 대하여>, 장 아메리


어제도 엄마는 약국에 다녀오셨다. 내가 사오겠다고 하는데도 굳이 자기가 가겠다고 하시는 걸 보니 그 약국에 가고 싶은 눈치였다. 아니나 다를까. 퇴근하고 집에 오니 약이 식탁에 놓여 있다. 엄마가 신이 나서 말한다.


"그 약국 이제 대박났나 봐. 사람이 너무 많아. 그래서 오늘 약사가 나한테 '오늘은 어머니 하고 이야기도 오래 못 나누네요' 하더라고."


엄마가 약사와 오래 수다를 못 떤 건 아쉽지만, 약국이 잘 된다는 소식은 반가웠다. 그 약사의 친절이 동네방네 소리쳤겠지. '노인에게 친절한 곳이여, 복 있을지어다.' 몸의 만성적 아픔과 비슷할 정도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은 친절 아닐까. 라방을 켠 아이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작은 시간을 내어준 어른들의 마음 같은 것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죽을 때가 됐나 봐" 하면서 로또를 사는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