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자식은 엄마를, 엄마는 자식을... 여전히 서로 돌보는 이 관계
축구선수 이천수가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후배 백지훈을 보고 이런 말을 했다.
"저렇게 잘 생겼는데 결혼을 안 했다. 뭔가 문제가 있다."
TV 프로그램을 통해 그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랐다. 아직도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또 저런 말을 거르지 않고 방송에 그대로 내보내서. 결혼해서 아들 딸 낳은 사람들만 '정상'으로 여겼던 사회적 관념이 깨지고 있다는 것도 모르나.
사유리가 비혼 출산을 한 것은 물론, 한 여성이 비혼으로 두 아이를 입양해서 새로운 가정 형태를 개척하는 세상인데... 이런 변화 속에서 '결혼을 안 한 걸 보니 뭔가 문제가 있다'는 발언을 아직도 들어야 하다니.
엄마도 예전에는 주변에서 "애들 결혼시켜야지"라는 걱정을 많이 들으셨다. 결혼하지 않은 내가 들어야 했던 수많은 부당한 말만큼 엄마도 그런 말들을 들었을 거고. 그래도 엄마가 결혼을 종용하며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 적은 별로 없다.
특별히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렇다. 물론 옛날 사람인 엄마는 분명 아쉬움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50을 넘고 나서야 결혼하지 않은 딸과 둘이 사는 엄마를 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실감한다.
엄마가 본능적으로 엄마일 때
비혼으로 나이 들면서 혼자인 늙은 엄마와 함께 산다는 것은 자꾸 작아지고 사그라드는 엄마를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엄마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그 자리에 내가 서야 할 때가 더 많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본능적으로 엄마일 때가 있다. 그건 바로 오빠와 내가 아플 때다.
오빠가 하필이면 집에 와 있을 때 오미크론 확진 판정을 받았다. 엄마가 쓰는 안방을 오빠에게 내어주고 일주일 동안 엄마는 정성껏 오빠의 끼니를 챙겼다. 사실 확진자와 함께 생활한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삼시세끼를 차려서 방에 넣어주고, 따로 설거지를 하고, 약을 받으러 다녀오거나, 간식을 사와서 들여보내고, 수시로 소독을 해줘야 하는 등 신경 쓰이고 힘이 들었다. 솔직히 나는 '왜 (오빠가 사는 곳이 아닌) 여기 와서 확진을 받았나' 하며 투덜거리곤 했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아플수록 잘 먹어야 한다면서 반찬에 더 신경을 썼고, 평소엔 비싸다고 사지도 않는 딸기를 오빠가 좋아한다면서 몇 번이나 사서 들여보냈다. 어디 그뿐인가. 하루는 오빠의 기침 소리를 듣고는 갑자기 나가시더니 마트에서 큰 무를 하나 사셨다. 엄마가 뭘 하나 봤더니 무를 숟가락으로 긁고 계셨다.
"너희 어릴 때 이렇게 무 갈은 거에 흑설탕 넣어서 먹이면 기침이 가라앉았어. 그게 왜 지금 생각났는지 몰라."
기침과 가래가 가라앉지 않는 오빠를 위한 팔순 노모의 처방이었다. 엄마의 기억력에 감탄하면서, 한편으론 '마스크 쓰는 것은 잘 까먹으면서 그 옛날 우리가 어렸을 때 먹인 그 처방 음식은 어찌 기억이 났을꼬' 했다.
어릴 때 우리를 돌보던 쌩쌩한 엄마는 아니었지만, '내가 엄마다'라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오빠의 보호자 역할을 오랜만에 하는 엄마를 보면서 한편으론 엄마가 이런 말을 하실 거라 예상했다.
"결혼했으면 이럴 때 챙겨주는 사람도 있고 얼마나 좋아?" 그런데 예상 외로 엄마는 그런 비슷한 말조차 하지 않으셨고, "그래도 내가 아직은 몸을 쓸 수 있어서 이렇게 챙겨줄 수 있으니 다행이야"라고 하셨다.
받은 사랑을 돌려줄 수 있다는 것
확실한 변화다. 비혼 자녀를 향한 걱정은 졸업하고, 엄마는 비혼의 자녀를 끝까지 보살필 수 있다는 것을 다행이라 여길 만큼 변했다. 나 역시, 예전에는 결혼하지 않은 것이 큰 불효를 한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던 적도 있었다. 그 시기를 지나니, 나도 엄마에게 내가 받은 것을 갚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우리만큼 사람들의 시선도 바뀌었다. 뭔가 문제가 있어서 결혼을 안 했다는 것보다 엄마가 딸과 둘이 산다고 하면 부럽다는 사람들이 생겼다(그게 립서비스일망정, 부러움은 분명 포함되어 있다). 엄마는 그 부러움으로 위안을 삼는 눈치다. 비혼 딸을 둔 덕을 그나마라도 누릴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엄마가 떠나고 난 뒤에 혼자 남겨지는 나는? 그건 엄마가 걱정할 바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 삶을 책임지는 건 내 몫이고, 그땐 또다른 나의 인생이 있을 테니까. 결혼 안 해서 걱정이었던 딸이 이제는 자신을 돌보는 보호자로 함께 지내는 것이 든든하다면 그것으로 됐다. 그동안 내가 엄마에게 진 빚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난 내리사랑을 할 자식이 없으니, 받은 사랑을 다시 엄마에게 돌려줄 수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