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의 아름다움을 깨닫는다는 것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도 않네요."

by 장소영

젊은 시절 한량처럼 지내던 남편은 아내에게 돈을 뜯어내 집을 나가 버리고, 아내는 꽃 같은 시절을 홀로 남아, 묵묵히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 낸다. 오랜 세월이 흘러 호기롭던 남편은 늙고 병들어 마침내 아내 곁으로 돌아온다. 남편이 누워있는 방을 바라보며 툇마루에 앉은 늙은 아내는 낮은 소리로 읊조린다.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늙지도 않네요.”

아주 오래전 보았던 드라마 얘기다. 무슨 의미였을까! 속절없이 늙어버린 아내가 읊조린 저 말! 왜 그렇게 오래도록 그 말이 마음에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난 조용히 되뇌어 본다.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그 말을.....


내 나이 지금 40대 후반, 발달 단계상 중년의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나에게는 ‘나이 듦’을 자각할 수 있는 신체적, 심리적 변화가 이제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핸드폰과 눈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습관적으로 작은 글씨를 보면 손가락을 갖다 대 글자 크기를 확대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거울을 볼 때마다 전과 같지 않은 피부 상태에 의학의 힘을 빌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식탁 위에 놓여 있는 각종 건강식품은 어떤가! 30대 후반, 스트레스와 우울로 인해 한달 사이에 살은 10kg나 빠지고, 영양 발란스 불균형으로 인해 얻은 이른 폐경 진단.호르몬 약을 먹어야 하고 쉬어야 한다는 얘길 들었지만, 먹고 사느라 바빠 챙기지 못했던 몸은 이제 저런 거라도 먹어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먹은 날과 먹지 않은 날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는 의약품 광고처럼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인지 심리적인 위안인지 모를 차이를 느끼게 된다. 아직 나이 듦을 인정하기에는 너무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또 젊다고 느끼기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꼰대 마인드와 저질 체력에 힘이 빠져 버린다.


분명한 것은,

이렇게 몸은 세월의 테가 쌓여가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아직도 덜 익은 감처럼 풋내 나고 떫은 서툰 맛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성숙의 경지에 이를 거란 나의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노력 없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언제나 든든한 비빌 언덕일 줄만 알았던 부모님, 평생 내 편 일 것만 같았던 남편, 엄마가 제일 좋다던 품 안의 자식, 찐친인 줄 알았던 친구들, 그리고 사회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그 속에서 난 좋았던 것만큼 싫은 것도 느껴야 했고, 편안함만큼 강렬한 불안이 엄습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행복한 만큼 불행이 찾아올 수 있음을 깨달아야 했다. 아직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많이 남은 나이!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잃고 또 얻을 수 있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그때마다 난 지난 시간들을 반추하며 ‘그럴 때가 있었지.’라고 말할 것이다.


사무치게...

지나가 버린 나의 청춘이 그리워질 때가 있지.

물색없이 그럴 때가 있지.

툭!

귀에 꽂히는 노랫가락에

목구멍이, 명치끝이 먹먹해져 버릴 때가 있지.


누구 때문도,

무엇 때문도 아니지만,

또,

그 모든 것 때문이기도 해서

코끝이 맹맹해져 버릴 때가 있지.


그냥 그럴 때가 있지.


성숙해진 적도 없는데

훌쩍 노숙해져 버린 기분이 들 때가 있지.

움직일 때마다 습관처럼 흘러나오는 '에구구구구~~'

몸뚱이가 예전 같지 않음에 기가 죽을 때가 있지.


별 거 아닌 일에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배를 틀어잡고 웃어 젖혔던,

한참을, 그렇게 이유 없이,

깔깔대던 때가 있었지.


지금,

언젠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꼭 그때의 나와 같은 아들이,

잇몸을 하얗게 드러내며 보여주는 영상 한 편에,

건조하게 'ㅋ'

, 하고 말 때가 많아졌지.


그저 그냥,

그럴 때가 점점 더 많아지는 지금!


나는,

다시............................. 갱更!

나의 또 다른 때를........... 년年!

기다리지.................... 기期!


언젠가 나에게도 찾아올 제2의 사춘기, 왠지 부정적으로 들렸던 ‘갱년기’라는 말에서 난 ‘다시’라는 말에 집중해 보고 싶다. 무언가 새로운 도전이 두려워질 중년의 나이, 주먹 불끈 쥐고 ‘다시 시작, 새로운 도전’을 도모하는 것만이 멋진 도전은 아닐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똑같은 듯 다른 아침, 다른 점심, 다른 저녁, 그날이 그날 같지만 조금은 다른 하루하루에 난 ‘다시 시작, 멋진 도전’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주고 싶다.

sns, 깨톡 프로필 사진에 점점 꽃을 올리고 싶은, 꽃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나이!

‘나이가 드니 꽃만 예쁜 게 아니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잎사귀 그물맥도 얼마나 신기하고 아름다운지 몰라.’라고 말하던 노인의 말처럼 안보이던 것이 보이고, 모르던 걸 점점 알아가는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시작의 날들인가!

‘나이 듦’은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는 수많은 시작의

결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늘 하루를 살아낸 나는 내일 또 시작할 것이고, 또 하나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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