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場글Book> 책과 마주하는 자리에 푸른 물이 들다.

그림책 <산책/이정호 글그림>

by 장소영

계절 상관없이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외출하기 전 습관처럼 확인하는 미세먼지 농도!

하늘을 뿌옇게 뒤덮은 그 먼지의 출처가 어디든, 우리는 그저 숨쉬기 답답하고 건강이 걱정될 뿐이다.

청명한 하늘,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이젠 선물처럼 느껴지니... 어쩌다 하루 반짝하고 맑게 갠 날 올려다본 파란 하늘이 그저 반갑고 고맙기만 하다.

<11월의 어느 날의 하늘>

미세먼지 탓만은 아니겠지만, 사람들에게 가장 선호하는 색을 물어보면 많은 수의 사람들이 청량하고, 시원하고, 깨끗한 이미지의 파랑을 선택한다. 독일 색채 심리학자 에바 헬러가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 2000명(14~97세)을 대상으로, 색을 통해 느끼는 감정 등을 조사 분석한 결과, 남자 46%, 여자 44%가 파란색을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의 파랑에 대한 호감도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는 수치다.


물론 한 때 파랑을 추하게 여겼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파란색을 죽음이나 지옥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었다. 그들이 야만족이라 여겼던 켈트족(서양 고대에 활약한 인도 유럽어족의 일파)과 게르만 족의 눈동자가 파랗다는 이유로 파란색을 경계하고 터부시 했던 것이다. 그러니 청색 옷을 입는 것을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라 생각하고 멀리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마 제국이 무너지면서 파란색에 대한 가치도 바뀌게 되었다. 유럽을 손에 넣은 게르만족과 켈트족이 파란색을 애용하면서, 성모 마리아와 제왕을 의미하는 색으로 파랑이 쓰이게 된 것이다. 죽음을 의미하던 색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색’으로 의미가 변하면서 한 순간에 가치 절상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가치의 변화뿐 아니라 파란색을 좋아하는 이유가 심리학적으로, 사람들에게 안정을 주고, 차분해지며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 주기 때문었을까?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말에 대체로 파랑을 많이 사용한다.

‘어떤 일이 앞으로 잘되어 나갈 것을 보여 주는 징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청신호’라는 말도 희망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푸른색의 이미지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그 외에도 ‘블루 오션’, ‘파랑새’, ‘블루칩’등 파란색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내세워 쓰는 단어들은 많다.

파랑에 대한 긍정의 신호는 사람들의 패션에도 영향을 주었다. 옷장 서랍을 열어보면 누구나 한두 벌 쯤은 가지고 있는 공식적인 패션 아이템!

아마 망설임 없이 청바지(Bulee jean)를 떠올릴 것이다. 사람들의 파랑에 대한 사랑은 청바지를 즐겨 입는 것만큼이나 대중적인 것이 되었다.

파랑에 대한 색의 평가가 어떤 역사적 국면을 맞아 다시 변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단연 파랑을 손가락 안에 꼽는다.

파랑색에 대한 설명이 좀 장황했나!


파랑 범벅, 넘쳐나는 파랑으로 가슴 벅찬 한 권의 그림책을 손에 받아 들고 너무 흥분해서, 파랑에 대한 얘기가 좀 길어진 듯하다.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색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던 그림책!

이정호 작가의 첫 그림책 <Promenade 산책>이다.

이정호 <산책>中 앞 면지

이 책을 처음 만난 건 도서관 어린이 서가에서이다.

주말이면 종종 찾는 도서관에서 따뜻한 바닥에 엉덩이를 지지고 앉아 나른한 시간을 보내는 걸 무척 좋아한다. 추운 겨울 어린이 서가는 찜질방처럼 엉덩이가 자글자글 따뜻한 것이 아주 좋다.난 서가에 꽂힌 책 중에서도 특히 눕혀 꽂혀 있는 책을 좋아한다. 서가에 반듯하게 꽂히기엔 너무 큰 판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눕혀 꽂힐 수밖에 없는 그림책들.

이 그림책도 그렇게 처음 누운 채로 나와 만났다. 서가에서 처음 만났을 때, 커다란 그림책에 한껏 물들어 있는 파랑이 너무 강렬해 손에 물이 들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디서 본 듯한 그림 풍과 어디서 본 듯한 구절의 글들!

그렇지만 절대 식상한 느낌은 아닌 그런 그림책!

대출해 빌려올까 생각하다가 ‘사야지!’하는 생각으로 책을 그냥 서가에 다시 꽂아두었다. 소장각!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책이었다.

르네 마그리트와 크빈트 브루홀츠를 좋아하는 작가!

그는 작업할 때 고전 예술 작품들뿐만 아니라 영화와 음악 등 그의 심상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이라면 장르 구분 없이 즐기며 영감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 속에는 다른 예술가들의 세계가 녹아들어 있기도 하고, 또 그의 색깔로 재해석되어 새롭게 탄생하기도 했다.

이 그림책도 한 권의 책 속에 많은 세계가 녹아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산책>은 각양각색의 파랑이 총출동한다.

이정호 <산책>中

다양한 파랑으로 표현된 그림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연신 터져 나오는 감탄사,

‘와, 정말 예쁘다.’

그림에 빠져 그림 하단에 작게 쓰여 있는 글을 못 보고 넘길 뻔 했다. 그렇게 그림에 빠져, 색감에 빠져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면 환상에서 빠져나온 듯 한 느낌이 든다.

‘뭘 본 거지!’하는 생각에 정신이 들어 다시 처음부터 한 장 한 장 다시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제야 그림책 속에 있는 글이 보인다.


어디로 가게 될지 아는 사람은 없어. 다만 어디쯤 왔는지는 알 수 있을 거야.
전부 기억해야 한다면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을 거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겠지.


낯설어도 불안하지 않는다면 즐거울 거야.
멀리 가려면 천천히 조금씩 가야 해.

그림책 한 장 한 장에 그려져 있는 다양한 책의 모양, 책이 머문 자리, 그것들이 주는 의미에 더 큰 의미를 더해주는 글!

때론 그냥 내 이야기로, 때론 나와 비슷한 이야기로, 때론 내 생각과 완전 다른 생각으로 내 머리를 두드렸던 책들을 통해 난 듣게 되고, 알게 된다.

먼저 산 사람들, 지나간 시간들이 아로새겨 놓은 지혜들을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듯 눈에 담고 마음에 새겼었다.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를 고스란히 맞듯이 그것들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다른 생각에 불안해하기도 했었다.

책이 주는 의미, 책을 통한 깨달음을 산책하듯 고요하게, 차분하게, 또는 쨍한 파랑으로 서슬 퍼렇게 , 명징하게, 그윽하게, 신뢰감을 주며 말하고 있다.

‘캄캄한 밤 작은 호롱불을 들고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백발노인의 뒷모습, 책의 문 안에 펼쳐진 별이 총총한 하늘과 잎이 무성한 푸르른 나무 한 그루!’

책 표지에서 주는 이미지와 제목의 매칭이 더할 나위 없이 합이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잠들어 있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고, 지나쳤던 나의 과거와 다가올 미래를 대면할 수 있는 기회일 테니,

지금 잠들어 있는 나의 뇌에 ‘딸각’ 밝은 불을 켜보는 것이 어떨까!

어떤 책이든 좋다.

그 속에선 만난 또 다른 나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게 될까.

이정호 <산책>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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