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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미오네 May 10. 2020

나비가 날개를 펄렁이면

내 하루의 편린들 15 /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photo by 선연



    시작은 이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로부터 뜻하지 않게 로션 발림을 당하면서.


    봄바람이 부는 4월 초, 벚꽃구경을 하던 친구와 나는 잠시 쉬어가자며 벤치에 앉았다. 앉는 주인을 따라 내 9부 청바지는 쑤욱 올라가며 댕강 발목을 내보였던 모양이다. "에-헥! 살이 다 텄어!!" 친구는 이내 자신의 가방을 뒤져 앙증맞은 통을 꺼내 보이더니 "이거 무향이라 몸에 안 해로워"라고 말했다. 그녀는 동그란 뚜껑을 시계방향으로 돌려 열고선 상체를 한껏 수그려 내 발목에 로션을 문질러 발라줬다.


    그 날 이후, 난생처음 바디로션을 챙겨 바르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몸을 문질 거리는 게 이토록 어색한 일인가 싶었다. 문질문질- 어색하면서도 마음속 살며시 웃음이 이는 간질거림이 느껴졌다. 로션의 부드러운 느낌이, 온몸 곳곳에 발려진 로션의 향기가, 생각지 않게 날 설레게 만들었다. 가볍게 시작된 바디로션 바르기는 조금씩 일상이 되었고 기분 좋은 나비의 날갯짓은 점차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문득 짐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본 듯 나름의 버릴 기준을 용케 세웠다. 첫째, 일 년 동안 혹은 지난 계절 동안에 사용치 않았던 것. 둘째,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된 것. 셋째, 애정이 없어진 것. 놀랍게도 어찌 이렇게 살았나 할 만큼 처박혀있던 많은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짐 정리를 하며 방청소는 덤으로 해내었다.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난 거니? 니 방이 아닌 줄 알았다. 야, 다시 나갔다 들어올 뻔했어."

    "무슨, 뭘 그래~ 나 원래 잘해~"

    엄마의 말에 빙그레 속웃음이 났다.


    날갯짓의 여파로 평생 할 것이라 생각지 않았던 '기상 후 이불 개기'를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이불 개기는 왜 갰다 폈다 하는 건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소모적인 행위로만 여겼다. 옛날엔 잠자리를 치워야 그 공간이 사용 가능하니 이불을 개어야 했고, 침대가 생긴 이후 침대에 이불이 계속 펴있으면 더 좋은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무렇게나 벗어던져진 옷처럼 제멋대로 찌그러져 헤벌레 거리는 침대 위 이불을 보며 불현듯 왜 이불 개기를 해야 하는지 느끼기 시작했다. 기상 후 이불 개기란 마치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이불을 개지만 그 안엔 오늘 하루 잘 살겠다는 다짐이,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 담겨있는 것이었다. 






    바람은 태풍을 만들었다. 평소 관심 있었던 '명상'에 대해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아 미루고 있었는데 휴대폰 어플을 이용해 보기로 한 것이다. 어라, 며칠 잘 사용했는데 어플이 작동되지 않고 팝업창이 떴다. <정기 결제 이용권> 무료 어플인 줄 알고 다운로드하였는데 갑자기 어마무시한 배신감이 뒤통수를 갈긴다. 


    유료 어플을 사용해본 적 없는 나는 어플을 지우기로 마음먹었다가 다시 문구를 읽어본다. '한 달 이용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1잔 가격...' 인생 처음으로 유료 어플에 도전해보기로 하며 내 관성을 깨 본다. 걷기 명상, 자기 전 명상, 대중교통 안에서 명상.. 이젠 이어폰으로 킬링타임용 음악 감상이 아닌 나를 위한 명상 시간을 갖는다.

 

    그 무렵 우연히 온라인 글쓰기 모임 모집글을 보게 되고 단숨에 신청하기에 이른다. 온라인 모임이니 사람 만날 부담도, 부족한 글솜씨에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지킬 것은 간단했다. 한 달 동안 매일 어떤 글이든 올리면 되는 것이었다. 핵심은 '매일'에 있었다.


    평소 실행하지 못하고 혼자 생각만 해왔던 '매일 글쓰기'를 16명의 사람들과 온라인 모임을 통해 지켜나갔다. 어떨 땐 마감시간인 자정 전 급히 5분을 남겨두고 짧은 글을 후다닥 적어 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하루 뺀 한 달을 해냈는데 매일 한 줄이라도 꾸준히 썼다는 자신감이 나를 더욱 북돋워 주었다.






    펄렁이는 날개는 '나도 작가다' 공모전까지 이끌었다. 바디로션은 나를 '작가'까지 데려다준 것이다. 어떤 걸 하고 싶은지 조금은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그 방향대로 나도 모르게 날 이끌고 있었다. 시작 전 생겼던 머릿속 두려움과 걱정은 막상 행하면 두려울 것도 걱정할 것도 없었다. 더불어, 하기 전 상상 속 기대감보다 하고 나면 기대 그 이상으로 배우고 얻는 것이 많았다. 


    작디작은 행위는 더 큰 행위를 만들어 내고 조그마한 성취감은 더 큰 성취감으로 향해갔다. 무엇이든 일단 해 보는 용기, 환상 속 두려움에서 벗어나 날개를 펄렁여보라.


    음~ 이 날갯짓이 어디까지 펄렁일지 웃음 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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