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혼자 선다는 것
학창시절 버지니아 울프의 세월이란 책을 읽으면서 ‘울프의 책은 지루하다.어렵다’ 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자기만의 방>을 읽으면서 울프의 재치와 위트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생각에 잠겨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교회 잔디밭에 들어갔다가 교구관리인에게 쫓겨난 일을“삼백년 동안 줄곧 물결치듯 펼쳐져 온 잔디밭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내 작은 물고기를 숨어버리게 했다”고 말하거나, 여자라는 이유로 도서관 출입을 금했을 때 분노를 토로하는 울프의 모습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부모의 죽음과 의붓 형제에 의한 성추행의 아픔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애처로운 일상생활과는 달리 강연장에서나 작품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그녀의 재치 있는 모습에서 찰리 채플린의 웃픈 희비극이 떠오른다.
<지기만의 방>은 재치 있는 문체와 자신의 생각을 막힘없이 술술 풀어나가는 방식 때문에 쉽게 글에 몰입할 수 있다. “의식의 흐름 ”수법이라는 말을 모르더라도 저절로 울프의 의식을 따라 갈 수밖에 없다.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선언적인 발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울프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지적하는 날카로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책을 읽으면서 여성은 시대를 막론하고 여전히 재산권에 대해서는 기회가 평등하지 않고, 가사 노동에 있어서도 당연한 의무인 것처럼 여기지고 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여성의 지적 활동 기회는 늘 박탈되고 봉쇄돼 버리고 만다.
난 앞장서서 여성 해방과 권리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여자로서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내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풍족한 가정에서 자라진 않았지만 부모님의 지극한 관심과 사랑으로 무난한 삶을 살아왔고, 되짚어 굳이 인생의 시련을 찾아보지 않는다면 크게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는 평이한 삶이었다. 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하고 ,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 마치<인형의 집> 로라처럼 보모님의 인형으로, 남편의 인형으로 살아왔다. 이처럼 역사 속 많은 여성들이 별 의식 없이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살다가 그렇게 죽었을 것이다. 어떤 계기로 인해서든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고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면 말이다.
여성은 늘 역사 속에서 소외되고 배제 되어왔다. 역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들의 이야기일 뿐, 그녀들의 이야기는 기록하지 않았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은 그저 남자의 우월성을 돋보이게 하는 병풍 같은 존재였다. 울프의 말처럼 글을 쓰고자 하는 여성에 대한 무관심은 무관심을 넘어 적대적 감정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의식을 가지고 순수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 여성 소외의 사회에서 어떻게 뒤틀리고 분노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자기만의 방>은 화려하고 멋들어지게 꾸며진 공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향유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함을 말하는 것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한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도구와 전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때 인간은 진정으로 자립할 수 있다.
또한 여성의 독립과 남성과의 조화를 통해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내재한 양성적 마음을 갖추어야 창조성을 발현할 수 있을 때, 비로서 남녀 모두가 조화롭게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인간의 성에 대한 문제는 페미니즘적 접근이 아니라 휴머니즘적으로 접근해 해결해야한다.
지금도 자기만의 방을 갈구하고 그 방안을 무엇으로 채울지, 그 방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