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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영 Feb 23. 2019

<일상 로맨스>1991년의 어느 날, 강촌

가슴 시리게 그리운 나의 20대

 



 친구에 의해 느닷없이 27년 전 기억이 소환되었다. sns로 전해진  몇 장의 사진. 심장이 쿵!! 27년 전 강촌으로 되돌아 갔다.


대학교 들어가  첫 엠티. 과 특성상 여자밖에 없었던 우리 과는 다른 학교 기계 공학과 학생들과 조인을 해서 강촌으로 엠티를 갔다. 우리 과 30명 정도 저쪽 30명 정도의 인원이 허름하지만 꽤 넓은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여학생 5명 남학생 5명이 한 조가 되었다. 조별로 자리를 정하고 한쪽에서 짐을 정리했다.


그때, 나의 시야에 들어온 하얗고 정갈한 발 하나!!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난 남자들의 발뒤꿈치에 관심이 많았다. 복숭아 뼈 양쪽 옆이 쏙 들어간 '날 선 뒤꿈치'를 가진 남자가 이상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름이 아니고서는 평상시 양말이나 운동화 속에 가려져 있는 남자의 발을 볼 기회가 그리 흔치 않다 보니, 이런 상황에 이상형의 뒤꿈치를 발견한 내 심장은 정상이 아니었다. 나는 엠티 내내 그 오빠에게 시선이 갔고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2박 3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엠티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캠프파이어 때 둘이 살짝 빠져나와 같이 거닐기도 하고, 아이들이 모두 자러 들어간 후에도 그 오빠를 비롯해 몇몇이 남아 사그라드는 캠프파이어의 불을 바라보며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떠 올려 본적 없던  27년 전의 기억에 어쩜 이리 설렘 설렘 할까!

 그때는 지금처럼 sns라는 것이 없었던 시절이라 전화번호도 모르는 그 오빠와 소식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평소 읽지도 않는 학교 신문(학보)을 통해 학교 주소와 과, 이름을 적어 간단한 손편지로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왜 서로 연락처도 물어보지 못했을까 싶었지만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너희 학교 축제 때 갈게' 하던 오빠의 말에 다시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엠티가 끝나고 각자의 학교로 돌아가 서로 학보를 몇 번 주고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썸은 썸으로 그치고 말았다. 학교 축제에 온 다른 오빠들의 말에 의하면 '오빠에게 그 사이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 슬픈 소식을 끝으로 뒤꿈치가 예뻤던 오빠와의 첫 썸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참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는 그때 그 사진  속 오빠의 모습은 나의 나이듦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잠시의 추억 여행은 마치 어제의 그 오빠를 오늘 길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순식간에 나를 20대 풋풋했던 그 시절로 되돌려 놓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몇 장의 사진은 밋밋했던 생활에 '쨍'한 활력소가 돼 주었다.


 지금은  sns를 통해 헤어진 남친, 여친의 소식도 몇 번의 파도타기만 하면 손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만나고 싶은 사람에 대한 애틋함, 그리움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아 아쉽다. 핸드폰 속 수 천장의 사진은 인화지가 아닌 폰 속에 저장되어 있다가 컴퓨터나 가상공간에  오래도록 저장 보관할 수도 있고, 삭제 버튼 하나로 간단하게 없앨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찍기도 많이 찍고 삭제도 손쉽다.

그 옛날 필름 카메라로 사진관에 맡기고 맘에 드는 사진을 필름에 표시에 인원수대로 뽑아 나누어 가지던 번거로움은 사라졌지만, 왠지 추억과 그리움도 인스턴스처럼 손쉬워진 것은 아닌지!


수십 년 전의  빛바랜 사진처럼 나의 20대도 빛이 바래 희미해졌지만 40대를 살고 있는 나의 빛은 아직도 밝고 찬란하리라 믿는다. 10년, 20년 후  어느 날 , 지금의 내가 어떤 방식으로 그때의 나의 앞에 나타나도,웃으며  

"그래. 그랬던 적이 있었지"하며 다시 한번 쿵하는 설레임으로 가슴 뛰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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