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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미오네 Jul 31. 2019

목욕탕에서 생긴 일

내 하루의 편린들 8

by 선연


    일요일 오전, 몸도 찌뿌둥하고 기분전환도 할 겸 목욕탕에 갔다. 



    여기는 지역에서 물이 좋다고 유명한 목욕탕으로 여탕 기준 8개 종류의 탕이 있다.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앉고 일어서길 반복하다 제일 큰 탕인 41도 온탕으로 돌아왔다. 아오 뜨겁다 하고 앉았는데 나의 오른쪽 대각선에 한 할머니가 계셨다. 오우 몸이 많이 뻐근하셨나? 눈을 감으신 상태로 뜨끈한 물에 몸을 완전히 맡기시고 계신 것 같았다.



    그러고는 시선을 돌렸는데 또다시 오른쪽을 보게 되면 할머니가 뭐하시는 거지? 생각이 들 정도로 물에 거의 누워계셨다. 흠. 물을 느끼시며 생각 중이신 건가. 옆 탕의 아주머니가 탕 경계석 돌 위에 앉으셔서 할머니를 한참 내려 쳐다보시다가 자리를 뜨셨다. 



    사실 할머니를 향한 시선은 나뿐만이 아니었는데 내 왼편에 앉으신 아주머니와 반대편에 앉은 젊은 여성 또한 나와 같이 할머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계속 오른쪽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계신 것 같아 나는 일어나 할머니 쪽으로 세 걸음 걸어갔다. 할머니를 가까이서 보니 눈은 감겼지만 입으로 무언가 중얼거리시며 오른손으로 코를 훔쳐내셨다. 음. 약간 명상 같은 건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나 또 오지랖인가.. 휴...' 하는 생각을 하던 바로 그 찰나,



     "엄마! 엄마!" 고개를 돌리니 어떤 여성이 할머니를 붙잡고 일으키며 정신을 깨우고 있었다. 할머니 눈은 뜨여있었지만 멍했다.


 

    '아, 뭔가 잘못되었다.'






    곧바로 할머니에게 다가가 함께 부축을 하고 일단 뜨거운 탕에서 나오게 만들었다. 밖으로 뛰어가 사람들을 향해 탕에 환자가 발생하였음을 알렸다. 다시 탕으로 돌아와 할머니를 부여잡고 목욕탕 밖으로 나왔다. 수건을 평상 위에 깔아달라고 부탁하여 할머니를 앉혔다. 어떤 목욕탕 아주머니가 손을 따면 일단 낫다고 열 손가락 전부 사혈침을 놓았고 다른 목욕탕 아주머니는 바나나우유를 가져와 할머니에게 먹였다.

할머니는 다행히 딸이 깨웠을 때부터 의식은 있으셨다. 다만 온몸에 힘이 다 빠진 상태셨다.







    나는 왜 할머니에게 다가갔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걸거나 흔들어 깨우질 못했을까. 그냥 괜찮겠다고 판단을 내려버리고 돌아가버린 걸까. 왜 주변 사람들은 나처럼 할머니를 쳐다만 보고 있었을까.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데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물어보기만 하면 되는데





    무엇을 걱정하고 염려했던 걸까.  



부끄러움 혹은 무안을 당하지 않을까

오지랖 넓네. 혹은 나대는 것 아닌 가?

어떤 일에 개입해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하지 못하는 건가?  

좋은 마음으로 도와줘도 안 좋은 일에 휩쓸리는 경우를 무분별한 매체로 많이 접해서

개인주의가 사회적으로 팽배해져서

'남일에는 끼어들지 않는 게 좋다.' '괜히 나섰다가 일이 복잡해질 수 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제일 낫고 편하고 안전하다.' 








    어떤 가치는 내팽개치면 안 되는지 생각하고 토론하는 장이 세상에 많아지길 소원한다. 모든 일에 있어 어떤 가치가 더 중한지를 아는 사람이 나부터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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