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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영 May 15. 2021

<미디어를 읽는 눈> 우리는 왜 읽어야 할까?

Media Reader 미리샘의 미디어 리터러시 1교시

미리(Media Reader)샘의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 첫 시간입니다!!

우리는 왜 읽어야 할까!!




 우리는 계속 무언가를 읽으며 살아간다. 다른 사람의 표정,  생각, 놓인 상황, 분위기, 흐름까지. 시대가 변하고 읽을거리는 더욱 풍성해졌다. 풍성하다 못해 차고 넘친다. 이는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또한 읽지 않는 이이기도 하.     


‘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

팝니다: 아기신발, 사용한 적 없음     


위의 여섯 단어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단어 나열을 보고 꼭 무슨 생각이 들어야 해?'하고 되물을 수도 있다. 물론 아무 생각 들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누군가는 중고거래 사이트를 떠올리며, 거래가 성사되기엔 정보가 너무 부족하단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요즘  트렌드에 딱 맞는 맥락의 생각이다.      

 

이것은 헤밍웨이가 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여섯 단어 단편소설이다.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란 작품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일이다. 잘 나가는 사람들한테 으레 쏟아지는 부러움과 찬사의 이면에는 질투와 시기가 있게 마련이듯 헤밍웨이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어느 날 헤밍웨이는 동료 작가들과 작은 바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 한 친구가 헤밍웨이에게 투어린 말투야기를 꺼냈다.

“자네가 이 자리에서 당장 6개의 단어로 사람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을 쓴다면 자네의 명성을 내 흔쾌히 인정하겠네.”      

친구의  짖굳은 도발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헤밍웨이는 냅킨을 펼쳐서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이라고 적었다. 동료들은 냅킨에 쓰인 여섯  단어를 보고, 기꺼이 박수를 보냈다. 그들은 무엇을 읽어냈던 것일까.  


어떤 사람은  한번도 겨보지 못 아기 신발을 야 했던 주인공의 가슴 아픈 사연에 깊이 이입던 것이 아닐까. 불임, 유산, 죽음 등 상실의 쓰라린 고통을 함께 느끼거나, 반대로 그런 경험이 없는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며 남몰래 안도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아기가 너무 건강하게 쑥쑥 자라 아기 신발을 신보지도 못하고 파는나 싶어 엷은 미소를 지을 수도 있다.


 단어를 하나의 독자적인 뜻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들의 연결고리를 찾아내 어떤 맥락을 읽어낸다는 것은 ‘무엇을 읽는다.’는 행위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헤밍웨이의 여섯 단어  다양한 감정의 이미지를 떠올려 볼 수 있다는 측면에 군가에게는 소설로써 충분한 치가  지만, 아무 의미를 찾아낼 수 없다면 그저 무의미한 단어 나열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읽어야 한다.

  ‘제대로 읽는다’ 것은 그 안에 담긴 여려 겹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나의 생각뿐 아니라 타인의 생각, 느낌까지 깊이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읽을거리들이 더 많아지면서 한 순간도 지루할 틈 없이 움직이는 뇌!

우리는 하루 종일 수많은 정보를 손에 들고 다니며 수시로 스마트기기에 눈길을 보낸다. 읽을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해진 것이다. 이제 틈만 나면, 거의 반자동로 폰을 꺼내 무언가 읽고 있 자신을 발견게 된다. 심지어는 화장실 갈때도 폰은 절대 포기 못한다. 볼 일을 볼 때조차 폰을 들고 가지 않으면 뭔가 허하고 지루하게 느껴다.


쉬지 않고 무언가를 읽고 있는 우리들은 정말 잘 읽고 있는 것일까.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실질 문맹률’이 가입국가들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성인 5명 중 1명꼴로 ‘실질적 문맹’ 상태란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실질적 문맹은 글자를 읽을 수 있지만 글을 읽을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헤밍웨이의 여섯 단어 소설이 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글자를 읽고는 있지만  글이 주는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나는  어느 쪽? 4명, 아니면 1명!


디지털 미디어 전에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일방적으로 보내진 정보를 수용할 수밖에 없 수동적인 시스템이었다. 방송 언론 전해주는 정보가 전부였던 시대!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1980년 5월 18일 전후, 광주에서  일어난 민중 항

이제  우리 모두 기억하는 뼈아픈 역사이지만,  한 도시 일어났던 이 참상은 철저히 고립된 채 묻혀버릴 뻔 했다.  


5·18 민주화 운동은 당시 수동적 시스템이었던 미디어와 철저한 언론 통제로 인해 실상이 왜곡돼 전해 수밖에 없었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살육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없었던 사람들. 그 사이를 연결해주던 미디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상황에 벌어진 너무나 가슴 아픈 역사이다.      


지금처럼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디지털 미디어 시대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디어의 발달로 각종 포털이나,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을 통해 우리는 언제나 실시간 소통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전달받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언제든지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생산과 소비를 함께 할 수 있는 생비자란 말이 생겨이유다. 개개인이 모두 하나의 채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리적 통로를 막아 국민들의 귀와 입을 막아버렸던 광주 민주화 운동 같은 일은  이제 일어날 수도, 일어나서도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누구나가 다 정보를 생산, 재생산해 내고, 언제 어디서든 공유가 가능하다 보니 정보의 확산 속도뿐 아니라 그 양도 어마어마하다. 정보의 홍수, 정보의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칠 수 있다는 것은 쩌면 잘 차려진 뷔페에 간 것처럼 설레는 일이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인해 풍성해진 정보가 꼭  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뷔페는 한 곳에서 한식, 일식, 양식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을 수 있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다.

뷔페에 가서 음식을 먹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 정 코스대로 샐러드부터 시작해서 후식까지 순서를 정해 먹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것만 골라먹는 사람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음식부터 먹는 사람까지. 어떻게 먹든 먹고 나면 한 결 같이  배가 몹시 부르다. 그런데 중식, 일식, 이탈리아식, 프랑스식, 베트남식, 인도식 정체성이 뚜렷한 음식점에 갔을 때와는 달리 배는 부른데,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배만 부르면 됐지 굳이 뭘 먹었는지 기억해야 하냐고 반박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배만 부르면 되는  @@이  아니니까.


 뷔페 음식처럼 다양하고 풍성한 정보 충만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관심 있는 정보만 골라 볼 수도 있고, 새로운 정보를 쉽게 찾아 읽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런데 역시 과유불급인걸까.너무 많은 정보 속에 우리는 종종 우왕좌왕 길을 잃 헤맨다.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할지 몰라 이것저것 담다가 한 접시 안에 다 뒤섞여버린 음식처럼, 뭘 봤는지 기억이 안 나거나 때론 잘못된 정보도 의심 없이 보아 넘기게 다.     


뷔페의 맛있는 음식들 앞에서 흥분해 이것저것 마구 먹다가 탈이 난 적이 있다.

정보가 다양하다는 것, 읽을거리가 풍성하다는 것은 꽤나 흥미롭고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똥인지 된장인지는 정도는 구분해 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코베어 가는 세상에서 눈뜬 장님으로 살아가지 않기 위해선 말이다.

우리가 제대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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