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별책부록>'혼자 또 함께' 하고픈 두 마음

그림책<곰씨의 의자/노인경 글그림>

by 장소영

"다시 생각해도 기분나빠."

큰아들 앞에서 어린애처럼 투덜거립니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하는 얘기를 가끔 두 아들에게 쏟아놓으며 분통을 터리곤 하죠.

"그 사람이 잘못했네.걍 무시해.엄마"

두 녀석들은 항상 웃으면 내 얘기들 들어주고 무조건 편을 들어줍니다. 물론 가끔 쓴소리를 해주기도 하죠.

"그냥 솔직하게 말해. 그 사람이 상처받을까봐가 아니라 엄마가 상처받을 까봐 겁나는거 아냐? "

다 알지만 모른척 하고 싶었던 진실을 콕 집어 얘기해 줄 때면 민낯을 들킨 것처럼 뜨끔니다.

그래도 이런 얘기를 할 수있는 아이들이 있어 참 다행니다.군가는 '애들한테 뭐 그런 얘기까지 해.'할지도 모르지만요.


며칠전에 밥을 먹고 있는 두 아들에게 그림책 한 권을 읽어 주었습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그림책이야. 다른 그림책들도 그렇지만 이 그림책은 꼭 엄마 얘기 같아서 좋아."

"엄마가 곰이야,토끼야?"

큰 아들이 묻습니다.

"당연히 곰이지. 엄마도 곰처럼 남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잘 못하는 타입이잖아."

"그런가? 곰은 하고 싶은 말을 잘 안하고 참기만 하는 캐릭터고, 토끼는 눈치가 없고...가 눈치없게 굴어서 기분나빴어?"

큰 아들이 은근히 마음을 살펴줍니다.

그 때 작은 아들이 끼어듭니다.

"근데 토끼가 눈치가 없는건가? 토끼는 곰에게 잘해주려고 한 것 같은데...곰이랑 친하다고 생각했으니까...곰은 그렇게 싫었으면 먼저 얘길했어야지. 싫다고 얘길 안했잖아. 내가 토끼라면 곰이 울면서 저렇게 얘기할 때 오히려 황당했을 거 같은데..."

"친하면 그 정도 눈치는 있어야 하는거 아냐? 곰성격상 토끼가 상처받을까 봐 얘기못했을 수 있잖아. "




두 아들 밥상머리에서 읽어준 그림책은 노인경 작가의 <곰씨의 의자>입니다.

한가롭게 시를 읽으며 차 한잔을 즐길 줄 아는 곰씨의 이야기!

곰씨는 햇살 좋은 날 자기만의 공간인 하얀 긴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듣고 시를 읽으며 시간 보내는 것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유로움을 즐기던 곰의 일상에 작은 변화가 찾아 옵니다.

커다란 베낭을 멘 탐험가 토끼의 출현!!

곰씨는 지쳐보이는 토끼에게 기꺼이 자신의 의자를 내어주고 쉴 수있게 해줍니다. 탐험가 토끼는 곰씨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신기한 여행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곰씨는 탐험가 토끼를 만난 후 혼자도 좋았지만 자신과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의 기쁨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무용가 토끼가 곰씨와 탐험가 토끼 앞에 나타납니다.탐험가 토끼는 무용가 토끼와 사랑에 빠졌고 곧 결혼을 하게 되죠. 곰씨는 두 토끼를 진심으로 축하해줍니다.토끼 부부는 항상 즐겁고 활기에 차 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고 그 아이들은 너무도

사랑스러웠어요. 토끼 가족들은 여전히 곰씨를 좋아했고 곰씨 곁에 머물며 무엇이든 함께 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곰씨는 점점 우울해지고 토끼들의 활기가 즐겁기보다는 부담스럽게 느껴졌어요.

기질을 차이일까요?

곰씨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토끼들과 함께 노는 것도 좋았지만 가끔 따사로운 햇살아래서 시를 읽고 음악을 들으며 쉬고 싶었죠.예쁜 꽃들의 향기를 맡으며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었어요.

곰씨의 두 마음에 깊이 공감네요.

나 역시 가끔 말이 고프고 너무 외롭단 생각이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거나 만나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데, 가끔 '괜히 전화했다. 빨리 끊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전화를 하면서 오히려 더 외롭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어요. 만날 때도 역시 어느 날은 참 재미있다가도 어느 날은 대화가 피곤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죠. 변덕이 심해 그런건지도 모르겠나와 다른 누군가와 더불어 지낸다는 것이 몹시 불편하게 느껴질 때면, 또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하죠. 그렇게 혼자라서, 또는 함께여서 좋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한 두 마음을 곰씨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기에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어요.




'고슴도치 딜레마'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독일의 철학자 쇼펜 하우어가 말한 '고슴도치의 우화'를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인용하면서 심리학적 용어로 널리 알려진 말이죠.


추운 겨울 날 , 추위에 떨던 고슴도치들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싶어 가까이 다가갑니다.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의 뾰족한 가시에 찔려 어쩔 수 없이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극심한 추위의 고통이냐,가시에 찔리는 고통이냐' 의 문제가 늘 반복될 수 밖에 없었죠.


고슴도치의 우화는 결국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인간들도 서로 필요에 의해 관계를 맺지만 가시투성이 본성으로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마니까요.

이 그림책의 주인공 곰씨도 이런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혼자의 시간도 포기할 수 없었고, 토끼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니까요. 곰씨는 혼자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을 찾기위해 고군분투합니다.처음엔 자기의 감정을 말로 전해보려고 했지만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줄 몰랐어요. 곰씨의 생각은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고, 그 말은 토끼에게 제대로 전해지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곰씨는 말대신 행동으로 보여주자 결심하게 됐죠.


-새로운 1인용 의자 만들기

-긴 의자에 자기 자리만 빼고 나머지 부분에 페이트칠하기

-의자 위에 돌덩이 얹어놓기

-아무도 앉지못하게 의자에 길게 눕기

-의자 위에 똥누기

우아하고 고상한 취향의 곰씨가 하다하다 의자에 똥을 싸는 장면을 보고 그림책을 읽는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어요. 나 역시 처음에는 웃음이 나왔죠. 하지만 여러차례 책을 읽다보니 어느새 그런 곰씨의 모습이 짠하게 느껴지더군요. 계속해서 거절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어느 것 하나도 온전히 전해지지 않은 곰씨의 거절 메들리!!

뭐하나 뜻대로 되는 일이 없네요. 토끼들은 곰씨의 낯선 행동을 새로운 놀이로 오해하고 더 신나게 놀았죠.곰씨의 노력은 모두 허사가 되었고 곰씨는 그만 넉다운이 돼버리고 말았어요.



"말도 안돼!날보고 더 이상 어쩌란 말이야.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난 세상에 다시 없는 친절한 곰이라고."


아, 곰씨는 스스로 '친절한 곰'이라는 페르소나에 갇혀 있었네요.

곰씨 뿐 아니라 우리도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사회에서 수많은 가면을 바꿔쓰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요?


'내가 이렇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난 이러이러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데...'

'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괜히 이상하게 보지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우리 자신이 만들어 놓은 테두리에 스스로를 철저히 가둬두고 그 곳을 벗어나는 것에 극도로 신경을 곤두세우곤 합니다.

좋은 엄마아빠,좋은 친구,유능한 직장인, 괜찮은 선배후배, 착한 아들딸,공부잘하고 성실한 학생이고 싶어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하기도 하고, 또 꾹꾹 참기도 합니다.


물론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다하고 사는 사람도 있겠죠.하지만 나처럼,곰씨처럼 꾹 참고 사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요?

토끼의 정성스런 간호덕분에 쓰러졌던 곰씨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요, 깨어난 곰씨는 비로소 눈물로 호소합니다.

작은 아들이 얘기한 부분이 여기예요. 곰씨에 대한 토끼들의 애정어리 마음이 곰씨에게 튕겨져 나왔을 때! 아들의 말처럼 토끼들도 당황스럽긴 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악순환 끝에 곰씨가 극적으로 내뱉은 한 마디,


"저는 여러분이 좋아요.

하지만 그 동안 저는 마음이 힘들었어요.

물론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은 소중해요.

하지만 가끔 혼자 있고 싶어요.

저는 조용히 책을 읽고, 명상할 시간이 필요해요.

앞으로 제 코가 빨개지면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니

다른 시간에 찾아와 주세요."



곰씨가 용기를 내서 했던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상대에 대한 배려의 마음 뿐 아니라 자신이 마음 상태가 어떤지, 그 동안 자신이 왜 힘들어 했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의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네요. 아주 훌륭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여러분도 그 간의 맘 고생으로 좀 더 성장한 곰씨의 내공이 느껴지시나요?

당황스럽긴 했어도 토끼가족에게도 곰씨의 진심이 잘 전해진 것 같아요. 마지막 장면에 토끼가족과 곰씨는 서로 공존하면서 살기위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둘은 진심으로 소통했기에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발전할 수 있었던 거겠죠.



'곰씨처럼 말하기 어렵지 않아요.' tip 하나


거절의 메시지 잘 전달하는 방법?

대화를 매끄럽게 이어가는 스킬?

관계의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지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데도 유연성이 필요하답니다. 무조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요구사항을 주장하기 보다는 좀 더 부드러운 '쿠션 언어' 를 사용해 보면 어떨까요.


쿠션 언어란 말 그대로 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완충 역할을 해주는 말을 뜻합니다. 공감, 요청, 부탁, 의뢰, 반론, 거절 등의 꺼내기 어려운 말을 할 때 문장 앞에 끼워 넣어 불쾌감을 주지 않고 용건을 부드럽게 전하는 표현 언어입니다.


예를들어,죄송하지만,실례지만,어려우시겠지만,가능하시다면, 괜찮으시다면 등의 쿠션 언어를 넣어 이야기를 부드럽게 꺼낸 후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것을 말하죠.

오래도록 누군가와 행복하고 싶다면 용기를 내어 자기 내면의 소리에 집중해 보세요.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부드럽고 유연하게 전해 보세요. 그러면 내가 만든 경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을 거에요.


몇 건의 언짢은 일들이 있었어요. 상대방은 모르고 있을거에요.상대에게 뭔가 바라는 마음이 컸던 탓이죠. 말을 해야 할까 말까 고민했어요. 언짢은 마음을 전하면 관계가 틀어질까봐 혼자 또 아들을 붙들고 하소연을 했네요.

그러다 생각했죠. 내 마음을 전하지 못해 곰씨처럼 똥을 싸 제치지 말고 글을 쓰자고....그래서 이 책을 다시 꺼내 글을 쓰게 되었어요. 조금 마음이 풀리는 것 같네요. 그 친구를 만나면 부드럽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도 생겼구요.






<사랑을 지켜가는 아름다운 간격>


함께 있 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 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칼리 지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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