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소영 Jan 26. 2019

<청소년 소설>눈 먼 파수꾼

5

무진이의 일기


xxxx년 x월 x일 x요일          

 좀체 틀어져 있는 일이 없던 거실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조금 이상하단 생각을 하며 집안의 분위기를 살피며 천천히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 거실에 잘 나와 있지 않던 엄마가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엄마의 모습이 반가워 옆에 앉으며 말을 걸었다. 무슨 드라마를 보고 계신지 물어보았지만 엄마는 그냥 화면 너머를 응시하고 있을 뿐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식당에서 손님들이 말없이 음식을 먹는 모습이 지나가고 곧 화면이 바뀌고 손님들이 나간 식당 안에서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주방을 들여다보고 소리소리 지르며 악다구니를 하는 모습과 그 말에 화를 내며 맞대거리를 하는 주방장의 모습이 나왔다. 싸움 내용을 들어보니 두 사람은 부부인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음식 양이 많다느니 재료 좀 아끼라느니, 아저씨는 주방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잔소리 좀 그만 하라느니, 여편네가 남편 알기를 개똥으로 안다느니 하면서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별 내용 아닌 걸로 핏대를 세우며 싸우고 있는 그 장면이 어찌나 정겨운지 나도 모르게 울컥 눈시울이 불어져서 슬며시 일어나 방으로 들어왔다. 저렇게 아무 말이라도 하면서 싸우고 나면 미운 정이라도 싸일 것 같은데 저렇게 싸우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운 걸까?

 기억도 가물가물 하지만 전에는 엄마와 아빠도 가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싸우기도 했던 것 같다. 그때마다 엄마는 조용조용 얘기를 하는 편이었고 아빠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며 언성을 높였다.

“ 그래, 당신만 우아하고 교양 있지. 제발 애처럼 가르치려 들지 말라고. 내가 당신 학생이야?”

“우아 떨면서 말하지 마. 아주 진저리 나니까. 당신 혼자 교양 넘치게 살아봐. 난 무식해서 이렇게 밖에 말 못 해.”

 “그만하자. 난 더 할 말없어. 당신이 건들지만 않으면 난 화낼 일도 없는 사람이야 이거 왜 이래. 당신 혼자 교양 있게 살면 됐지 가만있는 사람을 건들긴 왜 건드려.”

엄마가 한 마디 하면 아빠는 질세라 더 크고, 더 세고, 더 강하게 하지만 목소리는 차분하고 낮게 빈정거렸다. 사람 약을 바짝 올리는 것 같은 아빠의 말투가 너무 싫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빠도 더 이상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외관상으론 잠정적 평화협정이 이루어진 듯했지만 그 무렵 다른 양상의 싸움이 우리 가족을 병들게 하고 있었다. 우리 집은 서로에 대한 앙금과 상처가 무성한 DMZ가 돼버렸다.

아빠는 엄마랑 말이 통하지 않아서, 엄마랑 싸우기 싫어서, 아빠는 싸움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라서, 말 대신 문자로 할 말을 대신 했다. 누군가를 설레게도 하고 누군가에겐 중요한 소식을 전해주는 고마운 전달 수단인 핸드폰 메시지가 엄마에게는 숨통을 조이는 테러와 같았다.

‘문자테러!’

 끝없이 울리는 아빠의 문자에 기가 질린 엄마는 처음엔 차라리 말로 하라고 화도 내고 소리도 질러보았지만, 지금은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내내 울기만 하셨다. 이젠 그나마 울지도 않으신다. 문자 알람 꺼 놓고 확인하지 말라고 하고 핸드폰을 뺏어도 봤다. 하지만 엄마는 그럴수록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아빠의 문자 굴레에 갇혀 피폐하게 사그라들고 있었다. 엄마의 핸드폰 속에 살고 있는 아빠란 사람은 그렇게 엄마의 웃음을 빼앗고, 엄마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었다.

가끔 집에서 다른 사람과 통화하는 아빠의 목소리는 활기차고 재치 넘치고 유머러스했다. 저렇게 말을 재미있게 잘할 수 있는 사람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남들에게는 저렇게 쉬운 게 왜 그렇게 가족에게는 어려운 건지 물어보고 싶었다.

“아빠, 가족과의 대화는 폰으로만 하는 게 아니에요. 핸드폰이 없는 옛날 같았으면 하실 말씀을 서신으로 전하실 건가요? 아빠의 문자가 정약용의 하피첩이라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빠가 저렇게 된 게 아빠 말대로 정말 엄마의 교양 있는 태도 탓 일가? 엄마가 정말 아빠를 애라고 생각하고 가르치려 들었기 때문일까? 아빠도 안쓰럽고 엄마도 안쓰럽다.     


xxxx년 x월 x일 x요일   

 엄마가 아무것도 드시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다. 학교 가기 전 마신 우유 잔 하나만 덩그러니 싱크대 안에 놓여 있었다. 저렇게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면 또 쓰러지실 텐데....

아빠는 어제저녁에 나가셔서 아직도 안 들어오신 모양이다. 온 집안에 퍼진 슬픔의 기운이 현관문을 열자마자 한기처럼 나를 뒤덮었다. 엄마의 방문을 열었다. 계셔야 할 침대 위에 엄마가 없었다. 화장실에도 주방에도 다른 방에도 엄마는 안 계셨다. 무슨 일인지 갑자기 겁이 덜컥 나서 엄마에게 서둘러 전화를 해보았다. 한참 신호음이 울리다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너무나 차분한 엄마의 말에 갑자기 호들갑스럽게 두 방망이질 치던 마음이 머쓱해 정작 궁금한 질문은 하지 못하고 배가 고프다고 했다. 엄마 목소리가 조용한 걸 보니 근처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셨었나 보다. 엄마는 잠시 아무 말씀이 없으시더니 곧 들어가겠다고 했다.

‘멍청한 놈, 기껏 배고파가 뭐야 배고파가.’

감정 표현 못하는 것도 아빠를 닮은 걸까. 그렇게 싫은 아빠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 같아 소름이 끼쳤다.

난  애들이 다 쓰는 SNS도 잘하지 않는다.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톡도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할 얘기가 있으면 직접 얼굴 보고 얘기하거나 전화를 하는 편이다. 특별히 문자나 전화를 주고받을 만큼 친분이 있는 친구도 많지는 않지만...

띵!

문자 알림 소리가 울리면 속이 울렁거린다.  


xxxx년 x월 x일 x요일          

 담배를 선물 받았다. 한 개비!

중간고사 둘째 날 독서실 앞 벤치에서 내 또래로 보이는 애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얼핏 보니 5반 권우성였다. 한 번도 같은 반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이름과 얼굴 정도는 아는 사이였다. 우성이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 약간 당황했지만 왠지 아는 척을 하고 싶어서 말을 걸었다. 우성이도 조금 당황하는 눈치였지만 선뜻 담배 한 개비를 내밀었다. 걸린 김에 공범이 되자는 것 같은 우성이의 행동이 조금 웃겼다. 나는 우성이가 준 담배를 받아 들었다. 어른들이 답답할 때 담배를 피우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우성이는 시험을 못 본 것이 답답했나 보다. 수학시험을 망쳤단다.

 담배를 받아 드니 나도 뭔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한 번 피워볼까, 피우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을 하며 담배를 만지작거렸다. 더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우성이가 공부하러 들어간다고 해서 잡을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고개를 돌렸는데 벽에 청소년 금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청소년 흡연, 담배를 피우기보단 꿈을 피울 나이입니다.’

꿈을 피울 나이? 꿈이든 담배든 피울 의지가 생겨야 피우지! 내가 담배를 피우든 꿈을 피우든 누가 관심이나 갖을까?

오는 길에 마트에서 라이터를 하나 샀다. 만반의 준비! 뭘 피워도 피우고 싶을 그 날이 혹시 올지 모르니까!               

xxxx년 x월 x일 x요일  

 관심을 받았다. 아빠의 이런 새삼스런 관심이 놀라웠다. 이게 이런 효력을 발휘할지 몰랐다. 이게 이런 폭발적인 반응이 나올 만한 거였다면 진작 해보는 건데... 암튼 나는 관심을 받았고 싫지 않았다. 그렇게 길게 아빠의 얼굴이 나를 향했던 적이 언제였나,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바라보고 얘기하는 걸 들어 본적이 언제였나 싶었다. 아빠가 왜 내 방에 들어왔는지 어떻게 내 가방을 열어보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빠가 열어본 내 가방에서 담배 한 개비와 라이터가 나왔던 것이다. 아빠는 엄마와 나를 향해 경멸의 시선과 비아냥거리는 말을 내뱉었다. 엄마는 설마 하는 눈으로 나와 담배를 번갈아 보았다. 엄마도 많이 놀라신 모양이었다.

“내가 밤늦도록 죽어라 일해 너 담배 사 피우라고 돈 갖다 주는 줄 알아? 공부 잘하는 놈들이 뒤에서 호박씨 까는 거 진짜 역겨워. 당신처럼 그렇게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자식새끼가 나가서 저러고 다니는 걸 왜 체크 못해? 그렇게 교양 넘치는 사람이 애새끼 저러고 다니는 건 괜찮은가 보지. 왜 아무 말을 못 하시나? 이건 뭐라고 말하는지 좀 들어보자고. 너도 네 엄마 닮아서 나 무시하냐?”

나와 아빠를 외면하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에서 절망감이 느껴졌다.

 엄마에게 죄송하고 마음이 아팠지만, 다 엄마 탓이고 내 탓이라고 하는 아빠의 말들이 듣기 싫었지만, 이렇게 가족이 다 같은 공간에 있는 이 상황이 나는 왜 그렇게도 정겹게 느껴졌을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빠의 목소리와 아빠의 관심이 너무나 좋았다. 좋아서 울었다. 그리고 이런 우리 가족이 불쌍하고 한심해서도 울었다. 내가 피운 게 아니라고 대들고 싶었지만, 그냥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대화 같지 않은 긴 대화가 끝나고 아빠는 밖으로 나가버리셨다. 조금만 더 화를 내달라고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인가 싶어 아빠가 나간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만약, 왜 남의 가방을 맘대로 뒤지느냐, 아빠가 언제부터 나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았느냐, 내가 담배를 피우든 말든 아빠가 무슨 상관이냐며 되레 소리를 질러 아빠 화를 돋웠다면 얘기가 더 길어졌으려나! 무슨 사이코 같은 생각인지... 아무튼 우성이 덕분에 오랜만에 아빠와 대화 같지 않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 우성아, 고맙다.             


xxxx년 x월 x일 x요일          

 오늘 과학 고등학교 방문 면접이 있었다. 아침에 갑자기 통보를 받고 조금 당황스러웠다. 한동안 내가 과고 시험을 봤다는 사실도 잊고 지냈던 것 같다. 학원에서 선생님은 출제 예상 문제들을 준비해 주시느라 분주했지만 왠지 나와는 상관없는 일 같이 느껴졌다.

우리 학교에서는 나와 배승연, 권우성 셋이 과고에 1차 합격을 했다. 면접 시간이 되어 승연이가 먼저 면접실로 들어가고 나 그리고 우성이 차례였다. 승연이가 들어가고 나와 우성이는 잠깐 얘기를 나누었다. 엄마 잔소리 듣기 싫어서 과고에 가고 싶다는 우성이 말을 듣고 갑자기 우성이가 부러웠다. 엄마 잔소리!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들 내가 엄마 잔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 완전 부러워하겠지! 그런데 난 사실 엄마 잔소리를 너무 듣고 싶다고 말하면? 다들 나를 미친 새끼라고 생각할 거야. 뭔 배부른 헛소리냐고...!

하지만 난 안방에서 들리는 나지막한 엄마의 한숨소리 말고 엄마의 끝없는 잔소리가 너무 그립다. 어느 순간부터 아빠의 문자에 갇혀 사는 엄마는 모든 것에 의욕이 잃었다. 아빠의 문자가 오면 그 문자에 치를 떨며 괴로워하셨고 문자가 오지 않아도 환청이 들리는 듯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하곤 하셨다. 엄마는 내가 성적이 오르거나 떨어지거나 별 반응이 없으시다. 내가 과고에 지원을 했는지 1차에 합격했는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셨다.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과고 원서를 쓰고 준비를 하면서 자소서 때문에 엄마에게 몇 번이나 얘기를 꺼내 보았지만 늘 돌아오는 얘기는 “네가 알아서 해. 엄마도 잘 몰라.”란 말뿐이었다.  

상냥하고 자상하고 조곤조곤 말씀도 잘하던 엄마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다. 히스테리컬 한 엄마의 미간 주름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에도 쪼글쪼글해지는 기분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차례가 되었고 그렇게 임팩트 없이 면접은 끝났다. 돼도 그만이고 안 돼도 그만이다.     


xxxx년 x월 x일 x요일          

 난 오늘 중학교를 졸업했다. 내가 오늘 졸업을 한다는 것이 어제까지는 큰 의미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무척 의미 있는 날이 되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학교에 가려고 하는데 엄마가 거실로 나오셨다. 다른 날과 다르게 화장도 하시고 생기 있는 모습이셨다. 어디를 일찍 가시나보다 싶었는데 엄마가 내게 물으셨다.

“무진아, 오늘 학교 몇 시까지 가면 돼?”

나는 너무 놀라 엄마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금방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엄마는 오늘 내 졸업식에 참석하신다고 시간과 장소를 물어보셨다. 나는 너무 놀라 힘든데 안 오셔도 된다고, 집에서 쉬시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내 말을 듣고 엄마가 ‘그럼 그럴까? 잘 다녀와.’ 할까 봐 겁이 났다.

하지만 엄마는,

“우리 무진이 3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잘 자라줘서 너무 고맙다. 그리고 엄마가 미안해. 오늘은 우리 무진이 졸업 기념으로 엄마가 사진도 찍어주고 맛있는 것도 사줄게.”

졸업식 내내 부스스 퀭한 눈으로 침대에서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 예쁜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엄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났다. 학생 대표로 상을 받는 것이 오늘이 처음도 아닌데 오늘은 괜히 어깨에 더 힘이 들어갔다. 뒤에서 엄마가 보고 계실 거라 생각하니 처음으로 열심히 공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한 것들이 모두 의미 있는 일이 된 것 같았다.  

애들한테 엄마를 자랑하고 싶었다. 엄마에게 내가 얼마나 학교생활을 잘했는지 자랑하고 싶었다.

그때 마침 우성이가 사진을 찍자고 다가왔다. 나는 엄마에게 우성이를 소개해드렸다. 아니 우성이에게 엄마를 자랑했다.



xxxx년 x월 x일 x요일


‘띵!’

‘띵!’

‘띵!’

세 개의 새 문자가 왔다.     

‘아빠 엄마 이혼하기로 했다. 넌 누구랑 살지 결정해.’

‘네 생각해서 물어보는 거야. 결정하면 문자 해라.’

‘엄마랑 산다고 해도 상관없다.’     

나한테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넌 어디로 갈지 결정하라니!

가족의 해체를 이렇게 간단하게 문자 3개로 통보?

이렇게 간단하게 끝?          

xxxx년 x월 x일 x요일      

그들은 애초에 내가 없던 그 상태로 돌리고 싶은 걸까?

그래서 모두 끝?

말 한마디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이렇게?     


xxxx년 x월 x일 x요일         

 나의 출생과 성장을 자체를 부정당한 기분이다.   


‘나는 늘 넓은 호밀 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나는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말하자면 호밀 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문자 세 개로 소멸될 수 있는 관계!

적어도 이런 방법은 아니지.      

이제 파수꾼은 없다!    

만약 아무도 붙잡아 주지 않아 절벽 아래로 떨어진 아이는 어떻게?          


‘무진아, 네가 정말 사랑하는 어머니께 네 일기장 전해 드렸어? 괜찮지? 네 일기 보면서 마음 많이 아프시겠지만 그래도 늦게나마 너의 부모님께서 너의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

나도 네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고 행복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어.

엄마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할 용기도 생겼고. 화이트 아웃 속에서 헤매는 비겁한 짓은 이제 그만 하려고. 아 참, 네가 읽던 『호밀밭의 파수꾼』은 내가 갖는다. 나도 내 인생의 파수꾼이 되어 보려고. 그리고 나도 이제 나만의 일기장을 채워볼까 해. 고1의 나를 고2의 내가 보고, 고2의 나를 좀 더 어른이 된 내가 볼 수 있게 말이야.

무진아, 그곳에서는 아픈 기억 없이 한없이 밝게 웃으며 지냈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쓰는 너의 일기는 지금보다 행복한 이야기이길 바라.

혹시 꿈에라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얼굴 보고 얘기하자.

너의 아픔과 너의 슬픔 내가 기억할게. 안녕, 박무진!’     

작가의 이전글 <청소년 소설>눈 먼 파수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