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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영 May 30. 2021

<미디어를 읽는 눈> 무엇을 읽어야 할까?

Midia Reader미리샘의 미디어 리터러시 2교시_없는 능력 찾기

“인류는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미국의 인지신경 학자인 메리언 울프가 그녀의 첫 책 <책 읽는 뇌>에서 한 말이다. 애초에 인간이 태생적으로 읽기 능력이 없었다니, 읽고 쓰는 것이 왜 그 어렵게 느껴졌었는지 알 것 같다.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은 능력을 노력에 의해 얻는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타고난 끼가 없는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연예인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것만큼이나 말이다.

없던 끼를 손톱만큼이라도 찾아내려면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탑재되지 않은 읽기 회로를 작동시키려면 후천적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겠는가. 우리는 그 어렵다는 것을 당연한 듯 해냈다. 적당한 나이에 적절한 교육을 통해 읽고, 심지어는 쓸 줄 알게 되었다.


  종종 푸념처럼 “배움에도 때가 있다.”는 말을 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평생을 통해 가장 폭발적으로 배움이 증폭하는 시기!  이때 아이들의 흡입력과 분출력은 정말 대단하다. 때로 아이들의 텐션을 따라 하다 반나절도 안되서  방전돼 버렸던 기억이 난다. 확실히 나이가 드니  무엇을 하든 저장과 출력이 더뎌지는 것을 자주 느낀다. 이래서  배움에도 때가 있다는 말이 나온 것이겠지. 하지만 좌절할 필요 없다. 인간의 뇌는 쓰는 만큼 길이 든다. 나이 상관없이 얼마나 많은 자극을 주고받는지가 중요하다.

  울프는 시기적으로 습득 속도와 양에 차이 있지만, 인간의 뇌경험 학습 통해 기능적으로 변화하고 재조직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길을 예로 들어보면,

아무도 다니지 않는 미로 같은 숲에서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풀숲을 헤치고 처음 그 길을 간 사람의 흔적을 만나다면 처음보다는 훨씬 덜 막막할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 지나간 그곳을 내가 또 지나감으로 흔적은 좀 더 뚜렷해질 테고, 그곳에 길이 생기게 된다. 한 사람, 두 사람 길을 내고 그 길로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면 오솔길이 되고, 누군가는 더 빠른 지름길 발견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 오솔길과 지름길엔 어느새 차가 쌩쌩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가 뚫릴 수도 있다. 

 원래 없던 읽기 능력도 이와 마찬가지. 자꾸 자극을 주면 뇌의 각 영역 신경세포(뉴런)들 사이에 고속도로가  뚫리게 되고 그 길로 정보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며  통합이 빨라지게 되는 것이다.이 뇌신경의 마이엘린화라 한다.자신의 뇌에 얼마나 많은 자극을 주느냐가 관건이다. 인간에게 선천적 읽기 능력이 주워지진 않았다지만, 대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기를 배우고 읽은 것을 기반으로 생각하는 것은 좀 더 고차원적인 사고를 키우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 뇌에 길을 내야한다는  얘기다. 류에게 태생적으로 주워지지 않은 능력을 노력에 의해 잘할수 있게 된다면 고속도로를 시원스레 달리는 것처럼,  꽤나 즐거운 일이 될 수 .


  그렇다면 뭐부터  읽어야 ?      

디지털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읽어야 할 것들은 비단 책뿐만이 아니다. 생산자가 소비자가 되고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는 시대, 누구나 개방적인 플랫폼에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옮기고, 다시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책을 비롯한 모든 미디어를 읽어야 한다.


우선 미디어가 무엇인지 알아자.

강의를 하다 보면 다양한 연령의 학습자들을 만나게 된다. 연령 상관없이 미디어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되돌아오는 반응은 거의 대부분 우물쭈물, 웅성웅성! 너무 많이 들어서 익숙하지만 뚜렷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미디어’.

미디어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작용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것 또는 정보는 전달하는 매개체라고 한다.


  최수앙 작가의 <화자>, <청자>라는 작품이 떠오른다. 손짓과 몸짓으로 상대방에게 열심히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화자와 먼발치에 앉아 화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청자의 모습이 하나의 세트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은 분명 마주하고 있는 듯 하지만 물리적인 거리만큼이나 심적인 거리도 꽤나 멀게 느껴진다. 말하는 사람의 입과 손만 또렷이 보이고, 듣는 사람은 귀만 도드라져 보인다. 소통을 위해 최소한의 장치는 열려있지만 소통하고 있지 않은 화자와 청자의 모습에서 미디어의 뜻을 되새겨보게 된다.

  어떤 작용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되기 위해 필요한 매개물! 전하고자 하는 사람과 듣고자 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통할 수 있도록 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 바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미디어인 것이다.


먼먼 원시시대에 우리가 다른 이와 소통 하기 위해 쓸 수 있는 미디어는 손짓, 몸짓, 소리, 눈빛이 전부였다. 온전히 가지고 있는 신체가 미디어였던 것이다.

인류는 생각다.

그리고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는 사람들과의 제한적 소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동굴 벽이나 암벽에 그렸다.


“이곳에 매머드가 나타나니 조심하세요.”

“이 강에 이런 어종이 살고 있으니 참고하세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의 미디어를 활용했던 것이다.     


 인쇄기술이 발달하면서 책과 신문을 통해서 우리는 수백 년 전 사람들의 삶과 사상을 알 수 있게 되었고, 음성 매체의 발달로 라디오를 통해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도 순식간에 정보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필요와 요구에 따라 계속된다.

귀로만 듣던 정보에 답답을 느끼던 사람들에게 영상매체의 발달은 눈과 귀를 만족시켜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흑백 TV를 컬러 TV로 바꿔 보던 첫날이 떠오른다. 브라운관으로 보여지던 컬러의 생생함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응답하라 시리즈   “응답하라, 1994!” 에서  피 웃으면 봤던 장면이 하나 떠오른다.

삐삐가 유행이던  시절 발신 전용 이동통신 시티폰이 나왔을 때 다들 삐삐와 세트로 시티폰이 대박이 날 줄 알았다. 성동일 아빠도 친구의 권유로 어마어마한 돈을 시티폰에 투자했지만 결과는 폭망!! 공중전화 근처에서만 걸 수 있는 시티폰은 통화품질도 좋지 않고 여러 단점들 때문에 2년이 채 되지 않아 사라져 버렸다. 그런 기억이 있던 성동일 아빠에게 친구는 다시 애플에 투자할 것을 권했지만 아빠는 딱 잘라 거절하고 자신의 결정에 흐뭇해한다.     


“무슨 회사 이름이 바나나인지, 사과인지 과일 이름이대. 마크도 사과 먹다만 거더만, 에잇 썩은 내 나.... 올해부터 MP3도 맹글고, 핸드폰도 맹글고..무슨 컴퓨터 맹그는 회사에서 그런 잡스런 것을 맹근대..”     


흡!아부지.

선견지명이 아쉽다.

정말 그런 세상이 올까 했던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한 동안 스마트 미디어 중독을 우려하는 캠페인과 공익광고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을 겪어내면서 디지털 미디어는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잠시 디지털 세상에서 벗어나 쉼을 권하던 사회는 이제 디지털 미디어 속 세상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내보인다. 밖에 나가 어울리지 말고 집에서 랜선 소통을 하라고  권하 것이다. 재택이 일상이 되고, 화상 수업이 점점 편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우리는 또 어떤 미디어를 접하고 어떤 방법으로 소통하게 될까!


디지털 미디어 속 세상, 손 안의 작은 세상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 누군가는 앞서 볼 것이고 누군가는 허우적거릴지도 모른다.

매개물만 발달하고, 그 안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문맹이 되지 않기 위해선 제대로 읽고 바로 알아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제대로 알려면 제대로 읽어야 한다.

무엇을?

미디어를,

그리고 미디어 속 세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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