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교육 후기]질문이 만든 반전

: 중학생과 함께한 《12인의 성난 사람들》

by 장소영

‘재미있는 수업’은 꼭 게임처럼 자극적이어야 할까? 오늘 나는 그 질문에 명확한 ‘아니오’를 들을 수 있었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함께한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 〈12인의 성난 사람들〉을 통해 "질문하는 힘"을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이날의 수업은 법정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의 일부 장면을 기반으로 학생들이 배심원이 되어 ‘소년의 유죄 여부’를 판단해보는 시뮬레이션 활동으로 구성되었다. 영화가 1957년에 제작된 흑백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지루해하거나 낯설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왜 그 사람만 서 있을까?", "왜 포스터 중앙에 칼이 있지?" 같은 질문으로 수업 시작부터 흥미를 드러냈다.


“소년은 유죄다” – 처음의 판단

수업의 1차 활동은 영화 초반 6분 44초를 시청한 후, 각자의 역할에 따라 발언을 기록하고 1차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이다.
모든 조는 예상대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가난하고,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았으며, 전과도 있었고, 직접적인 증언까지 있었기에 아이들은 쉽게 확신했다. “소년은 과거의 사정 때문에 아버지를 죽였다.”라는 말이 나왔고, “5살 때부터 폭행을 당했다니 동기가 충분하다”는 판단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질문이 모든 걸 바꿨다

수업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학생들은 8번 배심원의 역할을 맡으며 ‘합리적 의심’의 중요성을 배우게 된다.
"그 증언은 정말 확실한 걸까?"
"정말 소년이 찌른 게 맞을까?"
학생들은 점점 자신들이 신뢰했던 '사실'에 균열을 내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누가 봤다고 했지만, 그 여자는 시력이 안 좋았다.", "소년은 왜 달아났을까? 기억을 못 하는 건 이상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범죄의 증거일까?" — 이 모든 질문이 수업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학생들은 **'선생님 찬스'**를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전체 내용을 질문해가며 자신만의 질문을 구체화해갔고, 마침내 2차 판결문에서는 놀랍게도 전원이 “무죄”라는 판단을 내렸다.
"소년은 힘든 환경에서 자랐지만, 아버지를 죽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증거는 충분하지 않았고, 다른 가능성이 있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편견에서 출발한 판단이 질문을 통해 변화할 수 있음을’ 직접 경험한 것이다. 처음엔 확신에 찬 얼굴로 유죄를 외치던 아이들이, 나중엔 ‘그 판단이 너무 빨랐던 건 아닐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꺼내 놓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재미는 생각에서 온다

이 수업을 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학생들이 "재미있었다"라고 말한 이유가 게임처럼 자극적이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을 뒤집고 질문하면서 느낀 지적 재미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는 수업은 처음이에요.”
“처음에 그냥 유죄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내가 틀릴 수도 있겠다고 느꼈어요.”

이 경험은 교사인 나에게도 큰 의미였다. 우리는 흔히 학생들에게 “비판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하지만, 실은 ‘질문하는 방법’을 제대로 경험하게 하지 않고 판단만 요구해온 건 아니었을까? 이번 수업은 질문이 얼마나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그리고 그 질문이 학생 스스로를 얼마나 변화시키는지를 증명해준 시간이었다.


내 안의 작은 메모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고전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장 날카로운 미디어 수업 도구가 될 수 있다. 아이들은 결국 “내 생각을 바꿔도 되는구나”를 배웠고, “왜 그렇게 생각했어?”라는 질문이 나를 더 깊게 만든다는 걸 체감했다.

질문은 습관이 되어야 한다. 판단하기 전에, 확신하기 전에, 누군가를 단정짓기 전에 — “정말 맞을까?” 하고 묻는 그 한마디가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 수 있다.

질문은,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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