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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미오네 May 22. 2023

사는 게 왜 재미가 없지?

희망

출근길의 앞 과정은 생략하기로 한다. 재미없으니까, 




출근길 그 마지막 코스로는 지하철역에서부터 회사까지 10분 정도 걷는 것이다. 바빠도 두리번거리길 좋아하는 두 눈은 매일 어떤 한 건물을 쳐다보는데 그 건물 입구엔 흘낏 봐도 비싸 보이는 외제차들이 아침마다 정차한다. 계단에 서 있던 성인 2명은 차를 향해 밝게 인사하고 차량 뒷좌석에서 5~6세 정도 돼 보이는 아이가 내린다. 매일 관심 있게 쳐다보는 이유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때문이다. 여태까지 모든 아이가 땅에 발 한번 딛지 않고 품에 안긴 채 건물 안으로 옮겨졌다. 난 지금 단 한 번의 예외를 기다리는 것이다.




월, 화, 수, 목, 금, 정시에 퇴근한다면 무교인도 감사기도가 나오는 평일을 보내고, 토, 일은 퇼! 하고 눈 감으면 사라지니 어찌하면 좋을까. 이번 달에 노동자의 날과 어린이날 대체공휴일로 주3일 연휴를 2번씩이나 보내며, 주 4일 기업을 검색해 본 건 과연 나뿐인가? 신입인 나만 빼고 대부분이 야근하는데 거기다 대고 “먼저 가보겠습니다” 라며 퇴근하는 게 대표님에겐 죄송하지만 벌써 지겹다.




외제차에서부터 건물로 안겨 들어가는 얼굴 모르는 꼬마들과 출근길을 함께할 때마다 속에서 어찌나 부러운지.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손목시계를 확인하는 나는, 곧 출근 지문을 찍을 난, 약간 비참하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동료들과 산책하다 그 건물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건물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알록달록 풍선들로 채운 미니 풀장도 보였다. 뛰노는 아이들보다 옆에 서 있는 어른들이 더 많은 것 같은 그곳은 알고 보니 영어 유치원이라고 했다. 




사는 게 재미없는 이유는 희망이 안 보여서 그렇다. 보다시피 저 어린 새싹들에게 부러움과 수치심을 느낄 뿐 저들을 낳을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월급으로는, 수습 기간이라 기본급의 80%를 받는 나에게는 월세, 식비, 가스비, 전기세, 교통비, 휴대전화 요금, 주 3회 요가학원 그리고 적금을 내고 나면 다시 다음 달 월급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보험도, 신용카드도, 자동차도 없는 나지만 그래도 나중엔 편안한 자가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싶다. 음? 




그렇다, 이러한 좌절감과 패배감에 오늘보다 나아질 미래가 보이지 않으니 살아갈 재미를 잃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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