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하면서 한 참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슬며시 고민을 털어놓았다.
"내 성격이 이상한가 봐. 다른 사람들은 다 그냥 넘어갈 일인 데 왜 이러지? 자꾸 울화가 치밀어."
자초지종을 묻는 친구에게 며칠 전 있었던 얘기를 꺼냈다.
새로 시작한 박사과정,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계속 학교를 가지 못하고 온라인으로만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드디어 첫 오프 강의가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수님, 선배들, 동기들과 첫 대면이기도 해서 기대되고 설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언짢은 일이 생긴 것이다.
온라인 수업 중에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던 동기가 있었는데, 어느 날 전화를 해서 석사과정을 했던 학교 면접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며, 붙으면 그곳으로 갈 거라고 슬며시 얘기를 꺼냈다. 같이 시작했는데 다른 곳으로 가겠다니 아쉬운 마음에 설득도 해보고 더 세심하게 신경을 썼지만, 이미 떠난 마음을 돌리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아쉽지만 선택을 존중해 줄 수밖에...
그런데 그 날 학교에 와서 수업을 듣는 내내 틈만 나면 그 학교 얘기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그 학교는 교수들이 학생들을 잘 끌어주고 선배들 인프라가 탄탄해서 좋다고, 그쪽 교수님이 전화해서 이왕 공부할 거면 거기보단 여기가 낫지 않느냐고, 오면 잘 리드해 줄 테니 한 학기만 잘 버티고 오라고 했단다. 그러면서 여기는 이래서 안 좋고, 저래서 안 좋고 계속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다. 새삼스레 여기 남아 공부하려는 내 선택이 잘못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적당히 추임새를 넣어주면서 맞장구를 쳐주었다. 어차피 가기고 마음먹은 사람이니까 설득하느라 힘 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까지만 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 그냥 오프 수업 말고 온라인으로 수업하는 게 더 좋지 않아요? 온라인으로 하면 강의 틀어 놓고 다른 거 할 수도 있잖아. 금요일 하루 종일 수업하는 거 싫어서 여기 안 오려고 했는데... 난 금요일이 제일 바쁘거든요. 아, 근데 내일도 또 수업 있잖아. 진짜 오기 싫다. 안 그래요?”
결국 난 그 마지막 말에 울화가 치밀어 다물고 있던 입을 열고 말았다.
"선생님, 나 그 얘기 그만할래요. 선생님은 가실 거지만 난 여기서 계속할 건데... 그런 소리 계속 들으니까 맥 빠지잖아요."
갈 사람인데 그냥 듣고 말걸 괜한 말을 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그게 뭘 그렇게 화가 나는 일이라고 참지 못하고 기어이 한마디를 하고 만 건지...
그렇게 친구에게 며칠 전 얘기를 시작으로 여러 가지 나의 지난 울화와 진행 중인 울화 스토리를 쏟아냈다.
아끼던 동료가 있었다. 뭘 줘도 아깝지 않은... 사회에서 만났지만 오래 함께하고 싶었던 정이 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끼는 만큼 그 동료에게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었던 게 문제였을까. 사람은 나와 같을 수 없는 건데 욕심을 부렸던 게 탈이 나 버린 걸까.
좋은 것이 있으면 늘 나누고 싶었고, 어딜 가든 뭘 하든 함께 하는 것이 즐거웠던 사람인데....
그 사람 생각이 나만큼은 아니구나 싶은 일들이 종종 생겼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 사이에 내가 모르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서운한 마음이 커져갔다. 웃고 있지만 전과 같이 않은 어색한 기류를 느끼지 못했을 리 없는 그 동료는 그런 나의 서운함이 불편하게 느껴졌을 테고... 나 역시 그와 그 곁에 있는 또 다른 동료들을 보는 게 불편해졌다. 모두에게 착한 그 사람은 나를 뺀 모두와 여전히 잘 지내는 듯하지만, 한 사람만 좋았던 난 모두가 어색하고 불편하고 두려워져 버렸다.
정신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다가도 문득 그 생각이 떠오를 때면 입에 쓴 맛이 돈다. 난 왜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었는지, 늙지도 않은 채 여전히 서툴고 떫은맛이 나는 성숙하지 못한 내 마음 때문에 종종 울화가 치민다.
두서없이 떠든 여러 가지 상황들을 다 듣고 난 친구는, 하나하나 짚어가며 조곤조곤 피드백을 주었다. 어떤 얘기엔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면 지지해 주었고, 또 어떤 얘기엔 괜한 망상이고 피해의식이라며 지적해 주었다.
좀 내려놓으라고...
관계에도 거리두기가 필요한 거라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도, 모두와 친할 필요도 없다고...
나의 곁을 오랫동안 지켜준 사람들에게 집중하라고...
그런 모양의 사람도 있고 이런 모양의 사람도 있는 것처럼 난 그냥 나라고...
모두 다 다른 거라고...
나에겐, 나의 서툰 고백과 같은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한마디 한마디 신중하게 답을 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이제 나에겐 필요한 관계를 위한 피로한 관계와의 거리두기 필요한 듯하다.
수많은 고만고만한 날들 중, 나에게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힘을 준 그 친구들에게 고맙단 말을 전하고 싶다.
“나의 오랜 친구 정숙아, 정임아, 너희들 덕분에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나다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고맙다.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