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별책부록> 최고의 의미

그림책 <이 세상 최고의 딸기/하야시 기린 글, 쇼노 나오코 그림>

by 장소영

크게 하는 일도 없는데, 시간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한 해를 맞이하고, 계획을 세우고, 내세울만한 성과 없이 또 한 해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그런 생각을 반복하며 어느덧 마흔여덟 해를 살았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조급함에 자꾸 남의 밥그릇을 넘겨다 보며 내 밥그릇의 밥이 적은 거 같아 속이 쓰리다. 위를 올려다보면 아직도 올라가야 할 길이 까마득해서 한숨이 나온다. 어느 정도 올라가면 만족이 될까!


며칠 전, 강의를 듣던 50대쯤 되는 수강생 분이 이런 얘기를 했다.

"따고 싶은 자격증이 있었어요. 그렇게 뭔가를 간절하게 바라본 적이 별로 없던 것 같아요. 열심히 노력해서 겨우 그 자격증을 손에 쥐었죠. 첨엔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것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근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또 다른 욕심이 자꾸 생기고, 새로운 욕심이 채워지기 전까지는 허덕거리게 되고 그러는 사이 행복감은 저 멀리 멀어져 가 버리더라고요. 끝이 없어요. 어느 순간 부질없단 생각이 들어서 이제는 간절히 바라지 않으려고 해요."


꼭 내 얘기 같았다. 요즘 나의 고민을 누군가의 입으로 대신 듣는 기분이랄까.

하나의 목표를 넘고 나면 '이쯤 됐어'가 있을 줄 알았는데, 또다시 갖지 못한 다른 욕망으로 인해 우울해지고 좌절하게 된다.

간절하게 그것만 손에 넣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할 줄 알았는데, 갖는 순간 너무 흔한 것처럼 느껴지고 그 가치는 마냥 하찮게 느껴진다. 처음에 그것을 손에 넣었을 때는 아끼고 귀히 여기며 소중하게 다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미 내 마음이 처음 그 마음이 아니게 되고 만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상황은 다르지 않다.


중학교 입학 때, 입학 선물로 사주신 태어나 처음 받았던 예쁜 구두 한 켤레. 브랜드 이름도 아직 생생하다. 영에이지라는 브랜드에서 산 빨간색 구두!

그 시절 살림살이가 어지간히 넉넉한 집이 아니고는 구두를 신고 다니는 것은 사치였다. 브랜드 운동화는커녕 시장에서 산 운동화를 아껴신던 때였으니까.

그런데 넉넉지 않은 살림에 언감생심 기대도 안 했던 브랜드 구두를 손에 들었을 때, 난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얼마나 설레고 행복해했던지.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구두 한 켤레로 내 미모가 한 열 단계는 업그레이드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길을 걸어가면서도 상점 유리에 비친 구두 신은 내 모습을 자꾸 흘깃거리며 괜한 우월감에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오곤 했다. 무엇을 입던 그 신발 하나면 패피가 된 기분이었으니 신발 부심이 여간 아니었다. 발이 커지고 구두가 작아져 더 이상 신을 수 없을 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신었던 그 구두는 반백년을 살아온 내 인생 최고의 신발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후에 더 비싼 더 좋은 아이템의 무엇을 손에 넣더라도 그때 그 감정만큼 오래도록 나에게 '최고'로 기억되는 것은 없었다. 신기하게도.

누군가의 인생에 '최고'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것이 이렇게 하찮은 것이어도 되는 걸까 싶기도 하지만, '최고'가 주는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단 생각이 든다.




'최고'란 어떤 때 쓸 수 있는 말일까?

<그 소문 들었어?>라는 그림책으로 유명한 히야시 기린이 쓰고, 소노 나오코가 그린 <이 세상 최고의 딸기>와 <완두>의 작가 다비드 칼리가 쓰고, 세바스티앙 무랭이 그린 <최고의 차>는 최고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 좋은 그림책이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과 함께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읽기 전에 아이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의미를 물어본적이 있었다. 비슷비슷한 대답들 속에서 한 아이의 대답이 꽤나 그럴듯해서 기억에 남는다.


"최고는 내가 생각했던 것을 넘어섰을 때 하는 말인 것 같아요. 내가 80점만 맞았으면 하고 생각했는데, 90점을 맞으면 그때는 최고로 기분이 좋지만, 원래 90점을 생각했던 애나 100점을 생각했던 아이한테는 90점이 최고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최고는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을 때를 말하는 거예요."



빙고!

최고라는 말을 이렇게 최고로 잘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중학교 시절 비싼 브랜드의 신발을 늘 신을 수 있었다면 그 신발이 그토록 오래도록 나에게 최고의 신발로 기억되진 않았을 것이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기대할 수 없었던 구두 선물은 내 생각을 넘어섰던 것이었기에 전무후무한 최고의 선물로 기억하는 것이리라.

<이 세상 최고의 딸기>는 어떤 딸기를 최고의 딸기로 손꼽을까?

혼자 북극에서 살고 있는 하얀 곰은 어느 날 편지 한 통을 받는다.

그림책 <이 세상 최고의 딸기> 中


누가 왜 보내주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 번도 딸기를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북극곰은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딸기를 기다린다.


가슴이 콩닥콩닥!
아까워서 어떻게 먹지! 창가에 장식해 둬야겠어.
내 하얀 털과 잘 어울리지 않을까? 목걸이로 해도 예쁘겠어.
손가락에 끼면
루비 반지처럼 보일 거야.
그림책 <이 세상 최고의 딸기> 中

며칠 만에 도착한 빨갛고 탐스러운 딸기!

예쁜 컵에 담에 두고 쉽게 먹어버리지도 못한다. 향기를 맡고, 눈으로 즐기는 것만으로 행복해 보이는 하얀 곰!

그 예쁘고 귀한 딸기는 고맙게도 그다음 겨울에도, 그 다음다음 겨울에도 하얀 곰에게 배달되었다. 그 양도 처음에는 한 알, 두 알 정도 더니 나중에는 한 상자, 두 상자 그 이상씩 배달되어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을 정도로 넉넉했다.

그림책 <이 세상 최고의 딸기> 中

해마다 더 많은 딸기를 배달받은 하얀 곰은 더없이 풍족한 딸기 풍년으로 얼마나 만족스러울까 싶었지만 의외의 말을 한다. 하얀 곰은 딸기가 많아질수록 기쁨이 줄어든다고 말하고 있다.

처음의 첫 딸기를 기다리며 설레었던 마음은 이제 없어져버렸다. 첫 딸기를 기다리며 느꼈던 간절함도 이제는 없어진 모양이다. 해마다 더 많은 딸기가 올 것이라는 예상은 하얀 곰에게 그 어떤 딸기도 더 이상 최고로 만들어 줄 수 없게 된 것이다.

딸기의 본질과 보낸 사람의 행동은 변함없지만 받는 사람의 마음에 이미 최고의 기준이 변했기 버렸기 때문이다.

하얀 곰은 깨닫게 된다. 많이 가졌다고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물질의 풍족함이 마음의 풍족함과 비례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그림책 < 이 세상 최고의 딸기> 中


우리는 소유의 욕구를 모두 충족한다고 그것이 행복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눈 앞의 욕구를 쫒게 된다.


다비드 칼리의 그림책 <최고의 차> 주인공은 평범한 샐러리맨인 자크 아저씨다. 자크 아저씨는 낡았지만 크게 불편함 없이 타고 다닐 수 있는 차를 한대 가지고 있다. 주차하기 쉬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차!

그러던 어느 날 광고판에서 아주 날렵하고 멋진 '비너스'라는 차를 보게 된다. 아저씨의 일상은 비너스를 보기 전과 후로 나뉜다. 느리지만 자기의 속도로 즐기던 일상은 '비너스'를 갖고 싶다는 욕망으로 변질된다. 샐러리맨 월급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차 '비너스'를 사기 위해 아저씨가 선택한 방법은 일상을 포기해야만 가능했다. 밤낮없이 시간을 쪼개 장난감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는 아르바이트! 현실에선 장난감 부품 조립으로 그 비싼 차를 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림책 속에서 자크 아저씨는 어찌어찌 노력한 끝에 드디어 그 비싼 자동차 '비너스'를 손에 넣게 된다.

그림책 <최고의 차>中

꿈에 그리던 자동차 '비너스'를 구입한 자크 아저씨는 아마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하겠지!

하지만 '자크 아저씨는 그렇게 최고의 차를 사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이야기는 끝이 났을까?

마지막 장면의 웃픈 반전을 알려주는 것은 그림책을 읽는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기 때문에 속으로 삼키려 한다. 궁금하신 분은 꼭 직접 확인해 보길 바란다.


우리는 꽤 자주 '최고', 최악'이라는 말을 쓰곤 한다.

기대치 이상일 때, 기대치 이하일 때!

'기대치'는 과학적인 산출 기준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더 많다. 기대치라는 것이 개인의 욕망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이상일 수도, 이하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때문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多多益善'이란 말이 필요한 상황도 있고, '많은 것이 모자람만 못하다.過猶不及'는 말이 적절할 때도 있는 것이다.

두 고사성어가 서로 상반되는 얘기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많은 것도, 모자란 것도 적절함이 아닌 치우침의 결과란 부분에서 그러하다. 그러므로 많이 가질수록 줄어드는 것은 분명히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첫 딸기의 달콤함을 잊게 만든 것이 무엇이었는지, 멋진 최고의 차를 갖기 위해 자크 아저씨가 포기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행복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종종 '나중에 '라는 말을 덧붙인다.

지금은 아니지만, 지금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를 원하는 무엇인가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우리는 지금의 행복을 저당 잡히고 있지는 않는가?

나중에 얻을지 말지 한 '최고'의 무언가를 위해 지금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외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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