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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미오네 Apr 11. 2023

고해성사

여기 사람 있어요 (2)

초등학교 1학년 때쯤이었으려나, 앞뒤 정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맞은편에 부모님이 앉아 계셨다. 부모님은 내게 엄마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 하셨다. 그때 난 "엄마... 아빠...."라고 한 뒤 울어버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천상 태어나길 F였가?




"엄마, 아빠, 빼애-" 이 문구는 내가 성인이 되어서까지 우리 집에 등장했다. 말을 눈물로 대신 어 시절의 나는 어른이 되어서놀림거리였다. 눈물 많 부끄러고 이를 바꾸고 싶었다.




이번 주 글쓰기 모임 주제는 영화였다. 영화 <너에게 가는 길(2021)>. 그렇다. 지난번 브런치에 올린 글이 모임 과제 제출한 글이었다.




줌으로 영화 감상을 고 있었다. 코끝이 시큰해지며 눈물샘이 열리는 게 느껴졌다. 목구멍이 먹먹하게 조이듯 막혀왔다. 눈물이 등장하기 전 신호인 헛기침이 켁켁 나왔다. 목소리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눈에 물이 차올랐다. 눈에 매달린 물만큼 목소리가 부들부들 요동다. 앞서 다른 분들 감상을 들으며 감정이 이미 경계선에서 아찔 거리고 있었다. 순간 수문 개방 버튼을 누른 듯 물이 우루룩 쏟아졌다. 한번 터진 울음은 터진 댐 마냥 돌이킬 수 없었다. 이럴 땐 이성의 퓨즈가 차단된다. 아이스버킷챌린지얼음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쓴 양 순식간에 감정이 온몸을 적셨다. 영화 안에 와있었다. 인천퀴어축제현장이었다. 내 옆에 나비와 한결이, 비비안과 예준이 다가와 있었다.









영화엔 슬픔, 왠지 그 반대편에 있을 것 같은 사랑가득하다. 이 거대한 두 감정이 나를 채우고도 넘쳐, 덮어 버린 게 아닐까.




흘린 그 눈물은 죄책감이었다. 그동안 노숙자, 장애인, 노인, 아동을 남보다 신경 쓴다며 나 좀 괜찮네 속으로 으쓱했던 위선적인 무지에 죄송했다. 부끄러웠다. 이들의 아픔을 이제야 알게 돼서...




염치가 물었다. 외면한 적 없어? 정녕 몰랐는지, 모른 척하고 싶었던 건지, 진실을 말하라 가리켰다. 내 가까이엔 퀴어는 없을 거라 믿는 모순적인 마음, 위선과 가식의 나를 마주하자 눈물이 나왔다. 죄인이네. 나도 죄인이네. 미안하다 해야 했다. 이발표를 가장한 짧은 고해성사였다.









영화에 대한 감상을 아래에 더 적다. 수강생 모두 내 글에 대한 아쉬움이 같았다. 줌에서 말한 만큼이라도 글쓴이 생각이 글에 보이길 바랐다.



 

영화에서 제일 좋았던 한 장면을 뽑자면 단연코 나비의 인터뷰다. 스위스 존엄사를 말하며 만약 한결이 원한다면 같이 스위스로 날아가 마지막까지 곁을 지킬 거라 말하는 장면. 한 번 더 가슴 아플지라도 이 장면을 위해 영화 재관람에 용기 내고 싶은 정도다.




비비안의 첫 등장 장면도 좋았다. 승무원인 비비안이 공항으로 출근하는 장면 위로 그녀의 목소리가 흐른다. 그녀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공항에서 게이들을 봤었다 말한다. 그땐 자신도 구경하는 입장이었다면 자신의 아들이 커밍아웃을 한 이후 이젠 '게이'라는 단어만 들려도 귀에 걸린다는 거다.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지는 걸 경계하자. 현대인은 스스로의 고통에도 둔감해져 가니 타인에 대해선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자기 자신의 고통부터 먼저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촉수를 단단히 붙들어 세우자. 자꾸만 무너지려는 촉수를 잃어버리지 말자.




덧붙여, 이 영화에서 연대의 힘을 발견했다. 성소수자부모모임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간 힘이 되고, 나아가 행동을 실천하는 모습이 긴 시간에 걸쳐 영화에 잘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엔딩크레딧도 인상적이다. 화면 오른엔 크레딧이 올라가고 왼편엔 정면 카메라를 보며 이름과 누구의 엄마, 아빠라고 자기소개하는 장면을 넣었다. 성소수자면, 성소수자의 부모면 부끄러워해야만 하는가? 그들을 응원하는 소리조차 내길 두려워해야만 하는 걸까?




사실 이 영화 리뷰를 브런치에 올린 후 구독자 한 분이 구독을 취소하셨다.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 소리 없는 글자 위에서조차 비단 려움이 느껴지니 신기한 일이다. 그렇지만 한 번 더 외쳐본다. 여기 사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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