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싱글녀의 삶은 무겁다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선고를 들은 날,
불과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나에게 그런 일이 닥칠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출근했고, 녹음을 했고, 다음 주 일정을 짰다.
그런데 회의를 마치고 나서 PD에게서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다.
자기가 함께 일하고 싶은 작가가 있다는 거였다. 그 말인즉슨, 나는 아웃이라는 뜻.
순간 멍했다.
그래도 이 직업의 특성상,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조용히 물러나야 한다.
해고 선고를 듣고, 집으로 오는 길..
지난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지난 개편 때 새로운 프로그램을 단독으로 맡아서 땅개처럼 박박 기었던 시간들이...
마흔다섯.. 쌩쌩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그저 노오오오력으로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나를 하얗게 불태우며 이제 좀 적응했다 싶은 그 순간에 잘린 그 황당함이란!!!!
마흔여섯 살 백수 싱글녀라..
망망대해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또 기습 폭탄을 맞은 기분이기도 했다.
‘열심히 하면 잘 돼야 한다’는 룰이 실제 삶 속에서는 종종 삑사리를 낸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당할 때마다 당황스럽고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친구들도 선배들도 말은 안 하지만 얼굴에는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너 이제 어떡하니?’
서른만 넘어도 퇴물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마흔 다섯을 넘긴 여자를 환영해 주는 곳은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카페를 하거나 치킨가게를 열 돈도, 능력도 없고...
무엇보다 마음을 힘들 게 한 건,
결혼도, 연애도, 일도, 모두 실패한 인생 같다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하기엔 46이라는 나이가 어찌나 무겁던지...
‘어쩌자고! 언제! 나이를 이렇게 먹은 거니?’
하지만 이미 먹은 나이를 뺄 수도 없고, 다시 일어나는 것 외에 뭐 뾰족한 수도 없었다.
일단 자꾸 ‘내 탓이오~’를 외치며 아프게 찌르는 생각의 칼날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그러면서 자꾸 움츠러드는 이유를 발견했는데,
난 남들은 관심도 가지지 않는 내 모습과 처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적어도 40이 넘은 싱글녀라면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정도까지는 언감생심이라도, 그 언저리는 가야 하는 것 아닌가? 뭐 그런 그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어느새 망가진 몸매, 정신차려보니 늘어진 피부, 넓어진 모공, 염색 안 하면 머리를 귀 뒤로 넘길 수 없을 만큼 많아진 흰머리, 게다가 백수라니!
갑자기 루저가 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떤 누구도 내 삶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판단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 스스로 그것을 허용하고 있었다.
내가 살려면, 그것부터 바꿔야 되겠다 싶었다.
그 뒤로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기 시작했다.
“놀아도 괜찮아. 백수여도 괜찮아.”
“잘린 건 내가 못해서라기보다는 그 사람과 인연이 아니었던 것뿐이야.
그 사람과 일했더라면, 잘린 아픔보다 더한 고통을 겪었을 수도 있잖아.
이쯤에서 내 운명이 잠시 쉬고 다음 라운드를 준비하라고 종을 쳐준 거야.”
이게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꽤 효과가 있다.
스스로한테 더 이상 채찍질하지 않고, 탓하지 않고 괜찮다고 말해주라는 말.
남한테는 잘도 말하면서 정작 나 자신한테는 못하고 있더라.
밑바닥으로 추락했다면,
섣불리 오르려고 하기보다 먼저 부러진 날개를 보살펴 줘야 한다.
그래야 툭툭 털고 다시 날 수 있으니까.
누구나에게 삶은 무겁지만 46살 싱글녀의 삶도 만만찮게 무겁다.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는 “괜찮다”고 말해주어야만 한다.
그걸 이제야 배우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안 괜찮은 이유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