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공항, 터미널에서 발견하는 중요한 의미들
1. 떠나는 열차 안.. 열차가 출발할 때까지 멍 때리며 창문 밖을 보고 있는데 아까부터 백발 할머니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누군가를 배웅하는 모양이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안 가고 열차 안을 연신 보시는 게 신경쓰여서 할머니가 바라보는 쪽을 목 운동하는 척하면서 슬쩍 쳐다봤다. 플랫폼 반대쪽에 앉은 한 중년 여성이 할머니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엄마와 딸인지, 아님 뭔가 사연을 갖고 있는 관계인지 알 수 없지만 남다른 애틋함이 느껴지는 사이였다. 열차가 덜컹하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백발 할머니가 좀 쭈뼛하더니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신다. 첨엔 뭐하시나 했는데 가만 보니 하트를 만드신 거더라. 자세히 봐야 하트인 줄 알 수 있는, 수줍고 서툰 하트였다. 또 모른 척 하며 중년 여성 쪽을 보니, 목을 있는 힘껏 다 빼서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있더라. 당신 마음 다 안다는 듯이..
요즘은 대책 없이 자꾸 아무거나에 울컥한다. 어쩌자고 저 하트는 저리 처연하고 따뜻하고 예쁜 것이냐...
훔쳐본 사람 감당 안 되게...
2. 결혼한 이후, 바로 득남하고 회사 일까지 바빠진 아들은, 없는 시간을 쪼개서 치료차 떠나는 엄마를 집에서 서울역까지 바래다주었다. 열차출발 시간 8분전쯤, 플랫폼에 도착, 엄마는 그제야 아들 차에 목 베개를 놓고 내린 걸 깨달았다. 아들은 다시 가져올까 했지만, 엄마는 별 거 아니고, 가지러 갈 시간도 안 되니 다음에 올 때 가져가겠다고 하고 열차에 올라탔다. 그러고 열차가 출발하길 기다리고 있는데, 출발 직전, 아들이 벌개진 얼굴로 헉헉거리며 엄마 앞에 다시 나타났다. 엄마가 자기 차에 놓고 내린 목 베개를 들고서... 그 먼 주차장에서 플랫폼까지. 게다가 젤 마지막 칸까지 전력으로 달려온 거다. 엄마는 아들이 흠뻑 젖은채로 베개를 들고 자기 앞에 선 장면을 잊을 수 없을 거 같다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몹시 나쁘고 모진 병이 찾아와서 치료 겸 요양차, 친구가 운영하는 부산의 재활병원에 머물고 계신, 내가 몹시 애정하는 선생님이자 친구(라고 부르고 싶은 이)의 이야기다.
3. 얼마 전 끝난, 드라마 <애인있어요>에서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고 난 김현주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난 앞으로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만 생각하면서 살 거야.” 그 대사에 그야말로 은혜를 받았더랬다. 가져갈 수 있는 게 별 거일까. 수줍은 하트에 담긴 마음이 진동하던 순간, 나를 위해 누군가 전심으로 달려와 준, 내가 누군가를 위해 전력질주한 장면, 같은 거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의 진리.. 플랫폼과 터미널, 공항은 늘 생각지 못한 삶의 중요한 부분을 발견케 해준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