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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비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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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연재 Dec 31. 2018

나이들어도 연애는 왜 이리
​어려울까

실연이 남긴 것들

"50까지 우리 둘 다 결혼 못하면 너랑 나랑 같이 살자."

삼십대 후반에 친한 고교 동창 친구와 우스갯소리로 한 말인데 우리에게 그 신화 같던 나이, 50이 닥쳐왔다. 이러다가 우리 강제 동거하게 생겼다고 하던 차에 친구에게 애인이 생겼다. 

지난해 가을, 연애를 시작한 친구의 얼굴은 3월의 봄처럼 화사하고 생기가 돌았다. 그간 행복하게 잘 지낸다는 소식을 직간접적으로 듣다가 간만에 "아직도 햄 볶고 있냐?"며 좀 놀려줄까 싶어서 지난주에 전화를 했다. 

"나 그 남자랑 헤어졌어."

가슴이 철렁했다. 분명 2주 전까지 잘 만나고 있다는 소식을 건너서 들었는데, 그 사이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만나러 나갔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사소한 오해가 쌓였고, 그것을 제때 풀지 못한 탓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다투거나 헤어지는 이유는 젊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여전히 유치하고 성실하게 이기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녀의 연애사야 제3자들은 속속들이 다 알 수 없는 법. 둘만의 미묘하고 내밀한 것들이 씨줄날줄처럼 엮여 있을 테니.. 힘들어 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나의 마지막 연애의 기억이 생각났다. 

이제 사랑은 나에게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마흔을 넘기면서는 소개팅을 나가도 시큰둥했다. 상대방이나 나나 서로 흥미를 못 느낀 채 건조한 시간을 보내다 집에 들어올 때면 자괴감이 느껴지곤 했다. 그냥 아예 결혼에 대한 마음을 접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러던 차에 별 기대 없이 나간 소개팅에서 그를 만났다. 처음부터 이야기가 잘 통했고, 전에 없이 너무 편안해서 관계가 순탄하게 진전되었다. "내게도 사랑이~"하며 땅에서 발이 몇 센티미터 떨어진 채로 지냈던 것 같다.

조심스럽게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던 차에, 우리 관계에도 위기가 왔다. 생각지도 못한 데서 사소한 오해들이 생긴 것이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나이도 어느 정도 들었으니 젊었을 때보다는 훨씬 너그럽고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상대를 이해하기보다는 내 감정이 더 앞서고, 상대의 입장보다는 내 자존심이 우선되었다. 수양이 덜 된 미숙함은 여전했다. 

결국 사소한 오해를 풀지 못한 채 쌓여서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큰 일이 되어 버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어이없게 헤어졌다. 그때 내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이별의 방식이었다. 남자는 오해와 서운한 감정을 풀고자 하는 노력 없이 잠수를 타버렸다. 보통, 남자는 동굴 속에 들어가는 속성을 가졌다고 하니 거기까지는 이해했다. 

문제는 내가 39.5도까지 갑자기 열이 올라서 응급실에 가게 되었을 때였다. 열이 너무 올라서 몸이 사정없이 떨리는 와중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어서 나는 그 남자에게 SOS를 쳤다. 그러나 묵묵부답. 결국 나는 혼자 응급 조치를 받으며 마음을 정리했다. 침묵과 묵묵부답도 분명 대답의 하나니까. 하지만 응급실로 와달라는 애인의 연락을 씹은 남자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친구에게 일러바쳤다. 

"혹시 그 남자 죽은 거 아니니?"

친구의 말에 빵 터졌다. 허긴 그렇지 않고서야 원수진 것도 아닌데 그 정도로 매정할 수가 있을까 싶었다. 아무튼 응급실에 다녀온 다음날, 난 계속 잠수 중인 그 남자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당신이 보인 태도를 이별로 받아들이겠다고. 그동안의 시간에 감사하다고.

그리고 몇 시간 뒤에 남자에게서 이메일로 이별 통보를 받았다. 잠수타기와 이메일 이별 통보. 최악의 이별 통보였다. "오냐, 끝이다!"하며 깔끔하게 종이 접듯 마음이 접어지면 좋았으련만 짜증나게 난 실연당한 여자의 전형적인 전철을 그대로 밟고 말았다. 찌질하게 마음이 아팠고,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졌으며, 무엇보다 그가 보고 싶었다. 그럴수록 원망도 더했다.  

'내가 너무했나?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이별 통보를 하는 건 너무 한 거잖아. 그동안 좋아하며 함께 보낸 시간이 있는데.'


'좀 더 다가가서 이야기를 들어줘야 했나? 아니야. 무슨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런 식으로 잠수타고 도망갈 텐데 그걸 매번 어떻게 겪어? 지금 마무리되길 천만 다행이야.'


'그래도 내가 마음을 준 사람인데 한번 잡았어야 했나? 아니야. 내가 도움을 요청할 때 이렇게 모른 체 한다면 앞으로 다른 어려움이 생겨도 그럴 텐데, 그건 내가 감당 못 하겠다.'


생각들이 계속 치열하게 줄다리기를 했다. 결국 그러다 그가 오해했던 부분들과 내 솔직한 감정을 문자로 보냈다. 무엇보다 오해는 풀고 싶었다. 어떻게 헤어지느냐도 중요하니까, 다음에 우리가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같은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라고 그럴싸한 이유는 갖다 붙였지만 사실은 그가 나를 붙잡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결론은 또 묵묵부답. 젠장, 그나마 남아 있던 알량한 이미지와 자존심이 일타쌍피로 완전히 구겨졌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이불킥을 하게 된다. 미쳤지 미쳤어.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난 다르게 반응할 수 있을까. 친구의 실연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나한테 물어보았다. 잘 모르겠다. 다만 그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지금에서야 보이는 것들은 있다. 생각해 보면 내가 그와의 관계에서 두려워한 것이 있었던 것처럼 그도 나와의 관계를 지속하는 데 어떤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도망을 간 것이고. 우리 두 사람 모두 각자의 두려움을 넘어서기엔 미숙했고, 그 어려움을 감당할 만큼은 사랑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런 수고와 위험을 감수하기에는 너무 계산적이었는지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지막에 패를 다 까고 와장창 구겨지긴 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한 것 같아 후회는 남지 않는다는 것. 다만 혹시 다음에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때보다는 자라있기를 바랄 뿐이다.  

어쩐지 싱숭생숭해져서 그때의 내 연애 이야기를 알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사랑을 시작하는 것도, 사랑을 지키는 것도, 사랑을 끝맺는 것도 참 어렵다고 말하자, 친구는 한숨 고르더니 조금 다른 답을 보내왔다.   


"그렇지. 근데... 좀 부럽다. 실연의 달콤한 아픔이."


결혼생활 23년차인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뭐하냐고 했더니 자기는 베란다에서 글을 쓰고 있단다. 


"남편은?"
"저 인간은 사각 빤스 입고 책 읽고 있음. 꼴 보기 싫음. 말 안 시키니 다행. ㅎㅎㅎ"


친구는 실연을 말하는 내가 부럽다 하고, 나는 사각 팬티 입고 책 읽는 남편, 베란다에서 글 쓰는 아내가 있는 그 풍경이 부러웠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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