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場글Book'>두려움을 마주할 용기

그림책 <그날, 어둠이 찾아왔어/레모니 스니켓 글, 존 클라센 그림>

by 장소영

'울렁증'

평소에 분명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리고, 과호흡에, 얼굴은 빨개지고, 머릿속은 백지가 되고, 식은땀이 삐질삐질, 갑자기 배도 아픈 것 같고, 토할 것 같고, 말도 더듬더듬, 입이 바짝 말라 목소리는 쩍쩍 갈리지고...




학창 시절 난 남들 앞에만 서면, 꾸준히 덜덜 떨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하다.

너무 잘하고 싶은 욕심과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뒤엉켜 극심한 울렁증을 느낀다.

이불 킥 하고 싶을 정도의 부끄러운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가,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어김없이 꺼내어 "또 그러면 어쩌지?"를 반복하며 뻔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

그러고는 "거봐, 내가 이럴 줄 알았어."라며 실패 경험을 또 하나 쌓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움의 크기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자책감도 짙어졌다.

남들 앞에서는 것이 끔찍하게 싫었으면서 어떻게 남들 앞에 서는 강사가 된 것인지.


학창 시절 새 학기를 시작하면 한 번씩 호되게 병치레를 했다. 밥도 잘 먹지 못하고, 며칠을 시름시름 이유 없이 앓았다. 지나치게 소심한 탓에 새로운 환경이 버거웠던 것일까. 쉬는 시간마다 다른 반에 있는 친구를 찾아가 겨우 마음에 안정을 얻었고, 수업 시간 종이 쳐 교실로 돌아올 때는 다시 긴장 상태가 되었다. 바뀐 교실, 바뀐 선생님, 바뀐 친구들이 익숙해질 즘이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밝아지면서도 변함없이 학기초만 되면 이런 홍역을 치렀다.

난 그렇게 새로운 상황과 변화에 대한 면역력이 유난히 떨어지는 아이였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 학기가 되어 참고서와 책받침을 사러 혼자 문방구에 갔었다. 그 당시 좋아했던 김혜수 사진이 코팅된 책받침을 사고 싶어 먼 거리를 걸어서 평소 다니지 않던 지하상가를 가게 되었다. 거기까지 갔던 용기는 가상한데, 문방구에 들어가서 맘에 드는 책받침을 고르는 어려운 미션이 남아 있었다. 문방구를 앞에 두고 난 몇 바퀴를 뱅뱅 돌았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괜히 얼굴이 빨개지고 목이 콱 막혔다. 뭐가 그렇게 두렵고 부끄러웠던 것인지 난 그렇게 한 참을 주변만 맴돌다가 결국 참고서도, 김혜수 책받침도 사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오히려 홀가분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그렇게 샤이(shy)했던 것은 아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유난히 컸던 것뿐. 나이가 들어서도 그 버릇은 잘 고쳐지지 않았다. 매 번 내 역량을 넘어서는 일을 할 때마다 다 그만둬 버리고 싶은 유혹에 사로 잡혀 온갖 핑계를 떠올리곤 한다. 이 일만 지나가면 세상 더없이 행복할 텐데, 당장은 그 일 때문에 괴롭고 불안했다. 그렇게 발목 잡는 그 일에서 헤어 나올 때까지 감정은 널뛰기를 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뭘 그럴 게 있나 싶으면서도 번번이 그랬다.



'그날, 어둠이 찾아왔어.'

원서의 제목도 <The Dark>. 왠지 스릴러 영화의 제목 같은 그림책.

주인공 '라즐로'란 아이는 집안 곳곳에서 함께 살고 있는 어둠을 느낄 때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보통의 아이들이었다면 아마 이 어둠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 온갖 방법을 동원했을 테지만, 라즐로는 두려움을 넘어서 어둠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안녕, 어둠아."
인사하고 싶었어.
내가 먼저 어둠을 찾아간다면
어둠이 내 방에 안 올지도 몰라.


그러던 어느 날,

라즐로에게 정말 어둠이 찾아오는데... 라즐로는 랜턴을 들고 그 어둠의 소리를 따라간다. 어둠은 복도와 욕실, 계단을 거쳐, 거실을 지나 평상시 라즐로가 가지 않았던 가장 어두운 곳, 집안의 가장 음침한 곳인 지하실로 라즐로를 불러들인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라즐로는 어둠이 이끄는 대로 어두운 지하실 깊숙한 곳으로 발을 디딘다.


"가까이 와."
어둠이 말했어.
라즐로는 가까이 다가갔어.
"더 가까이."
어둠이 말했어.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그때 어둠은 말한다. 지하실 구석에 있는 서랍장의 맨 아래 서랍을 열라고. 서랍을 여는 순간 뭔가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것이 튀어나오는 것은 아닐까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잠깐, 잠깐만!

나라면 저 상황에 서랍을 열 수 있었을까!

아마 어두운 지하실까지 따라가는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엄마를 불렀겠지.



편도체 '하이재킹' 이란 말이 있다.

하이재킹이란 테러범에 의해 비행기가 납치되는 것을 말하는데, 우리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불안과 공포, 두려움이 이성적 판단을 담당하는 편도체의 기능을 마비시켜 현실을 올바로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현상을 비행기 납치에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강렬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우리의 관심을 뺏어가, 다른 일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의미다.


라즐로는 어떤 행동을 했을까.

라즐로가 나처럼 이불을 뒤집어쓴 채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져 우주 겁쟁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문방구 안에 걸린 김혜수의 사진을 사지 못하고 돌아섰던 나처럼, 많은 두려움의 순간을 회피하고 외면하면서 오히려 그걸 홀가분해하고, 오래오래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뇌는 저 멀리 납치되어버렸을 테니까 말이다.


도둑맞은 이성을 다시 찾는 방법이 영 없는 것은 아니다. 계속해서 남들 앞에 서서 말을 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울렁증은 나에게 큰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이 두려움을 꼭 이겨내고 싶었다. 울렁증을 극복하려고 무던히 애쓰면서 터득한 나만의 방법이 뭐냐고 묻는다면 사실 별거 없다.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

그리고 힘을 빼는 것!

멈춰서 숨을 고르고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이 그럴만한 것인지 생각해 본다. 말이 쉽지 그게 잘 되겠냐고 되묻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정말 쉽진 않다. 나도 아직까지 잘된다고 할 순 없으니까. 하지만 안된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고 싶진 않으니 조금씩이라도 해보는 것뿐이다. 그래서 두려운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그 실체가 파악되면 해결방법이 무엇인지 또 생각한다. 그리고 준비가 되었다면 정말 숨을 고르고, 온몸에 힘을 쭈욱 빼고, 지나고 난 후에 느낄 해방감을 상상한다.

아주 조금이지만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두려움 덕분에 준비가 오히려 꼼꼼해졌다. 적당한 긴장감과 두려움이 약이 되었던 것이다.

지붕이 없다면 비가 침대 위로 곧장 쏟아질 거예요.
창문이 없다면 밖을 내다볼 수 없을 거예요.
계단이 없다면 지하실로 내려갈 수 없을 거예요.
옷장이 없다면 옷을 어디에 둘까요?
샤워 커튼이 없다면 여기저기 튀는 물은 어떻게 할까요?
그럼, 어둠이 없다면요?

어둠이라도 있어야 할 이유가 있 얘기다. 어둠이 아니었다면 빛이 있는 줄 모르고 살았을 테니까.


내게 울렁증과 두려움이 없었다면 게으름으로 인해 매사에 조금씩 설렁설렁하는 습관이 더 커졌을지도 모른다. 그걸 이겨내보려는 마음과 준비가 있었다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빛이 닿지않는 뒷면은 항상 어둡다. 그 사실을 알았다면 그곳에 또 빛을 비추면 된다. 어둠이,두려움이, 공포가 있다는게 문제가 아니라 그걸 모른 척 외면하는 게 더 큰 문제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림책 별책부록> 최고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