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연재 Jul 05. 2017

비혼과 기혼, 어떤 게 더 나을까요?

우리의 삶은 다 만만치 않습니다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 얼마 전 둘째를 낳았다.

이 동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결혼 10년차에 이르기까지 자유부인으로 산 히피족이었다. 이해심과 관대함이 거의 예수님급인 좋은 남편을 만나서 즐기고 싶은 거 즐기면서 자유롭게 사는 게 당연한 보기 드문 유부녀였다. 

그래서인지 아이에 대한 관심이 없었는데 3년 전에 덜컥 임신을 했다. 계획에 없던 임신이었기에 적잖이 당황하더니 웬걸, 연달아 둘째까지 낳았다.

그런데 이 개방적인 히피족 주부가 둘째를 낳고 나서 변했다. 자유분방하고 거침없고 세상 걱정 없던 친구였는데 어느 날 만났더니 미래에 대한 염려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결국은 돈 걱정이었다. 외벌이로는 아이들 키우기 어렵다,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둘째가 2살 되면 나도 일하러 나가야겠다, 그런데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걱정이 꼬리잡기를 하고 있었다. 

그 전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기에 좀 당황스러웠지만, 갑작스럽게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것에 적응이 안 된 상태에서 앞날이 창창한 어린 것들을 보며 두렵고 걱정될 수 있겠다 싶어 위로해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1절까지만 하면 괜찮았을 텐데, 언니는 혼자라서 부양가족이 없으니 걱정이 없겠다는 거 아닌가.

“미래에 대해 염려가 되는 건 싱글이든 기혼이든 다 마찬가지지.” 

“그래도 누군가를 부양해야 하는 부담은 없잖아. 내 한 몸만 챙기면 되니까.”

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득해지기도 했고, 이런 이야기를 서로를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관계에서 나눠야 한다는 게 슬프기도 했다.

난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싫어하고, 절대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기혼이든 비혼이든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줘야 하는 동지라고 생각하기에.

그런데 ‘아이 없는 너는 나보다 낫잖아. 혼자가  편하잖아.’

나보다. 더..

이런 비교급이 붙는 순간 동지애는 깨진다. 

그렇게 될 경우, 한쪽에게 불공평한 무게가 더 실릴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육아휴직이 당연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육아휴직을 가려면 눈치가 보인다고 한다. 다녀와서도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어려워지고. 그런 때 그런 기혼 여성들을 가장 많이 이해하고 배려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은 결국 여성 아닐까(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내 경우에는 임신하거나 아이가 있는 여성 동료들이 해야 할 몫을 대신 하거나, 다른 팀원들과 나눠서 한 적이 꽤 있다.

또 우리나라에서 현재 부양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받는 혜택은 1인가구가 받는 혜택보다 훨씬 많다. 내가 싱글이어서 더 세금을 내는 것이 조금 아깝기는 해도 아이를 양육하는 여성들이나 가족이 받는 혜택에 대해 불공평하다거나 불평의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다.

부양가족이 없는 대신, 나를 비롯해서 주변의 비혼 남녀들을 보면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좀 더 넉넉하게 지원하는 경우도 꽤 많다. 또 비혼이라는 이유로 연로하신 부모님과 함께 사는 사람도 많이 봤다.  

비혼이라고 해서 마냥 편하고 부담 없이 사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기혼들이 자녀들이 주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대신 그만한 짐을 지듯,

비혼들 역시 자유로운 대신 그만한 짐을 지고 산다. 

그런데 그 동생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 순간, 뭔지 모를 허무함이 느껴졌다.

양육할 아이가 없기 때문에 미래가 더 안정적이고 부담이 덜 될 거라는 전제는 얼마나 일방적이고 편협적인 사고인가.

‘난 독거노인이 돼서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항상 있어.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만 하고 싶어. 

부양해야 할 자식이 부담되기도 하지만, 그 자식이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잖아.’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다녔지만, 그 친구의 얼굴을 보니 먹혀들 것 같지 않아서 다음으로 미뤘다. 

난 누구의 삶이 더 낫고 보장되고 편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에게 삶은 고되고 아프고 두렵고 무겁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생, 가지 않은 길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의견은 소수에 속한다. 여성을 위한 담론도 지극히 제한적이다. 그나마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여성들을 위한 담론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제도로 연결되기도 한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그런데 싱글 여성은 여성 군에서도 소수다. 그나마 어렵게 구축된 여성 담론 중에서 아직까지는 아이를 양육하는 여성들에 국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특히 나이든)싱글 여성은 ‘소수자’인 셈이다.

나는 아이가 있는 친구들의 양육 걱정과 그들의 노고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응원하고, 

나를 허무하게 한 친한 동생이 갑작스러운 두 번의 출산으로 심리적으로 걱정이 많은 상황이라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기혼보다 편하고 부담 없을 것이라고 취급된 싱글 여성에 대한 편견을 한 번쯤은 정색하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누가 더 힘들고, 어느 쪽이 더 손해고 더 낫고... 이런 비교는 무의미하고, 이제는 각자 고난과 아픔 속에서 애쓰면서 살아가는 생을 이해해야 할 때인 것 같아서이다. 

서로의 입장을 완전하게 다 이해할 순 없어도 ‘그도 나만큼 힘들고 불안하고 걱정 많은 존재이고 삶’임을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 

그게 더불어 살면서 건설적인 힘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